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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방에 콕!) 생활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살림과 육아에 전념한 지 너무 오래 돼서 인지,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무척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구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지기에, 나와 비슷한 처지(하루 종일 말 없는 아기와 씨름하는)에 있는 '아줌마'들이 수다스러워 지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과도 스스럼 없이 얘기를 나누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듯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사람보다 '기계'를 더 선호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잔돈'으로 무언가를 해야 될 때다. 예전에는 단 1원의 에누리도 없는 야박한 기계들을 미워할 때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좀 다르다.

물가가 무섭게 뛰어 오르고 사람들의 돈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서 요즘 동전들은 홀대를 당하는 경우가 참 많은데, 남편만 해도 식당에서나 가게에서나 동전으로 계산을 하면 어쩐지 쩨쩨해 지는 것 같다며 늘상 지폐로만 값을 치르기 때문에 남편의 책상 위나 우리집 동전 통에는 거스름 돈으로 받아 온 동전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동전으로 내는 것이 어때서?"

그 동전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나 나 밖에 없어서, 나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마트에서 장을 볼 때면 수북해진 동전 통을 깔끔하게 비우곤 하는데,

"모두 칠천 이백 오십 원이라고요? 여기 오백 원 짜리로 삼천 원이고요, 백원 짜리로 사천 원이에요. 그리고 이백 오십 원은 오십 원 짜리하고 십원 짜리로 드릴게요."

좀 심했나? 계산 하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도록 돈을 정리해서 따로 따로 주는 데도, 내가 동전으로 음식이나 물건 값을 지불할 때면, 느닷없는 동전 세례라는 듯 당황해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떨 땐 손님인 내가 물건을 사면서도 미안해 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동전이든 지폐든 가리지 않고 잘 받아 주고 알아서 척척척 남은 금액을 표시까지 해 주는 자동 판매기가 더 좋다는 소리다.

...... .


Dollars !
Dollars ! by pfala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여기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약속 시간에 쫒겨 타게 된 택시 안, 목적지까지는 기본 요금이 나오는 짧은 거리기 때문에 나는 미리 지갑을 열어 택시비를 준비하고 있었다. 쨍그랑 쨍그랑 역시나 그 속에는 동전도 포함이 돼 있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차가 조금 막혀서 생각보다 택시 요금이 약간 더 나왔다.

이천 팔백 원.

지갑을 탈탈 터니 백원 짜리 동전이 일곱 개, 오십원 짜리가 네 개, 십원 짜리가 다섯 개 있었다. 나는 늘상 하던대로 이천 원은 천원 짜리 지폐로, 나머지 팔백 원은 백원 짜리 동전 일곱 개와 오십 원 짜리 한 개, 그리고 십 원 짜리 다섯 개로 택시비를 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택시 문을 여는데,

" 아니, 이 아가씨가!!"

(아가씨라고 불러 주신 것은 고맙습니다만,)택시 기사 아저씨의 불호령에 화들짝 놀라 경기를 한 번 일으키고는 문으로 가져 갔던 손을 거두어 들였다. 이미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으나 초연하게 모른 척 대응하기로 했다.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노발대발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는 아저씨 앞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도대체 왜 그러시느냐고, 저는 모르겠다고 대꾸했다.

역시나 문제는 동전, 그 중 십원 짜리에 있었다. 이 아가씨(다시 한번 고맙습니다.)가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네, 아니에요.), 어떻게 택시 요금을 이딴 식으로 낼 수가 있느냐, 나를 뭘로 보고 십 원 짜리를 주느냐, 지금 나하고 장난치자는 것이냐, 택시 운전한다고 사람을 놀리는 것이냐...... 폭풍같은 화를 소나기처럼 쏟아내는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목소리를 계속 높여도,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도 내가 흔들리지 않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여전히 낮고 평온한(사실은 조금 무서웠다.) 어조로 왜요? 십 원 짜리도 돈이잖아요. 십 원 짜리는 왜 안돼요?를 되풀이하자 아저씨는 말이 안 통한다는 듯 끝끝내 나에게 오십 원 짜리 하나와 십 원짜리 다섯 개를 돌려 주고는 이 돈은 안 받으니 가져 가라며 나를 택시에서 쫓아 냈다.  

씁쓸하게 동전을 받아 들고 아직 그치지 않은 비 속을 걸어 가는데, 왜 그리도 속이 상하던지, 정말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일까? 이제 십 원 짜리를 받아 줄 곳은 피도 눈물도 없어서 절대로 에누리가 안 되는 자판기 뿐인가? 정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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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은근히 치사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택시 요금 표시기이다. 그깟(?) 몇 백원, 평소에는 옛다 과자 하나 사 먹어라. 하며 동네 꼬마에게 선심을 쓸 수도 있다. 그런데 택시만 타면 그깟(?) 몇 백원 때문에 가슴은 벌렁벌렁하고 손에는 땀이 흥건해지니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의연해지자고 마음을 먹고 택시를 타는 순간부터 아예 택시 요금 표시기 쪽으론 눈길 한 번 안주지만 조금만 막힌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가자미 눈이 되어 요금부터 확인하게 된다. 택시를 탈 때마다 있는 일이다.

아무에게도 배우지 않은 선천적인 짠순이인 내가 택시를 타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나 나는 시골 출신이라 서울의 교통 체증을 서울에서 십 년이 넘게 생활하고 있는 지금도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택시를 잘못 탔다간 의도하지 않게 떡볶이 몇 접시 쯤은 금방 날려 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아기와 함께 외출을 할 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된다. 특히나 잘 모르는 길을 아기띠를 메고서 헤메기라도 하면 그 날 할 일을 망치는 것은 물론이요, 무릎이며 허리에 어마어마한 후유증이 남기 때문에 떡볶이 몇 접시가 대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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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miNiaTURe wOrLd by 27147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방배동에 일이 있어서 다솔이와 함께 나가게 되었다.

지하철만 탈 수 있는 곳이면 유모차를 가지고 나갔을텐데 지하철에 버스까지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8.8kg이 된 다솔이를 어깨에 메고 기저귀 가방은 들고 일을 보러 갔다. 우리끼리(다솔이와 나) 아기띠를 메고 멀리 가 본 적은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의외로 순조롭게 일이 착착 진행이 됐다. 이제 버스로 세 정거장 가서 도보로 100m 가량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이었다.

나는 100m가 마음에 걸려서 버스 대신 택시를 선택했다. 택시를 착 하고 타면 목적지까지 척 하고 데려다 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나는 엄청난 맘고생을 해야만 했다.

내가 목적지를 이야기할 때부터 택시 기사 아저씨는 그 곳을 잘 모르는 듯 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었다. 유명한 상호를 가진 곳이니 요즘 택시엔 다 있는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만 하면 됐다. 그러나 오십 대로 보이는 그 아저씨는 초보 택시 기사였던 듯, 네비게이션을 입력하는 손길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자꾸만 틀린 글자를 클릭했고 내가 보는게 부담스러웠는지 어험,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혼잣말로 'OO사거리에 있는 거기로구먼'하며 그냥 출발이었다.

Taxi
Taxi by Stephan Gey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나는 그 날도 의도적으로 요금 표시기 쪽을 외면하면서 창밖 풍경을 보고 있었는데, 차 안에 참 오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자꾸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것이 미심쩍었지만 나도 초행길이라 내가 갈 곳이 어딘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저씨를 무작정 의심만 할 수는 없었다.

요금 표시기에 말들은 하염없이 달리고, 버스로 세 정거장이면 간다는 길은 정처가 없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자미가 되어서 흘끔 요금을 봤는데 기본 요금이면 될 줄 알았던 것이 자꾸만 백 원 씩 올라가고 있었다.

아저씨 여기가 맞나요? 방배역에서 세 정거장이면 간다던데요. 대답이 없는 아저씨는 길을 잃은 것이었을까? 아까 본 것이 분명한 그 골목을 다시 지나 와서야 나와 다솔이를 내려 주었다. 요금은? 맘 같아서는 좀 깎아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나는 소심한 A형. 요금을 내는 손이 아마도 부들부들 떨렸을 것이다. 길을 잃은 것은 택시 아저씨인데 왜 요금은 내가 다 내야 되는 것이지? 좀 억울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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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남녀, 설렜던 데이트를 아쉽게 끝내고 남자가 애인을 택시에 태워서 집으로 보낸다. 좀 위험한 듯 싶어서 생각 같아서는 그녀와 동승하여 집 앞까지 데려다 주고 싶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러지는 못한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는 맘으로 그녀를 태우고 떠나는 택시의 꽁무니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수첩을 꺼내 택시의 번호판을 적어두는 세심한 남자. 택시의 번호판을 적어두는 것은 드라마에서 낭만적인 상황을 연출할 때 흔히 써 먹는 방법이고 실제로 여자친구의 안전한 귀가를 걱정하는 자상한 남자친구들이 많이 실천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그런데 나는 내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택시 운전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살짝 상한다. 그들은 무엇을 그리도 걱정하는 것인가. 사십대 초반인 나의 막내 외삼촌은 택시 기사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택시 근무복을 입고 운전하는 외삼촌이 아주 멋있어 보였다. 그러다 자라면서 택시 기사에 대한 주윗(특히 여학생들의)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들을 알게 됐고, 내가 좋아하는 외삼촌이 오해받는 것이 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중과 여고에 재학중일 때는 워낙에 그런 쪽의 얘기를 많이 들어서 우리 외삼촌도 사실은 그럴지도 모른다며 우울해하기도 했었다.


몇 년 전이었을 것이다. 집에 놀러온 외삼촌과 같이 드라마를 보다가 남자 주인공이 택시 기사를 마치 잠재된 치한이라도 되는 듯 대하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여자 친구를 뒷자석에 앉히고 집으로 보내면서 안절부절 못하더니 척 하고 꺼낸 수첩에 다가 당연한 순서로 택시 번호판을 적어 둔다. 그리고 나서는 문자 메시지로 번호판을 적어 두었으니 안심하라는 글과 함께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자기에게 연락하라는 내용을 보냈다. 택시 기사인 외삼촌과 함께 보기엔 내용이 조금 민망해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방금 그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외삼촌은 잠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금새 그럴수도 있지 한다.

요즘처럼 믿을 것 없는 세상에서 연약한 여자가 낯선 남자와 단 둘이 차를 타고 간다는 것이, 당연히 무서울 수 있단다. 그런데 사람들이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택시 기사들도 낯선 동승자가 두려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젊은 택시 운전 기사들 중에는 숱한 성추행과 성희롱을 생계를 위해 이를 악물고 견뎌내야 하는 경우가 많단다. 손님을 가려받을 수 없으니 취객부터 건달까지 얼마나 다양한 사람과 좁은 차 안에서 같이 있어야겠는가.


택시를 타는 여자들은 혼자 탈 경우와 둘 이상이 탈 경우가 확연히 다르단다. 혼자 타는 경우에는 택시 기사가 자신에게 해를 입힐 까봐 덜덜 떠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그런 생각이 없는 기사들은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한단다. 그런데 둘 이상이 탈 경우에는 무서워 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특히나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시시콜콜한 질문에서부터 노골적인 농담과 심한 경우에는 더듬기까지 한다고 했다. 어떤 땐 여러 명이 정신을 쏙 빼 놓는 바람에 목적지까지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도 몰랐던 경우도 있었고, 또 다른 경우에는 목적지가 어느 식당이었는데 같이 식사하고 가라며 반강제로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진 경우도 있단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지만 외삼촌이 나에게 자신이 겪은 모든 이야기를 다 해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콜택시를 하고 있어서 휴대폰 번호까지 노출돼 있기에 별별 요상한 전화에서부터 장난 문자까지 외삼촌을 힘들게 만든다고 한다. 나도 여자이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성추행&성희롱과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성추행&성희롱은 같은 무게로 비난과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 일을 저질렀을 땐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다. 모든 여성들이 택시 기사를 괴롭히지 않듯, 모든 택시 기사가 괴한은 아니다. 택시 기사에 대한 선입견, 그들에게는 말 못 할 상처가 되니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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