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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메리어트 시티센터 호텔 조식

수준이 다르구나!

 

 

 

중국은 음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 중 하나잖아요~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 대신

식사하셨어요? (절대로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가 궁금하지 않음)라고

묻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게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중국은 정말 상상 이상인 것 같아요.

 

 

중국은 학생 식당에서도 수타를 치는 나라이니 ^^

5성급 호텔인 상하이 메리어트 시티센터의 조식 뷔페가 훌륭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

아침부터 정말 어마무시하게 맛있는 음식에 눈과 입이 즐거워집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경건하게 셀카부터 찍고

ㅋㅋㅋㅋㅋㅋ

 

 

 

 

 

인도요리

 

 

 

 

 

 

 

 

원하는 재료를 고르고

원하는 면의 종류도 고르고~~!!

끓여서 그릇에 담아 주면

 

 

 

 

 

원하는 소스를 담아서 한 그릇 거하게 먹음 되는데,

정말 맛있어 보였으나

저는 첫날 아침엔 일부러 안 먹었어요.

 

 

한 그릇이 너무 거해서

다른 음식은 하나도 못 먹게 될까봐 ㅠㅜㅠㅠ

계획을 세워서 먹어야 할 판인

상하이 메리어트 시티센터 호텔 조식 수준.

 

 

 

 

 

 

일단 자리에 앉아 커피부터 받아 놓고

진한 생과일 주스랑

가벼운(?) 샐러드 빵부터 시작.

 

 

인도 커리도 만들어 먹고

아침부터 배 뽈록하게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ㅋㅋㅋ

 

 

 

 

 

 

일행 중 한명은 맛있는 면요리를 골라 왔더라고요.

한 젓가락 먹어 봤는데

역시나 맛있었어용~

 

 

 

 

 

 

 

일본식 초밥요리

 

 

 

 

 

 

 

 

중국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죽과 만두류

 

 

 

 

 

섹션별로 규모가 어마어마해요.

 

 

 

 

 

 

 

 

따뜻한 음식들

 

 

 

 

 

 

 

차와 커피를 자리에 따라 주시는데

커피 머신이 있어서

카푸치노, 라떼 종류를 따로 만들어 주시기도 해요.

 

 

 

 

 

 

 

 

 

안 먹으면 섭섭한 달걀요리,

진짜 다양했던 빵.

 

 

 

 

 

서양식 아침식사류도 섹션이 마련돼 있었어요.

 

 

 

 

 

 

 

잘 먹겠습니다~~^^

 

 

정신없이 먹느라

다음 접시 음식 사진은 없어요^^

 

 

 

 

 

 

정말 친절하고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즐거웠던 상하이 메리어트 시티센터.

3박 4일 동안 정말 편안하게 잘 지내다가 왔답니다.

역시 여행기의 8할은 먹는 이야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행 = 먹는게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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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은 제 생일이었어요!!! 축하해 주세요~
중국에서 제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제 생일을 기억하고 메일을 보내 주었어요.
헤어진지 5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저에게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랑스러운 제자들~
부럽죠? 부럽죠? 부럽죠???
 
 
저에게 메일을 보내주는 제자들은 많은데,
올 해 생일을 기억하고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 준 제자는 두 명이었네요~
제가 가르친 학생들이 이렇게 한글을 잘 쓰는 걸 자랑하고,
또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헤헤헷!!!
 
 
부럽죠? 부럽죠? 부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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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결혼 초에 중국에서 2년 정도 살았었답니다.
중국 칭조우(청주)에 있는 웨이팡교육대학에서 한국어학과 학생들을 가르쳤거든요.
우리나라 대학의 외국인 원어민 강사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한국어 회화 부분을 맡았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한국의 문화, 예절, 그리고 한국식 화장법(?)까지 가르쳐 주었는데요,
아이들과의 추억이 어찌나 아름답게 남아 있는지
그 시절을 절대 못 잊을 것 같아요.


사진을 찍어만 두고 인화하지 않으면 컴퓨터를 켜서 파일명으로만 돼 있는 사진 속에서
원하는 추억을 꺼내 보기가 쉽지 않잖아요?
저희는 이제 슬슬 잊혀지려고 하는 (벌써 5년 전의 일이거든요.) 중국 생활이 그리워서
딥씨 포토북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위 사진을 보니, 아~~ 저랬었지!!! 싶더라고요.
여름엔 너무너무 더워서 거실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집 전체를 시원하게 만들었다가 세금 폭탄을 맞고,
겨울엔 난방이 안 돼서(온돌이 없잖아요? 스팀...그 마저도 고장!!)
침대 위에 깐 전기 장판 위에서만 애벌레처럼 생활하고,
침대를 벗어나는 순간 파카를 꺼내 입고, 세탁기 돌릴 때, 밥하러 부엌에 갈 때마다 추워서 종종종...그랬었지.
가을이 지난 후부터는 거실에 나가 있을 일이 별로 없어서 거실은 늘 난장판이었고,
중국어가 가득한 텔레비전은 그저 장식품이었었지...... .





한국에 올 때 즈음 되어서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었는데,
왜 좀 더 많이 찍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가득이에요.
마지막 수업은 아이들의 기숙사 방을 (중국 대학의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거든요.) 찾아가서
누가 누구와 한 방을 쓰는지 구경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들도 나누었었는데.
벌써 이 아이들도 어엿한 20대 중반 숙녀들로 자라나 있겠네요.





학교 선생님들이 생활하는 아파트에서 살면서 학교까지 통근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1분만 늦으면 버스가 없기에,
무조건 5분 일찍, 놓치면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답니다~
시골길을 덜컹덜컹 지나가는 버스는 함흥차사거든요.





중국에 살면서 북경도 안 가봤던 게으름뱅이 부부.
(북경에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작년에야 가 봤지요.)
태산, 곡부로 여행을 갔을 때의 사진이에요.
태산에서 일출을 보기로 해서 밤 10시에 등산을 시작해서 새벽 5시에 정상 도착...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그러나 하나도 안 보이는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오직 감각에만 의존하여 영차영차 계단을 오르던 그 때의 그 악몽!
(중국은 모든 산에 계단을 만들어 놓았어요. 왜 그럴까요? 흙길이 힘들어서일까요?)
일출이고 뭐고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그 날의 악몽 ....지금 되돌아 보니 역시나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그러다 다솔이를 임신하게 되어
임신 7개월 말까지 중국에서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착하고 착한 우리 아이들....더운 여름 더위에 지쳐 있는 저에게, 선생님 좀 쉬라고 해 주어서
저는 책상에 엎드려서(!!!) 쉬고, 아이들은 자습을 했던 일도 왕왕 있었던 듯????
너무 더웠던 날의 오후 수업은 저 대신 남편이 저희 반에 들어가서 수업을 했을 때도 있었답니다.
과연 그 때 남편은 뭘 가르쳤을까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더 많은 사진들은 아래의 움직이는 사진으로 보세요~~



딥씨 포토북으로 중국 생활의 이야기를 만들어 놓으니 정말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했는데요,
딥씨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어떤 방법으로 포토북을 만드는지 혹시나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만드는 방법을 좀 보여 드릴게요~~





제가 만들었던 '중국생활' 포토북.
이 제목은 제가 알기 쉽도록 임의로 붙여 둔 것이고요, 포토북에는 중국생활이라는 이름이 써 있지는 않아요.
딥씨에 로그인 하시고, 나의 책 관리를 클릭 하시면 지금껏 만들어 두었던 책들이 나온답니다.





저는 8X10 하드 커버로 포토북을 만들었어요.
기본 24P, 29,900원이에요.

 



만드는 사람이 알아보기 쉽도록 제목을 지정 하고 저장 한 후, 다음 단계로~~




테마를 지정할 수 있는데요, 저는 '사랑시'를 골랐어요.




사랑시를 고르면 한 쪽 면에는 사진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나오고,
다른 쪽에는 사랑시가 나온답니다.


요거요거, 힌트를 좀 드리자면,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커플들이 사랑에 관련 된 달달한 글들을 서로 주고 받길 원하잖아요?
그럴 때, 한 쪽에는 커플 사진을 또 다른 한 쪽에는 달콤하고 절절한 사랑시가 있으니, 딥씨 포토북의 사랑시를 선택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시가 너무 많다고 느끼시면 각각의 장에서 배경을 삭제할 수 있으니 제 글을 끝까지 읽어 주세요~
아래에서 배경 삭제 하는 방법도 가르쳐 드릴게요.





자, 이제 사진을 넣어 볼까요?
오른쪽에 메뉴를 보시면 사진추가 항목이 있는데 거길 클릭하시면 컴퓨터에 저장 돼 있는 사진을 아주 쉽게 가져올 수 있어요.
사진의 파일명 순서대로 사진을 쭈루룩 담기게 할 수도 있고,
하나씩 선택해서 순서를 직접 지정해 줄 수도 있어요.





각 페이지 마다 사진을 배열하는 방법이 달라서 재밌어요.
꾸미기 잘 못하는 분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진을 정렬해야 되는지 생각하는 것도 골치가 아프잖아요~
제가 그렇거든요.
딥씨 포토북에서 만들어 놓은 틀에 따라 사진을 하나씩 하나씩 끌어다 놓으면 되는데요,
이 때도 사진 틀을 줄이거나 늘릴 수 있으니까 개성대로 만들 수 있어요.





글씨를 넣고 싶을 때는
글 틀 추가를 클릭하면 글틀이 생기는데, 이것을 원하는 위치에 지정해 놓고,
글틀 크기도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고
글자 색깔, 글꼴 등도 맘대로 원하는 대로 다 바꿀 수 있답니다.




페이지를 추가 할 수도 있는데요, 1장 추가시마다 1,000원이에요.


 



시가 너무 많다 싶으시면 사랑시를 몇 개 없애고 (배경 삭제,) 거기를 사진으로 채울 수 있어요.


 



바로 요렇게요~~ 참 쉽죠~??




다 만들었으면 미리보기로 포토북을 처음부터 살살 넘기면서 훑여 볼 수 있답니다.
정말 쉽고 편한 툴인 것 같아요.
딥씨 포토북으로 중국 생활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게 되어 좋네요~~
딥씨 http://www.dipsee.co.kr/index.dpw



저는 딥씨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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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항공을 타고 북경가는 중이에요, 다솔이는 이번이 두 번째 비행인데 한 번 타 봤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창가 쪽 자리로 가더니 창 밖을 보며 여유있게 즐기던데요?
(다솔이의 첫 번째 비행 이야기 보기 :  http://hotsuda.com/774)




비행기에 탄 후 한참동안 비행기가 뜨지 않자, 재촉을 하는 다솔 군. 역시 경험은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 부부도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 본 경험이 있어서 조금 더 수월했었는데요,


다솔이와 싱가포르에 갔을 때,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아이의 귀가 아플까봐 걱정이 돼 사탕을 미리 준비해 갔었거든요. 어른들이라면 귀가 아플 때 침을 꼴깍 삼키면 된다는 걸 알지만 아이들은 그 방법을 잘 모르니까 사탕을 쥐어 줘 자연스럽게 꼴깍꼴깍 침을 삼키도록 유도하기 위함인데요, 너무 일찍 사탕을 줘 버리는 바람에 (그리고 이때다 싶었던 다솔 군이 와삭와삭 깨물어 먹는 바람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탕을 먹이게 됐었어요. 그러나 이번엔 노하우가 생겨 비행기가 슝슝-- 달릴 때 사탕을 줬답니다. 너무 어려 사탕을 줄 수 없는 다인이는 수유를 하면서 이착륙을 했어요.




다인이를 태웠던 유모차는 비행기를 탈 때 승무원에게 인계하고 다인이만 달랑 들어 비행기에 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할 때 엄마는 머릿속으로 오만가지를 다 계산하고 있어야 하는데요, 짐을 부칠 때에도 비행기 안에서 필요한 용품인 기저귀, 물휴지, 간식거리, 작은 장난감 몇 개, 내리자 마자 바로 갈아 입힐 옷은 기내용 가방에 따로 챙겨 두어야 해요.


비행기 안이 춥기 때문에 아이들에겐 긴 옷을 입히는 것이 좋은데요, 그래도 다솔이는 티셔츠는 반소매로 입혔고 다인이는 아래 위 모두 긴소매 옷으로 입혔어요. 그런데 사진을 보니 양말은 어디로 사라졌지?


한국에 있을 땐 신발을 신기지 않는데 혹시 몰라서 여행갈 땐 (다솔이 신던) 보행기 신발 하나랑 실내용 신발 하나를 챙겨 갔었어요. 근데 중국에 가 보니 역시나 너무 더워서 한 번도 신발을 신긴 적은 없답니다. 양말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칠 수 있겠다 싶은 때 빼곤 잘 안 신겼어요.

 

 



남방항공의 좀 재미있는(??) 특징은요, 아기 안전밸트와 배시넷이 없다는 점. 배시넷을 미리 신청했었는데 당일날 비행기를 타고 보니 승무원이 죄송하다며, 비행기가 너무 작아 배시넷을 설치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도 자리는 제일 편하고 넓은 앞자리로 줬는데 자리 배정이 잘못 돼 남편, 다솔이와 떨어지게 되어 그냥 중간쯤으로 옮겼어요. 어차피 베시넷도 없으니까 앞자리가 무슨 소용인가 싶었죠.


그리고 아기 안전밸트(아기는 따로 좌석이 없으니 엄마의 안전밸트와 연결하는 것)는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를 탔을 땐 귀찮을 정도로 안전밸트를 채우라는 주의를 줬었는데, 남방항공엔 아예 없던데요? 비행하는 내내 그냥 다인이를 제가 안고 있든가, (3자리의 팔걸이를 위로 올리면 의자가 길어지는 효과를 얻으니) 제 무릎에 길게 눕히든가 했어요. 중국까지 겨우 한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별로 힘들진 않아요.




다인이만 너무 오래 안아 준다고 칭얼대던 다솔 군은 비행기가 하늘로 높이높이 오르자 밖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고,




다인이도 피곤했던지 짧은 수유 후 꼴가닥 잠이 들었어요.



자는 모습이 천사네요. 아무리 여행 전날 밤에 잠을 잘 못잤어도, 일찍 출발해서 집에서 새벽 4시에 나왔어도 엄마, 아빠는 비행기에서 잘 수 없답니다. 미리미리 체력을 길러 두시길~


비행기를 타서 음료 한 잔 마시면 곧바로 아침 식사가 서비스 되는데요,




가장 맛있고 풍성해 보였던 것은 차일드밀이었어요. 다솔 군의 맘마죠.




딸기주스, 과일, 빵, 고기, 감자튀김, 채소까지 정말 부족한 게 없던데요?
꼭꼭 미리 신청하셔야 됩니다!!




다음은 다인이의 맘마 베이비밀이에요.
사과주스와 사과맛, 바나나맛 죽(거의 미음 수준)이 나왔고, 그걸 덜어 먹을 수 있는 그릇이 같이 나왔어요.




베이비밀 두 개 중 하나를 뜯어서 (사과맛이었어요.) 다인이에게 먹여 봤는데요, 음식의 질감이 싫었는지 맛이 낯설었는지 몇 숟갈 받아 먹지 않고 다 남겼어요. 그래도 집에서 준비해 온 이유식이 있어서 (얼려 온 것과 레토르트 이유식) 별로 걱정은 안하고 다인이는 그냥 물만 조금 먹였어요.

 



자기 음식엔 손도 안 대고 제 빵을 탐내는 다솔 군,




예전에는 기내식을 너무너무 기대하면서 꼭 남편이랑 다른 메뉴로 주문해서 나누어 먹곤 했는데, 어느샌가 똑같은 메뉴를 주문하게 되더라고요. 저희는 그냥 한국식 잡채밥을 똑같이 먹었어요.


다솔이 밥 먹이고, 다인이를 한 팔에 안은 채 제 몫의 밥을 먹고,
그러다 다인이를 남편에게 넘기고 또 다솔이를 먹이다가 제 밥을 먹다가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북경이에요.
이렇게 가깝나 싶을 정도로 비행시간이 짧게 느껴졌어요.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국, 북경입니다.
착륙할 때도 다솔이에게 사탕을 먹이고, 다인이는 수유를 한 후 아무탈 없이 중국 땅을 밟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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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북경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겨우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니까요. 몇 가지만 주의하시면 아이들을 데리고 까짓(?) 중국 쯤은 기분 좋게 다녀올 수 있답니다. 7월 초에 33개월 8개월 된 아이들 둘을 데리고 다녀 왔던 중국 여행 이야기. 그 중에서 공항이야기를 먼저 전해 드립니다.


비행기가 인천 공항을 뜨는 시각은 아침 8시. 저희는 패키지 비슷한 여행을 '단체로' 다녀 왔기 때문에 일반 여행객들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을 감안해, 인천 공항에 6시까지 도착하기로 약속을 했었어요. 그러려면 집에서는 4시 정도에 나가야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여행가기 직전까지 짐정리를 다 해 놓지 않는 요상한 게으름이 발동해서 짐 싸고, 준비하고 그러다 보니 잠을 거의 못 자고 출발하게 되었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좋은 점은 아이들이 공항으로 오는 동안 푹~ 자 준다는 것, 나쁜 점은 부모는 잠이 모자라 약간 몽롱한 상태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일행 중 1등으로 도착해서 공항에서 기념 사진도 찍고 약간 들뜬 상태에서 여행을 준비했어요.
아이를 데리고 여행할 때 8개월 다인이 처럼 어린 아기가 있다면 아기띠와 휴대용 유모차(휴대용이지만 견고한 것으로 준비해야 되고요, 당연히 등받이 조절이 가능해야 합니다.)를 둘 다 준비해야 되고요, 다솔이처럼 잘 걸을 수 있는 아이라면 저렴한 휴대용 유모차를 챙겨 가세요. 저희는 곰팡이가 슬어 당장 내다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은 3만 5천원 주고 샀던 유모차를 하나 더 가져 갔어요.




단체 비자를 받았을 경우에는 입국 수속을 할 때 일행이 늘 다 같이 있어야 되고요, 짐을 부칠 때는 단체 여행객 창구가 따로 마련 돼 있으니 애먼한 데 줄을 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남편이 짐을 부치는 사이, 저는 눈깜짝 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져 머리는, 순간이동의 달인 이다솔 선생을 지켜야만 했었는데요, 여럿이 여행가면 아이를 돌봐줄 손들이 많기에 정말 편안하게 잘 다녀올 수 있었어요. 어찌나 고맙던지, 이 글을 기회로 다시 한 번 인사를 드립니다.


날쌘돌이 다솔이의 발을 묶어 놓을 계획을 세우다가, 차라리 어디엔가 늘 태우는 방법으로 아이를 보호하기로 했어요. '타는 것'을 좋아하니까 다솔이에게도 유혹적이었죠.


그래서 다솔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 (여행가기 전날에 안면도에서 돌아왔는데요, 바다에서 모래장난을 치다가 눈 부위을 좀 다쳐서 부어있지만 큰 문제는 없으니 걱정 마세요.)




각종 카트(?)를 타거나,




종국에는 가방에까지 타는 재미를 누렸어요.




유모차는 택을 붙이고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가지고 있다가 비행기 앞에서 승무원에게 맡기면 돼요. 정말 편리하죠? 남방 항공은 이유식을 가지고 탈 수 있어서 편리한데요, 인천에서 북경으로 갈 때엔 무사통과였던 진공 포장된 레토르트 이유식이 북경에서 인천으로 올 때는 반입 금지 물품으로 분류 돼 (아무리 이유식이라고, 아기가 먹는 거라고 설명을 해도 못 알아 듣는 척 했어요. 에잇~) 아깝게도 버려졌답니다.

 



출국 심사도 마치고,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약간의 두근거림을 안고 비행기 타러 가는 중, 남방 항공은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이 멀어서 중간에 기차도 한 번 타야 되거든요? 단체라 생각 보다 훨씬 더 시간이 많이 소요 되었어요. 일정상으로는 햄버거를 먹고 출발하는 거였는데, 햄버거는 커녕 면세점을 힐끔거릴 시간도 부족하더라고요. 공항은 무조건 일찍가는 게 진리인 것으로...... .



탑승구도 멀어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는데, 얼른 타라는 재촉 방송이 계속 나오고,




저희는 단체 사진을 찍은 후 북경으로 드디어 출발했습니다.




이른 시각에 출발하느라 잠이 부족했던 저희 부부는 비행기에서 푹 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조금 했었는데요, 그건 저희의 착각에 불과했어요. 아이들 챙기느라 그럴 시간이 있나요? 겨우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오는 걸요. 눈 한 번 못 감아 보고 중국땅에 도착을 했어요.

 



여기는 중국이에요.
예전에 중국에 왔을 때는 비행기에서 내리면 샹차이(고수) 비슷한 냄새가 났었던 것 같는데요, 여기가 북경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쾌했어요. 2008년 이전에 북경에 가 보신 분들은 다 아시죠?


북경은 뿌옇고 공기가 더럽고 지독하게 덥고....그랬었잖아요? 그런데 2008년 올림픽을 맞이하면서 대대적으로 노력을 해서 쾌청한 북경을 만들게 되었다고 해요. 나무도 많이 심고, 하늘의 도우심으로 비도 많이 내리고, 거리도 공기도 사람들도 깨끗해지고...... 진짜 놀라웠어요.

 



입국 심사를 하는데,
공항 직원이 저에게 자꾸만 중국인들이 줄 서는 곳에 가서 줄을 서라고 하기에, 내가 그렇게 중국인처럼 생겼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고요, 외국인들이 갑자기 많이 올 경우엔 외국인, 내국인(중국인) 상관 없이 줄을 설 수 있도록 융통성을 발휘한 거였어요.


웹캠으로 얼굴 사진을 찍어 두던데요? 항상 기분 좋은 미소를 방긋방긋 날리던 다인이는 그 사진 속에서 조차 함박 웃음을 웃고 있어요. 비행이 힘들지가 않았다는 거죠. 33개월 이다솔, 8개월 이다인 비행 후 컨디션 이상 무.




유모차의 또 다른 쓰임은 짐을 싣는 건데요, 아기를 아기 띠에 매고, 가방 등 무거운 것은 유모차에 넣고 끌고 가면 되니까 여러모로 편리해요. 유모차는 필수!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할 때, 아빠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가 있는데요,
그건 바로 체력이에요. 온 가족을 다 책임져야 되니 어깨가 무거운 건 당연한데 대부분의 짐을 아빠가 주로 챙겨야 하니(두 아이를 챙기는 건 보통 엄마의 몫, 그러나 이번 여행에선 다른 분들이 많이 도와 주셨어요. 고로 저는 알고보면 엄청 편안하게 여행을 다녀 왔다는~) 


저희 짐 좀 보세요. 어디 이민가나요? 커다란 가방 두 개에 다가(남편이 여행지에서도 일을 해야 돼서-진짜 체력이 필요하죠?- 노트북이며 각종 전자 기기를 가져 갔었고요, 중국을 얕잡아 본 실수로 아기 의자까지 챙겨갔었네요. 아기 의자 필요 없습니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북경이 서울 보다 잘 사니까요.) 유모차, 아기 의자까지 있어서 자유 여행이었으면 짐에 파묻혀 여행은 하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이제 공항에서 나가는 중인데요,
어찌나 행복하던지...... 저희 부부는 유난히 중국을 좋아하기에 그저 중국에 왔다는 자체만으로도 좋았어요. 마음이 편안해지고, 제 2의 고향 같기도 하고.




비록 중국어는 여전히 그림처럼 느껴지지만 공항에 내리자마자 들리는 중국어가 (알아 들을 순 없었어도)정겹게 느껴졌답니다. 반갑다, 중국아! 오고 싶었다. 북경아!!


저희 가족의 중국 여행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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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
콧대높은 [북경대학교] '여권'없이 구경할 수 없어요!
http://hotsuda.com/1165


북경대학교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새빨갛게 얼굴이 익는 느낌을 느끼며, 꽤 오랜 시각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저희 일행은 드디어 북경대학교로 들어 갈 수 있었어요. 




전체적으로 새로 지은 건물이 많았고요, (중국이니까, 중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니까) 어마어마하게 넓었어요.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어서 자전거 없이는 다니기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대학과 다른 점은 학교 안에 매점이 별로 없다는 것. 우리는 수업 듣다가 배 고프면 빵도 사 먹고, 과자도 사 먹고, 음료수도 사 먹고....(저만 그랬나요?) 마구마구 사 먹으며 또 수업 듣고 그랬었잖아요? 북경대 학생에게 물어 보긴 했지만 의사소통이 100% 원활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대충 이해하기로는 북경대학교에는 학생 식당 건물에만 매점이 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나라 대학과 같았던 점은 '인문대'는 지지리도 낡았다는 것! 인문대에는 돈이 안 되는 과들이 많잖아요? 저도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라 국문과는 곧 '굶는 과'라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었는데, 북경대에서도 그 말은 통용되는 듯 삐까뻔쩍(? 저는 은어를 잘 쓰지 않는데, 오죽했으면...)한 경영대 등등과는 달리 인문대는 한없이 초라하더라고요.




학교 안에 공연장이 있어서 영화도 볼 수 있고, 공연도 볼 수 있었어요.




나무가 잔뜩 심겨져 있어서 녹색으로 보이는 인상적이었던 건물과 그 앞을 유유히 지나가는 북경대학교 학생들, 그냥 학생들이 아니랍니다, T.O.P수재들이에요.




북경대학교의 또다른 특징은 겉으로 봤을 때는 개성이 별로 없다는 점이었어요.
붉은 색 현수막이 보이시죠? 붉은 색에 흰 글씨. 무슨 글씨가 써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우리 대학 문화와는 정말 달랐어요. 우리는 학생들이 직접 문구도 꾸미고 대자보도 붙이고, 현수막도 단대의 특징에 따라 개성있게 만드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북경대학교는 오직 붉은 색의 물결이었습니다.




그리고 길이 정말 넓죠? 북경대학교 안이에요.
북경대를 여름에 구경하실 때는 양산, 선크림, 모자, 선글라스 등등 '태양을 피하는' 것을 돕는 물건들이 필수예요. 저희는 여행객이라 양산까지 챙겨가진 못했기에 우산을 펴서 쓰고 다녔는데요, (애들 둘을 유모차에 끌고 다녀야 되는 저희 부부에겐 우산도 사치) 북경대학교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면서도 양산을 쓰고 다니더라고요. 그리고 물도 미리 챙겨가시는 것이 좋아요. 몰라서 더 그렇겠지만 어디에도 매점은 없었거든요.



도서관 건물입니다. 정말 멋있네요.




북경대학교 학생에게 물어 봤어요.
이 곳에 한국어학과가 있는지 말예요. 그랬더니 콕 집어 한국어만 가르치지는 않고요, 우리나라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가르치듯 북경대에서도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학과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입학할 때는 학부로 들어갔다가 전공을 선택하면서 (우리나라로치자면) 불문과, 영문과, 국문과(한국어), 일문과 등등으로 나뉘어지게 되는데,


뜻밖에도 한국 관련 학과는 인기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난리났다는 한류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가장 인기 있는 학과는 프랑스 관련 학과고요, 한국어 한국 문학과는 그냥 그렇대요. 중국 인구가 워낙 많으니까 그 중 일부만 한류인 것이었는데, 우리나라 언론에서 오바한 것이 틀림없었지요. 어쩐지 씁쓸...... .




자고 일어난 다솔이는 갑자기 찜통에 들어온 듯 후끈한 열기에 기운이 없습니다.
반바지를 입혀 놓았는데, 다리가 탈까봐 속싸개를 덮어 주었어요. 그 정도로 뜨겁고 덥고 습하기도 하거든요.




다행히 다인이는 아직 자고 있어서, 저는 여유만만으로 우산을 얻어 쓰고 학교 속에 있는 정원을 거니는 중입니다. 우산 속과 밖의 온도차가 어마어마해요.




누구였더라???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할 때는 일행이 많을 수록 훨씬 더 쉬워요. 다솔이는 저희 부부보다 같이 갔던 다른 분들을 더 따라서 늘 그 분들과 함께 있었어요.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아저씨, 아줌마가 자기를 귀여워 해 주고 안아주는 것이 신기하고 행복한 것 같더라고요.




드디어 깨어난 다인 양도 너무 더워서 놀라고,




잠시 쉬며 물도 마시면서 또다시 북경대학교를 구경했답니다. 중국어(혹은 영어, T.O.P 수재들인 북경대 학생들은 모두 영어를 잘 할테니까요.)가 되시면 학생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 보면 정말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준답니다.  학생들이 정말 착해요.




이 다리를 주의깊게 보셔야 돼요. 큭큭큭.


 


마침 졸업을 앞둔 북경대 학생들이 가운을 입고 졸업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요,
(중국은 9월에 학기가 시작해요.)




이 다리를 건너면 쪽문이 하나 있어요. 그런데, 이 곳에서도 꼭 여권을 보여 줘야만 다시 교정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 명심하셔야 해요.


저희 일행 중 한 명이 저 아저씨들에게 잡혔는데, 여권은 없지, 말은 안 통하지, 아저씨들은 중국인 처럼 생겼는데(?) 신분증은 안 주고 말도 안 통하니 이상하지, 다른 일행들은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져 보이지를 않지...... 자칫 큰일날 뻔 했는데, 도와 달라고 영어로 소리치고 북경대 학생이 도와줘서 겨우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해요. 나중에 듣고 우리가 얼마나 웃었는지, 당사자는 무서웠겠지만요.





어마어마하게 넓은 호수도 있고요, 남편의 모교인 건대 호수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까마득한 탑도 있고요,




특이한 조각상도 있고요,




통신사, 은행도 있는데,




매점만 없어서, 저희는 학교 밖 버스 정류장에 위치한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로 했답니다.




아이스크림은 대부분 2원이에요. 맛도 괜찮았어요.



북경에 온 첫날이었기에, 저는 중국어를 마구마구 써 먹어 보고 싶은 마음에, 가게 아저씨한테 커피가 있냐고 물어 봤는데, 아저씨가 있다며 꺼내 주시는 거예요. 흐뭇했지만 돈은 이번 여행에서 총무를 맡으신 분이 관리하시고 저는 1원도 없는 상태, 애매한 미소만 흘리고는 황급히 달아났답니다.


북경대학교 이야기는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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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어디일까요?
8차선 도로가 나 있는 곳인데도 뭔가 뻥 뚫린 시원한 느낌, 대도시인 듯도 하고 시골 같기도 한 이곳은?? 
바로바로 중국의 수도 북경이랍니다.




육교를 건너면 저 멀리, 북경대학교가 보입니다. 북경 여행의 첫날 저희 일행은 가장 먼저 북경대학교를 둘러 보기로 했거든요. 무려 12년 전에 제가 북경을 처음 여행했을 때에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가장 먼저 여행 일정표에 북경대학교를 적어 넣고,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버스타고 묻고 또 물어 북경대학교를 둘러 봤었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북경대학교에 왔습니다.


무려 12년 만의 방문.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북경대학교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첫 번째 방문 때 너무 늦게 도착해서 어둑어둑한 상황에서 교정을 둘러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제 기억 속에는 북경대학교에 대한 뚜렷한 인상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요, 단 하나 확실하게 변한 것은 그동안 북경대학교의 콧대가 많이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육교 위에서 북경대학교 정문 쪽을 찍은 사진인데요,
한 눈에도 보이는 우산들의 행렬. 비도 안 오는데 웬 우산이지? 싶으시겠지만, 저도 몰랐답니다. 북경이 이렇게 더울 줄은요. 아직 정오도 되기 전이었는데 어찌나 햇살이 뜨거운지 피부가 약하신 분이라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을 정도로 더웠었어요. 저희는 7월 초에 북경을 일주일 동안 여행했었는데, 북경 여행의 필수품이라면 단연 선크림과 모자, 양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가 있다면 휴대용 유모차도요. 꼭 챙겨 가시길......


북경으로 떠나는 남방 항공 비행기가 인천공항에서 오전 8시에 출발을 했던지라, 집에서는 4시 조금 넘어서 나왔고 북경에 도착해서는 호텔에서 짐만 풀고 나왔기에 서두르느라 선크림도 제대로 못 발랐었거든요. 허둥지둥했던 탓에 저는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모자를 안 챙겨서 정말 아찔할 정도였어요.



여행지에서 민낯으로 돌아다니다니 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요, 부끄럽네요. 그건 그렇고 중국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교인 북경대학교라면 정문도 넓직할텐데 왜 정문 앞에 사람들이 그렇게 바글바글한가 싶으시죠?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 북경대학교가 콧대가 세졌기 때문이에요.


북경대학교 학생이 아니면 중국인들도 교정으로 쉽게 들어갈 수가 없어요. 12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중국인들은 신분증을 외국인들은 여권을 필히 지참해야 북경대를 구경할 수 있다기에 여권을 챙겨 줄을 서는 중이에요. 땡볕에서 줄을 서서 한 명씩 마치 입국 심사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찜통에 들어 있는 감자처럼 푹푹 익어가는 중이지만, 그래도 여행은 즐거운 것, 저절로 웃음이 납니다.




와글거리며 줄을 서 있는 옆으로 북경대 학생들은 유유히, 어딘가 모르게 약간 힘이 들어간 채로 자유롭게 정문을 통해 학교를 들락날락합니다. 정문을 지키고 서 있는 공안(?)에게 지갑에서 학생증을 척하며 꺼내 줄 때 저절로 고개가 빳빳해지지 않겠어요?


북경대학교에 입학을 하려면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은 당연하고 중국의 23개의 성에서도 1, 2등을 다투어야 가능하다고 하니 뭐... 그럴만 하네요.




햇살 아래 얼굴이 익는 것을 느끼면서 삼십 분이 넘게 줄을 선 후에야 입교(?)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답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저 아저씨가 여권을 살피고 여권 번호를 적은 후 들어가라고 허락을 해 주세요.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다솔이 다인이가 북경대학교에 도착한 이후 한 시간 넘게 유모차 속에서 쿨쿨 자 주었던 것이었어요!! 효자, 효녀가 따로 없습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할 때 제일 걱정이 되었던 것이 아이들이었어요. 떠나기 전에는 32개월 다솔 군과 8개월 다인 양이 얼마나 잘 버텨 줄지 너무너무 걱정스러웠거든요. 중국의 7월은 너무 덥고 저희 가족만 간 것이 아니라 일정이 빡빡했기에 아이들이 잘 따라다닐 수 있을지, 다른 분들께 피해를 주지는 않을지 하나에서 열까지 염려가 안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여행을 떠나니 왜 걱정을 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좋았어요.


더웠지만 대부분 차를 빌려 이동을 했기에 별로 힘들지 않았고, 4살 2살 아이들이 생각보다 강했고, 다른 분들과 함께 한 여행이라 일정이 빡빡했어도 아이들을 돌 볼 손길이 많아서 좋았고, 유모차와 아기띠, 그리고 엄마아빠 품이 있기에 아이들은 힘들면 중간중간 자면 되었거든요.


아이들 때문에 여행이 걱정되신다면 주저 마시고 떠나라고 말씀해 드리고 싶어요.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을 테니까요. 저희 처럼 돌이 지나지 않은 아기와 함께 여행을 해야 한다면 비교적 편안한 패키지 여행도 괜찮을 것 같고요, 다솔이처럼 잘 걸어 다닐 수 있는 아이와 동행한다면 자유 여행도 즐거울 것 같아요.




드디어 북경대학교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자전거들. 중국 사람들이 워낙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북경 대학교가 넓으니 자전거가 필수이기도 해요. 걸어 다녀 보니 진짜 넓더라고요.




정문을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건물인데요, 지은지 별로 안 되 보이는 새건물이었어요. 체육관인것 같았어요.(혹시나 중국 관련 글에서 제가 글씨를 잘 몰라서 실수를 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길 바라요.)


이번 여행 때 중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방문했던 북경대학교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더 자세한 북경대학교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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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해도 표시가 나지 않고, 안 하면 금방 마음이 심란해 지는 것이 바로 청소가 아닐까 싶어요. 거실이 아수라장으로 변한지 오래, 발바닥이 끈적거리고 자세히 보지 않아도 다솔이가 흘렸을 것이 뻔한(아니면 다솔 아빠!) 얼룩들이 곳곳에 말라 붙어서 내 기분을 찐득하게 만들기에, 주말 동안 치우고 또 치웠는데 별로 달라진 것이 없네요.

치우고 돌아서면 다솔 군 & 다솔 아빠가가 아무렇게나 내던지거나 버려놓은 요구르트병, 휴지 조각, 맥주캔이 발 밑에 걸리고, 또 치우고 돌아서면 악마의 미소를 지은 다솔 군이 책장에서 책을 빼 휙휙, 장난감들을 홱홱, 정말 꽥 소리 나게 울화가 치밀지만 어금니 꽉 깨물고 웃는 낯으로 다솔이를 타이릅니다.


걸레를 빨기 싫어서 샘플로 받은 물휴지로 거의 기다시피 거실의 얼룩들을 닦아 내고 있는데, 이제야 알아챘다는듯 한 마디 하는 다솔 아빠. 청소하는 거야? 왜??? 육중해진 몸으로 바닦을 닦는 아내에게 어디 할 소리냐고요. 두 사람을 집에서 내 보내든지, 재우든지 한 후에 청소를 해야 마무리가 지어질 것 같아서 그만 두고 책상을 정리하던 중에 중국에서 쓴 가계부 겸 일기장을 발견했어요.




일기 쓰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다솔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한 장도 써 보질 못했네요. 여유가 생기면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해야겠어요. 2007년 후반부터 쓴 일기장이었는데 첫장에는 독서 목록도 있고(제가 좋아하는 한국 소설, 요즘엔 통 못 읽었어요.) 이후에는 중국에서 약 2년간 생활하면서 쓴 가계부겸 일기가 있었어요.




저는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사전을 찾아가며 해당 품목을 번역해서 써 두었는데요, 은근히 중국어 공부가 되더라고요. 어학 공부가 뭐 별건가요? 필요한 것부터 익히는게 좋죠. 그 땐 참 알뜰하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




중국에서도 인터넷도 하고 블로그도 했었는데, 통신 환경이 좋지 않아서 너...무 느렸어요. 그래서 대부분 그날 그날의 이야기들을 일기로 남겨 두었었답니다. 손글씨를 쓰면서 하루를 정리하는 일이 제게는 참 소중한 시간이었거든요. 천천히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마음도 정리하고, 계획도 세우고...... .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읽는데 그 때의 일들이 생생하게 다 기억이 나더라고요. 외국에서 살게 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잖아요? 기회가 된다면 또 비슷한 경험을 해 보고 싶은데,  완전히 가는 것은 싫고 적당하게 2년 정도 또 나갔다 올 수 있을까요? 그 땐 블로그로 일상을 정리할 것 같긴 해요.




제가 있던 곳이 중국 산동성 청주시라는 작은 도시라서 참 물가가 쌌었는데, 가게에서 양 손 가득 무겁게 장을 봐도 정말 저렴하게 살 수가 있었어요. 한국에서의 장 보기와 중국에서의 장 보기가 너무 심한게 차이가 난다는 생각을 하면서 휘리릭 일기장을 넘겼는데요,





마침 다솔이를 임신하고 있던 중이어서, 임신 중 몸무게 변화를 계획(?) 했던 내용을 발견했어요. 다솔이와 '달'이는 생일이 약 한 달 반 정도 차이가 나거든요. 저는 다솔이를 임신했을 때 나름대로 몸무게 사수에 성공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 수치를 참고하면 둘째 '달'이 때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달에 1kg씩 찌는 걸 목표로 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시장'에 몸무게를 재러 갔었답니다. 병원이 아니고 시장이요. 중국돈 0.5위안(1위안이 약 170원 정도일 걸요?)을 내면 옛날식 기계로 키와 몸무게를 재 주는데요, 결과지를 잘라서 주기 때문에 일기장에 붙이면서 몸무게를 점검했었어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몸무게였기에 키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어쩜 저리도 정확하게 156이라고 나왔을까요? 까치발 좀 들 걸 그랬네요.


현재 임신 28주가 조금 넘은 제 몸무게는 55kg, 다솔이때와 비교해서 정확히 2kg이 더 나가는 상황이에요. 중국에서는 못 미더워서 빵류, 과자류를 안 먹었었는데(한창 멜라민 파동이 있었던 시기였지요.) 지금은 조금의 허기를 못 참고 열량 높은 것들을 마구 먹기 때문인 것 같아요. 건강하게 식단 잘 조절하면서 다솔이 때 처럼 몸무게 사수에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두서없이 글을 쓰다보니, 청소 얘기- 가계부, 일기장 얘기- 몸무게 얘기까지 참 다양하게도 이야기가 흘러갔네요. 국어 시간이었다면 하나의 소재로 글을 써야 된다며 야단 맞았겠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일상 이야기니까 꾸짖지 말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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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주세요! 오늘이 바로 제 생일이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기념일에 무감각한 저는(이런 제 성격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 중이랍니다.) 솔직히 생일이라고 특별히 마음이 들뜨거나 기쁘지는 않은데요, 반대로 낭만이 철철 넘치는 남편은 밤 12시를 넘긴 시각부터 계속해서 유난을 떨고 있습니다. 눈만 마주치면 '생일 축하한다'는 인사부터 건네더니 이제는 수시로 집으로 전화를 해서까지 축하를 남발하고 있네요. 뭐, 그런 남편의 호들갑이 기분 좋긴 해요.

생일날엔 반찬부터가 다르죠. 오늘은 아침부터 미역국에 무친 나물에 소갈비찜까지 두둑하게 먹고 저녁엔 작게나마 생일 잔치를 벌이려고 해요. 가족들과 둘러 앉아 케이크에 나이 수 대로 초를 꽂고, 잠시 소원을 빈 다음 후후 불어 끄는 게 잔치의 전부이지만 그래도 행복한 생일 저녁을 보낼 것 같아요.

아, 선물이요?
당연히 있지요. 올 해 생일엔 특별히 더 귀하고 감동적인 선물을 받았어요. 어찌나 자랑을 하고 싶은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싶어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죠. 얼른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 선물을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에요.

다솔이가 낮잠을 자는 틈을 타 메일을 확인했다가 두 명의 학생에게서 생일 기념 메일을 받았어요. 제가 중국에 있을 때 가르쳤던 중국인 학생들이지요. 저는 웨이팡 교육대학 한국어학과에서 1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다솔이를 임신해서, 임신 7개월 때 학교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었답니다. 다솔이가 2009년 9월 생이니까 아이들과 헤어진지 벌써 햇수로 2년이 됐지요.

제가 떠난 후 또 다른 한국인 선생님을 만났을 텐데도 저를 기억해 주고 제 생일까지 기억해 준다는 것이 정말 감격스러웠답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일부는 졸업 후 취업을 했고 일부는 상급학교에 진학을 했어요. 아이들은 가끔씩 자신들의 소식을 메일에 담아 전해 오는데, 아무리 한국어과 학생들이라고 해도 한국어 자판을 외워서(자판에 한글이 써 있진 않으니까요.) 메일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의 메일이 저에게는 더 특별하게 느껴지지요.




중국 대학은 모든 학생들이 다 기숙사 생활을 하거든요?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대학교 1학년들이었는데 한국어학과 특성상 모두 여학생이었지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부모님과 거의 처음 떨어져서 먼 곳에서 생활을 하다보니 하나같이 다 외롭고 힘든 상황이었어요. 학생들은 저를 선생님이자 엄마로 생각했고 저는 학생들을 딸처럼 여겼었어요.

한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제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그만큼 순진하고 착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어도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내용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을 보면서, 교실에서는 인성 교육, 감성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답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저는 월급의 일부를 떼어서 매달 아이들과 생일 잔치를 열었었어요. 제가 근무하던 학교는 중국에서도 아주 작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아이들 중에는 생일 케이크를 먹어 보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고 제대로 생일을 축하받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어요. 스무 살이 되도록 생일 잔치를 처음 열어 봤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암튼 그 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음에 저는 감사하고 있답니다.




학생들은 저에게 메일을 보내어 취업 문제, 남자 친구 문제, 앞으로의 진로 문제 등등의 고민 상담을 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자신의 최근 사진을 보내 주기도 해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엄격하게 제한했던 각종 이모티콘들이나 인터넷 용어들을 볼 때면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성심성의껏 답장을 써요. 고민이 있을 때 저를 생각해 주어서 뿌듯한 마음도 들고요.

중국에 오면 꼭 자기의 집에서 머물라는 아이들, 공짜 여행은 떼어 놓은 당상이죠?
이런 제자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답니다. 오늘은 제 생일이니까 자랑 좀 해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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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집 근처 포장마차에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분식 삼종모둠을 모두 사 왔다. 요것들 없이 내가 어찌 살까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떡볶이, 순대, 튀김을 들고 집으로 오노라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순대는 소금에 튀김은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정석이지만 나는 모두 빨갛고 감칠맛나는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주인 아주머니께 늘상 떡볶이 국물 좀 넉넉하게 달라고 애교를 부리곤 한다. 쫄깃쫄깃 매콤한 떡볶이와 탱글탱글 고소한 순대, 그리고 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 튀김을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중국에서의 경험이 떠올라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매일은 먹을 수 없지.

그렇다. 특히나 튀김은 더욱 그렇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제 아무리 튀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매콤한 떡볶이 국물이 아닌 간장에 튀김을 찍어 먹는 사람이라도, 간장 없이도 고소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결코! 매일 튀김만을 먹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중국 음식이 기름지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자장면을 한그릇을 욕심내서 싹싹 비운날에 속이 더부룩한 까닭도, 달달한 탕수육과 고소한 군만두를 좀 격하게 먹은 후 속이 뒤틀리는 경험을 하는 까닭도 그 속에 들어 있는 방대한 양의 기름 때문일 겨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먹는 중국 음식은 대부분 한국인 입맛에 맛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느끼한 음식들도 사실은 기름의 양을 대폭 줄인 것들이다. 중국 본토에 가서 그들의 음식을 먹기 전까지는 중국 음식이 기름지다는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상상할 수 없다. 정말이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중국인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총 체류 기간은 일주일이었는데 4일은 친구 집에 머물면서 근처 관광지와 중국 현지인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나머지 3일은 친구 집 근처로 이동을 하는 경로로 계획된 여행이었다.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중국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그들의 삶의 방식을 같이 체험해 보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각오를 했다. 일주일동안 그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기로 작정한 것이다. 샹차이(중국 특유의 향이 가득한 야채인데 처음 먹는 사람은 몸서리 쳐지는 끔찍한 맛을 경험한다.)가 듬뿍 들어가 있든 팔각(불가사리 모양으로 생긴 향신료인데 껍질을 까면 통후추처럼 생긴 동그란 모양이 나온다. 잘못 씹으면 치약처럼 화한 향이 가득퍼진다.)이 셀 수 없이 많든 주저없이 먹기로 결심을 하고 떠났다.


그런데 예상외의 복병은 골이 흔들리는 샹차이도 폭탄처럼 터지는 팔각도 아닌 별것 아닌(?) '기름'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기름에 짭짤하게 튀겨낸 도너츠 같은 것(요티아오)을 먹는다. 속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아서 맑은 죽과 함께 먹는데 기름이 어찌나 푹 스며들어 있는지 아침부터 먹기엔 속이 너무 느글느글했다. 그네들은 의외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 저녁을 풍성하게 먹는데 식탁 위에 상큼한 맛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이름 모를 국과 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볶아낸 각종 아채들, 육류 본래의 기름에 땅콩 기름까지 더 해진 탕수육 비슷한 음식들, 소스에 기름이 걸죽하게 들어있는 생선요리 등 모든 음식엔 기름이 듬뿍 듬뿍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이틀을 연이어 먹고 나니 속이 너무 불편했지만, 손님이 왔다고 신경을 많이 써 주시는 걸 잘 알기에 맛있게 먹는 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친구 어머니는 중국 음식이 맛있는 이유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가득 붓고 팔팔 끓인 다음 센 불로 재료를 익히기 때문이라고 비법까지 살짝 전수해 주신다. 그들의 말로는 볶음이지만 내가 보기엔 튀김인 그 음식들은 너무 기름진 탓에 재료만 다르지 맛은 모두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짠 튀김, 달콤한 튀김, 매콤한 맛이 조금 든 튀김, 모두 튀김이었다. 식탁 가득 차려진 기름 가득한 진수성찬을 뒤로 하고 생나물에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삼일 째 아침 또 기름이 푹 밴 도너츠를 먹는데 헛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아침부터 애꿎은 콜라만 몇 잔씩 들이키다가 나는 내 결심을 뒤엎고 친구 몰래 가게로 뛰어갔다.


느끼함에 이미 이성을 잃은 내가 정신없이 가게에서 찾아낸 것은 바로 한국 컵라면! 튀김만 먹은지 삼일 만이었다. 미친듯이 계산을 하고 그 자리에서 물을 붓고 국물부터 들이키니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묵었던 체증이 싹 가시는 느낌이 든다. 누가 라면을 기름진 음식이라고 말했던가. 그렇게 담백하고 얼큰한 음식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었다.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정말 맛있게 먹고 나니 이젠 슬슬 잔 꾀가 나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어머님 힘드신데 한국 음식점에서 식사 대접을 해 드리는게 어떻겠냐고 친구를 꼬이는 것으로부터 타국에서 한국 음식점을 찾으니 반가운 마음에 아니갈 수 없다는 눈물겨운 거짓말까지.

귀국 후 중국 음식의 후유증에서 겨우 벗어난 후, 고소한 튀김 생각에 퇴근 후 다시금 사 먹고 있긴 하지만 기름 솥에 빠진 것만 같았던 끔찍했던 그 날들을 잊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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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이런 방송이 있었다. 동양에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 관한 도저히 믿지 못할 이야기가 들려 온다는...... . 그 나라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밤 늦게까지 고등학교 건물의 불이 꺼지지 않는데,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과연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더욱 있을 수 없는 것은 학생들이 아침에 등교하는 시간이 7시 30분이라는 것.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꼭두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실제로 이런 내용으로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고등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단다. 믿거나 말거나라는 씁쓸한 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이 방송 얘기를 하면서 농담 반 냉소 반으로 우리들이 겪던 심적 고통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더욱 놀라운 말을 들었다.

내 친구는 중국 산동성에 있는 대학교의 한국어학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친구는 타국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척 보람된다면서도 중국 학생들의 뜨거운 학구열을 볼 때면 위기 의식을 느끼기도 한단다. 가끔은 활발한 동아리 활동도 없고 특별한 재밋 거리도 없는 중국 대학생들이 가엾게 보일 때도 있지만 술문화가 너무 심하게 발달(?)돼 있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걱정된다는 소리이다.

친구가 말해 준 중국 대학생들의 생활은 이렇다.(산동성에 있는 대학교의 상황이며 다른 곳은 또 사정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요즘 중국 경제가 많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학 시설은 그다지 좋지 않은 듯 했다. 6인 1실로 돼 있는 기숙사에는 철근으로 만들어진 3층 침대가 양쪽으로 놓여 있고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겨울에도 난방이 잘 되지 않으며 뜨거운 물도 잘 나오지 않는다.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나 철저해서 밤 10시 이후론 전기를 쓸 수도 없는 대학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학생들은 특별한 불평을 하지는 않는단다.

단체로 기숙사 생활을 해서인지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데, 학생들은 밤 10시에 잠을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7시가 조금 넘으면 모든 학생들이 아침 자율학습을 하러 교실로 향한다. 수업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되는데 우리와는 달리 모든 강의가 2시간 씩이다. 50분 수업에 10분 쉬는 것을 2번 반복하는데 특이한 점은 고등학교 때처럼 수업 종이 울린다는 것. 수업 시작과 끝에 종이 울리기 때문에 교수들은 정확히 그 시간을 맞추어야 된다. 우리 나라 대학처럼 2시간 짜리 수업을 대충 1시간 15분쯤 하고 일찍 끝내버리는 일이 중국에선 있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에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휴강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의아해하면서도 좋아했던 적이 많았지만 중국에서는 휴강이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수업은 대체로 6시에 끝나는데 저녁 식사를 하고 난 이후에도 야간 자율학습이 있단다. 보통 9시까지 자습을 한 다음에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게 된다. 아침부터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학교가 중국에도 있었다. 그것도 시간표에 따라서, 그것도 대학교에서. 정말 놀라웠다. 만약 우리나라 대학교에서 이렇게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학생들은 시간에 맞게 수업을 하는 것이 습관화 돼 있어서 종료 종이 울리지 않으면 아무도 끝까지 움직이지 않는단다. 친구가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시간 안배에 실패를 해서 10여분 정도 일찍 수업이 끝나버린 적이 있었는데, 왜 수업을 일찍 끝내냐며 눈을 말똥거리는 학생들 때문에 민망해서 혼났다고 했다. 어떻게든 일찍 끝내고 싶어서 안달인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것은 벌써 꽤(?) 오래 전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들의 모습과 지금 대학생들의 모습이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엄청난 학비를 들여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들이는 돈에 비해서 학생들이 너무 적게 얻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본전 생각을 하기에 우리 대학생들이 지혜롭게 대학 생활을 해서 등록금을 본전 뽑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서관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도 좋고 각종 어학 시설이나 복지 시설 등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준비만 돼 있으면 적은 돈으로 교환 학생이나 해외 연수도 갈 수 있다. (물론 중국도 대도시는 다르겠지만)중국 대학생들은 좁아터진 기숙사에서 밤 10시 이후엔 전기를 쓸 수도 없는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공부하고 있단다. 우리나라 대학교는 정말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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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연수차 방문한 중국에서도 프로필 사진을 찍어봤다. 한국에서 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황송한 대우를 받으며 찍은 프로필 사진. 오랜 시간을 공들여 찍은 사진이라 애착도 가고 한국과는 사뭇 다른 환경에 재미있기도 했다. 요즘에는 특별히 써 먹을 데가 없어도 재미삼아 한 두 번 찍어 보는 것이 프로필 사진이기에, 외국에서의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 본다.

이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나는 외국어를 할 줄 모른다. 최근들어 중국에 관심이 생겨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왕초보라 간단한 생활중국어(일명 서바이벌 회화) 정도만 겨우 할 정도이다. 그런 나와 내 친구가 중국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게 될 줄은 솔직히 나도 몰랐다. 우리는 그저 한국에서는 비싸서 하지 못하는 것들을 상대적으로 값이 싼 중국에서 많이 해 보자고 별러 왔었기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색해보다가, 사진 촬영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아, 우리가 사진을 찍은 곳은 중국 산동성 칭조우에 있는 괜찮아 보이는 웨딩&프로필 사진관이었다. 칭조우는 한국으로 따지면 '군'이나 '읍' 정도 될 것 같은 시골 동네인데, 시골이라 발전이 되지 않아서인지 그야말로 '중국'이다.(칭조우에 관한 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한다.) 왕초보 둘이 우물쭈물 사진관에 들어갔는데, 우리의 폼새가 심상치 않았는지 직원들이 관심 있어 하며 몰려들었다.(칭조우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는데도 그 사진관에는 예약 접수를 받는 직원만 5명 정도, 화장해주는 직원 3명, 도우미(옷 갈아입을 때) 5명, 사진기사 5명....등 참 많은 직원들이 있었다. 중국이 아직은 인권비가 싸서 그런 것 같았다.

손짓 발짓에 전자사전까지 동원해서 프로필 사진을 찍기로 예약을 했다. 옷 3벌을 선택할 수 있고 화장이랑 머리 등을 매만저 주는 서비스가 포함된 가격이 흥정해서 180위안이었다. (아, 중간에 점심으로 햄버거도 준다.) 사진은 20장을 고를 수 있단다. 180위안이면 지금 환율로 따지면(환율이 많이 올랐다.) 많이 쳐서 36,000원이다. 아침 일찍가서 화장하고 사진을 다 찍는데 4시간 정도 걸리는데, 36,000원이면 정말 싼 가격이다.

드디어 예약한 날짜가 되어 들뜬 마음으로 사진관을 찾았다. 먼저 옷을 고르는데 엄청나게 종류가 많아서 어떤 옷을 골라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중국에 왔으니 중국 전통의상을 우선으로 고르고, 긴드레스도 고르고, 짧은드레스도 골랐다. 눈치를 보니 내가 고른 옷은 다른 사람들이 잘 고르지 않는 것이었나 보다. 옷에 따라서 머리와 장신구들을 다르게 해 주는데, 내가 고른 긴드레스에는 특이하게도 단발머리 가발을 씌어 주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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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화장할 때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메이크업 베이스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액체가 있는데 추가로 돈을 더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사진가격이 180위안인데, 그 화장품도 180위안!! 화장 효과가 떨어진다는 얘기와 계속되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필요없다고 외치며 그들의 눈치를 견뎌냈다(!!!) 다른 사람들 화장하는 것을 보니까 가부키 화장하듯 얼굴 전체를 허옇게 떡칠하더니 그 위에 파운데이션을 발랐다. 아마 평소에 화장을 잘 하지 않는 중국인들이라, 피부 상태를 극도로 좋아보이게 하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180위안은 너무 비싸다. 그리고 또 특이한 것은 중국의 화장에는 쌍꺼풀 테이프가 들어간다. 그것도 한 쪽 눈에 두 번이나!! 내가 볼 때 사진 나온 것이 약간 어색한 까닭도 그 쌍꺼풀 테이프 때문이다. 나는 속쌍꺼플이 있는 눈인데도 불구하고 테이프를 붙여서 성형한 것 처럼 어색한 쌍겹을 만들어 놓았다. 처음엔 정말 어색했는데, 자꾸 보니 눈이 커 보여서 성형을 고민하게 만드는 화장술이었다.(사진엔 너무 어색하다.)

제일 먼저 입은 것은 검은색 무늬가 있는 긴 드레스. 짧은 가발과 검은 모자, 장갑까지 세트로 갖춰줘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쓱 둘러봐도 다른 사람들은 쓰지 않은 가발을 나 혼자 쓰고 있으니 괜히 더 특별해 보여서 더 좋았다. 사진 찍을 땐 여자 사진 기사 분이 포즈를 취해 줘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될 지를 알려줬다. 말이 안 통해도 역시 무사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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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중국 전통의상을 입었다. 잘 보이지 않는 뒷머리까지 가모를 넣어 봉긋하게 만들어 주는 등 세심하게 신경 써 줬다. 전통 모자가 어찌다 무겁던지 목 디스크가 걸릴 지경이었지만 예쁜 사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꾹 참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는 포즈는 정말 어려웠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짧은 드레스를 입었는데 머리를 촘촘한 빗으로 빗어서 펑키 스타일로 만들어 줬다. 세상에! 이런 머리를 한 사람도 그 사진관에선 나 밖에 없었다. 당황스럽겐 했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이런 머리를 해 보겠나 싶어서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좀 웃겼던 것은 머리에 꽃을 달고 끈을 연결하는데, 딱풀로 이마에 붙이는 것이 아닌가? 아무렇지 않게 풀칠을 하더니 이마에 붙여주는데 황당하면서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짧은 드레스 안에 입은 망사바지도 중국에서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할 것 같았다. 옷 뒤에 길게 늘어져 있는 천을 이용하여 옷이 날리는 듯 한 효과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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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4시간의 촬영이었지만 내내 재미있게 사진을 찍었다. 가격이 저렴해서 또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다른 옷과 다른 스타일로 또 찍어보고 싶기도 하다. 여유가 된다면 해외 여행을 할 때 유명한 유적지만 가는 곳이 아니라 그 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더 깊숙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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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무심코 집어 든 무가지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자세하게 읽어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으나 '포스트 올림픽, 중국은 종이 호랑이였다(?)'와 비슷했던 것 같다. 여러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중국이었기에 올림픽 개최와 동시에 엄청나게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과는 달리 올림픽이 끝나고 나니 그냥 별 볼일이 없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중국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을 짧게 경험해 본 사람이 오히려 중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보다 더 중국에 대해 잘 아는 듯 얘기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평범한 삼십대 여성인 나는 솔직히 경제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우리는(특히 나처럼 평범한 여성들은) 아직도 중국을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오늘 블로거 뉴스에서 중국의 술 문화와 담배 문화에 대해 소개해 놓은 글을 읽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부분을 사실감 있게 써 놓은 글이라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글에 달린 덧글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중국 술은 호텔의 등급을 별의 개수로 표시하는 것과 같이 좋을 수록 별이 많다는 설명에, '그래봤자 메이 드 인 차이나'라는 글이 달린 것이다. 잘은 몰라도 내가 생각하기에 중국 술의 역사가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더 오래됐으며 중국 술에는 좋은 술이 참 많은 것 같다.(한국 술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런데도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말 자체가 흉이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연수 차 중국에 두 달 정도 다녀왔다. 그런데 나와 함께 중국에 갔던 동료들의 태도가 정말 이상했다. 물론 그들도 중국을 이해하고 나서는 태도가 달라졌지만 처음 몇 주 동안은 좀 심했다. 목이 말라서 음료를 사러 들른 슈퍼마켓에서 몇몇 동료들은 쉽게 물건을 고르지 못했다. 중국어를 몰라서 그러는 가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중국 음료의 맛과 품질을 믿지 못해서였다. 중국 사람들은 찬 음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음료수를 상온에 보관하고 냉장 보관이 필요한 것들만 냉장고에 넣어 둔다. 기름 진 음식을 많이 먹는 그네들의 음식 문화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들의 뜨뜨미지근한 음료에 대해 불평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다 중국 음식점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는 나와 몇몇 사람들이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을 만큼 중국을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은 정말 맛있냐며 의외라는 눈길을 보낸다. 서양 음식을 먹을 때는 그 음식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촌스럽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맛이 없어도 그냥 맛있는 척 할 때도 많다. 그런데 중국 음식에는 거부감이 먼저드는 것이 왜일까? 위생상태를 믿을 수 없다며 중국의 명물 길거리 음식에는 눈길조차 안 주던 사람들이 우리 나라 포장마차엔 잘도 간다. 중국 음식은 느끼하며 요구르트까지 비리다는 사람들이 퐁듀에 크림스파게티는 잘만 먹는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듯 중국 사람들의 기질과 그들의 풍습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게되자 불신의 벽이 사라지고 우리는 모두 중국을 좋아하게 됐다. 중국 음식을 먹기 전에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 인상부터 찌푸리고 보던 사람들도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 중국 음식을 잘도 찾아서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연수가 끝날 무렵 한국에 있는 친한 친구와 했던 전화통화에서 다시 한 번 중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중국에서 유명한 차 전문점 티엔푸(天富)에서 질 좋은 보이차와 영양 좋은 말린 과일 등을 샀다. 중국은 차(茶)로 유명한 나라인 만큼 그곳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던 진귀한 찻잎들이 가득한 곳이라 정말 놀랐었다. 귀국하기 전 친구에게 안부전화를 하며 그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대뜸 '선물은 면세점에서 사 오지, 나 중국 제품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한다. 허물없는 사이니까 이런 얘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그 친구 역시 중국을 아직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이 이전에 샀던 중국산 물건이 질이 떨어지는 이유는 중국 제품을 사려는 소비자가 싼 것만 찾기 때문이 아닐까? 적은 돈을 주면서 그 이상의 품질을 기대하는 것 부터가 무리다. 중국산 싸구려 제품들만 접해 보고서 모든 중국 제품들이 그러하겠거니 생각하지 말자는 말이다. 내가 두 달동안 중국에서 체류하며 느낀 것은 중국을 우리보다 한참 아래로 생각했던 인식들을 빨리 바꾸어야겠다는 것이다. 중국을 좀 더 바르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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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이 연이어 하락하면서 무한도전에 위기설이 솔솔 나오고 한다. 이번 식목일 특집 무한도전은 나무를 심는데보다는 박명수의 '생수 숨기기'를 메인으로 하여 큰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목적과 취지에 맞지 않았고, 컨텐츠의 집중도나 완성도를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무한도전은 원래 산만한 컨텐츠로 시작되었지만 그 산만한 내용도 어느덧 인기에 힘입어 하나의 정리된 포멧으로 인식 되었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그런 포멧에서 벗어나 전하려는 메세지도 흐려지고 억지스런 모습이 종종 보였다. 박명수의 '생수 숨기기'는 나무 심기라는 재미없는 주재를 무시하고 따로 생수를 훔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생수 숨기기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박명수가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장난이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의 비중이 커진 것은 억지스럽게 다른 것이 할 것이 없어서 끼워 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한 총선 후보 187명의 선거로고송을 불러주고 있는 박현빈이 난데없이 새벽에 나타났다. 뜬금없이 새벽에 중국 사막에 와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오아시스 찾기 놀이 좀 하다가 끝났다. 박현빈에 대한 것이 계획에 없었다면 미리 연락을 취하여 헛걸음하게 하지 말던가, 이왕 왔으면 최대한 박현빈을 사용하여 시너지를 내야 할텐데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그의 특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어색할 뿐이었다.

예능 프로임을 감안하여 나무의 관리방법이나 황사를 예방하는 현실적인 방법의 캠페인이나 식목일에 대한 의미나 참여유도등에 대해선 논하지 않기로 하더라도 중국에 가서 웃음을 줄 수 있었던 소재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박명수의 '생수 숨기기'밖에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매번 대박을 낼 수는 없지만, 인도편에 이어 중국편에서 보여준 용두사미 꼴의 내용은 무한도전에 대한 신뢰도와 충성도를 낮추는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무한도전 초창기부터 즐겨봐왔던 무도팬으로서, 무한도전이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움츠림 혹은 1보 후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한 과도기적 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김태호 PD의 마인드나 무한도전에 대한 비전도 공감하고 지지한다. 시청률은 신경쓰지 말고, 원하는 컨텐츠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 더욱 완성도높은, 탄탄한 내용이 먼저이다. 시청률이 저조했던 초창기에도 새롭고 무모한 도전으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주었던 것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Zero base에서 새롭게 깨어나는 무한도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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