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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지하철을 탔다가 7인용 노약자석을 봤다. 와, 신기하다! 했는데 친구의 말이 이것(노약자석 확대) 때문에 얼마나 말이 많았는데 이제야 알았냐고 한다. ...... 그랬던가? 노약자 중 '노(老)'에 대한 반발이 심했었다는데 어쨌든 나는 '임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통과.

임신 9개월이 될 때까지 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대중 교통을 이용했다. 뭐 그 때쯤 되면 별로 외출할 일도 없거니와 밖에 나갔을 때도 먼 곳에는 갈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버스와 지하철로 다녀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운동 삼아 지하철을 타면서도 항상 노약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습관처럼 빈 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리게 됐다.

엘리베이터는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타 보겠냐 싶었고, 자리 찾기는 오히려 움직일 때는 괜찮은데 달이 찰 수록 한 곳에 오래 서 있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빈 좌석을 찾으면 앗싸라비아지만 없으면 출입문 쪽 막대 손잡이에 몸을 기대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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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6개월이 넘어서 배가 어느 정도 볼록 나오게 됐을 땐 지하철을 탈 때마다 누군가가 양보를 해 주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도 했지만 생각보다 지하철 인심은 야박했다. 배가 덜 나와서 그냥 살 찐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싶어 일부러 배를 쓸어내리는 시늉도 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번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배 쓸어내림'을 하다가 왠지 치사한 생각이 들어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포기는 빨랐고 그 편이 현명했다. 자리가 없으면 아예 출입문 쪽으로 서고 만다. 하긴 생각해 보면 똑같이 차비 내고 타는 지하철인데 임신부라고 특별히 앉을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불편할 줄 뻔히 알면서 왜 굳이 지하철을 탔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8개월 때까진 그런대로 서 있을 만 했고 요령껏 즐길 줄도 알았다.

임신 8개월 때부터는 슬슬 3인용 노약자석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나도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는 늘 불안했다. 소문히 흉흉했다. 갓 임신한 여성이 그 자리에 앉아 깜박 졸다가 새파랗게 어린 것이 어른 공경할 줄 모른다는 고함소리에 기함할 뻔 했다는 얘기, 무방비 상태로 머리를 맞았는데 놀라 쳐다보니 웬 할아버지의 부채였다는 얘기, 그 자리에 앉을 땐 절대로 한 눈을 팔아서는 안되고 배를 있는 힘껏 내밀고 주위를 살펴 경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들이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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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리를 양보 받아서 목적지까지 편하게 가 보겠다는 심보가 고약하긴 하지만 지하철에서 임신부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야박한 것은 사실이다. 일찌감치 자리를 포기하고 출입문 옆 막대 손잡이에 기대가던 어느 날, 누가 봐도 만삭이 분명한 여성이 7인용 좌석 앞에 서 있는 것을 봤다. 그 여성도 도움을 구하는 '배 쓸어내림'을 하는 듯 했지만 끝끝내 앉아 갈 수는 없었다.

3인용 노약자석 위 그림 속에는 분명히 배가 볼록 나온 임신부가 있는데 그 자리엔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서 임신부 따위(?)는 엉덩이를 들이밀 수 없었다. 이제(친구는 이미 한참 전이라고 말했지만) 지하철에 7인용 노약자석이 생겨났으니 오갈 데 없는 임신부들이 맘 편히 차지할 자리가 하나 쯤은 생겨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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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술 하셨어요?'라고 누가 물으면, 나는 늘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듯 수줍게 대답하곤 했다. '아...... .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요' 역아인 경우에는 자연분만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

임신 27주부터 한결같이 내 가슴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는 아기 때문에 나는 무척 애를 태웠었다. 주위에서 나중에 자리를 잘 잡는 경우도 있다고 많이 들었기에 처음에는 별로 걱정도 하지 않고 '그까짓 것' 했지만 32주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수시로 고양이자세 체조를 하면서 아기 머리가 아래를 향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35주가 넘고도 아기가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이자 나는 너무나도 불안해서 수시로 인터넷 카페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역아'에 관한 글을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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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by bies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육중한 배를 하고서 고양이 체조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가만히 서 있어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데 무릎을 꿇고 배를 아래로 내렸다 올렸다 하면 허리에 얼마나 무리가 가겠는가. 그런데도 자연분만을 하고자 나는 수시로 고양이 체조를 했고 나중에는 물구나무서기까지 시도했었다. 물구나무서기는 잘못 하다가 큰일 날 것 같아서 결국 하지 않았지만 수술을 계획한 38주 4일 되던 날까지도 자연분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끝내 아기는 자리를 바꾸지 않았고 나는 제왕절개를 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일 때까지 힘을 줘야 하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진통을 열 시간 넘게 참아 내야만 하는 것이 자연분만이다. 힘을 주다가 얼굴에 있는 실핏줄이 다 터지는 사람들도 숱하고 하도 이를 악물어서 치아가 상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물론 마취를 하기에 고통스러운 아픔은 없지만 척추 마취를 하고 정신이 말짱한 상태로 분만 수술의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들어야만 한다. 무서워서 벌벌 떨리고 심장이 밖으로 나오려는 상황을 인내하면서, 내 배를 가르고 잡아 당기고 아기를 꺼내고 피와 불순물을 다 제거하기 위해 위에서 배를 내리 누르는 모든 상황들을 그야말로 이겨내야만 한다.


자연분만은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모든 고통도 사라진다고 들었다.(아, 회음부의 상처가 심한 분들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많이 불편하단다.) 반면 제왕절개 수술의 경우는 낳고 나서부터 고통이 시작된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다는 무통 진통제가 있는데 뭐가 그리 아플까 하시는 분들께 무통 주사가 정말 無痛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고 연거푸 설명해도 듣는 사람은 그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오죽하면 친정 엄마까지도 '별이(태명)가 엄마 힘들까봐 거꾸로 있는 것이라며 제왕절개를 앞두고 심란해 하는 당신 딸을 위로 하셨을까.' 내가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제왕절개의 아픔을 아무리 설명해도 엄마는 그래도 자연분만에 비하면 세발의 피밖엔 되지 않는다며 제왕절개는 '거저 낳는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나중에 제대로 회복이 안 돼 앉지도 못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당신 딸을 보시곤 너무나도 마음 아파 하셨지만 그래도 자연분만의 위대함에 대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실 것이다. 나도 자연분만을 한 산모들이 그 힘든 고통을 이겨내고 아기를 낳았다는 것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제왕절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들엔 억울한 생각이 든다.



bisous
bisous by Alain Bachelli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제왕절개를 하면 쉽게 아기를 낳는 것이고 너무 쉽게 낳다 보니 자연분만한 엄마에 비해 모성애도 적으며 모유수유 또한 어렵다는 잘못된 생각들이 내가 가장 속상한 부분이다. 내가 직접 경험해 보니 제왕절개도 정말 아프며 특히 물 한모금 먹지 못하고 꼼짝달싹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던, 밤에는 통증이 더욱 심해져서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던 수술 후 첫 이틀은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그리고 모유에 관한 부분은 자연분만을 한 다른 산모들과 마찬가지로 출산 후 삼일이 지난 날부터 초유가 돌기 시작하더니 한 달이 조금 넘은 지금은 모유로만 아기를 기르고 있다.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도 자연분만한 산모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때면 괜시리 위축되어 방청객처럼 감탄사만 연발하며 듣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후회스럽다. 같이 맞장구 치면서 제왕절개를 한 내 이야기도 함께 했어야 되는데 말이다. 임신/출산 관련 카페에 가 보면 많은 임신부들이 자연분만을 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는데, 물론 자연스러운 것이 좋기는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무리하게 자연분만만을 고집하지 말고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 똑같이 열 달 동안의 임신 기간을 거쳤고 힘든 분만 과정을 이겨낸 제왕절개한 엄마들 더이상 기죽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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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너무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아니 황당하다는 것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어이없고 화나는 일이었다. 내가 겪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야말로 내 분을 삭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글을 쓴다.

친언니 처럼 지내는 친척언니의 생일날 나는 어떤 의미 있는 선물을 사 줄까 고민하다가 오랫만에 기특한 생각을 해 내게 됐다. 직장 일과 가사 일을 병행하고 있는 언니의 건강을 챙겨주기로 맘 먹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선물이라봤자 고작 머리핀이나 책, 인형 등등 값싸고 주기 쉬운 것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고급 영양제를 선물하기로 한 것이다. 주부가 되면 자신보다 남편이나 시댁, 친정을 더 먼저 챙길 것이 뻔하기에 언니의 몸은 동생이 챙겨줘야 한다. 그래서 이왕 사는 거 비싸더라도 좋은 것으로 골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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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에게 영양제 하나 좋은 것으로 달라고 했더니 '코엔자임큐텐을 함유한 비타민, 미네랄 종합 영양제 XXXX'를 권해줬다. 가격은 자그마치 8만원!!! 내가 먹을 것이라면 2~3만원대로 샀겠지만 그동안 언니에게 받았던 무한한 사랑에 보답하고자, 손을 떨며(?) 이 약을 샀다. 솔직히 나는 코엔자임큐텐이 뭔지도 모르고 종합영양제 안에 어떤 성분들이 포함돼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많이 들어봄직한 제약회사에서 만들어 진 약이고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기에 그저 좋은 것이려니 했다. 또 약 상자에 쓰여있는 문구도 딱 내 마음에 들었다.

결혼한지 6개월 정도 된 언니이기에, 이제는 슬슬 귀여운 아기를 잉태할 때도 된 것 같다는 내 생각을 이 약을 통해 은근히 언니에게 전할 요랑이었다. 그래서 약 상자에 써 있는 이 약의 효능/효과 문구가 참 맘에 들었던 것이다.
[효능/효과] 다음 경우의 비타민 A, D, E, B1, B2, B6, C의 보급, 육체피로, 임신, 수유기, 병중, 병후의 체력 저하시, 발육기, 노년기, 눈의 건조감의 완화, 야맹증----이하 생략
특히나 임신, 수유기인 여성이 먹으면 좋다는 이 문구가 언니에게 은근히 전해지길 바라며 나는 기쁜 맘으로 이 약을 언니에게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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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후 언니네 집에서 밥을 먹다가 8만원짜리 생일 선물을 너무도 생색내고 싶었던 나머지, 나는 언니에게 그 약 잘 챙겨먹고 있냐고 기세등등하게 물어봤다. 그런데, 언니의 대답이 너무나도 예상밖이어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언니는 슬슬 2세를 계획하고 있어서 무슨 약이든 먹을 때 조심한다고 하는데(당연하다!), 내가 줬던 그 약이 언니의 2세 계획에 문제가 있어서 형부가 대신 먹는다는 것이 아닌가?

임신, 수유기 여성에게 좋다는 문구가 특히 마음에 들어서 샀던 약이 임신에 문제가 된다니 나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언니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언니가 약 상자 속에 들어있던 첨부문서를 보여줬다. 나 같으면 읽지 않았을 긴 설명서를 언니는 꼼꼼하게도 읽어봤나보다. 효능/효과에 '임신, 수유기'라고 동일하게 표시돼 있는 그 설명서 아래에는 '사용상의 주의사항'이 써 있었다.
1. 경고 임부에 비타민A(레티놀)를 1일 5000IU 이상 투여하는 경우에는 선천성 기형을 유발할 위험이 있으므로 임신 3개월 이내 또는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부인에는 비타민 A를 5000IU/일 이상 투여하지 않습니다.---이 영양제에는 비타민 A가 5000IU 들어있어서 문제가 된다.

또 다음 '환자에는 신중히 투여하십시오'라는 설명 아래에는 5)임부, 수유부라고 써 있었다. ----분명히 임신, 수유기의 사람에게게 효능과 효과가 있다고 해 놓고 그것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게다가 '7. 임부, 수유부, 미숙아, 유아에 대한 투여' 항목에는 1) 외국에서 임신전 3개월부터 임신초기 3개월까지 비타민A를 10,000IU/일 이상 섭취한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아이에게 두부신경릉 등을 중심으로 하는 기형발현 증가가 추정된다는 역학조사결과가 있으므로 임신 3개월 이내 또는 임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부인에는 비타민A 결핍증 치료에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약을 투여하지 않습니다. 또한 비타민A 보급을 목적으로 이 약을 사용하는 경우는 식품 등으로부터의 섭취량에 주의하고 이 약에 의한 비타민 A투여는 5000IU/일 미만에 머물도록하는 등 적절한 주의를 합니다. 2) 비타민 D는모유로 분비되어 신생아에게 과칼슘혈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3) 임신 수유중 과량복용시 태아 및 영아의 갑상선기능장애 및 갑상선종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라고 써 있었다.

분명히 나는 임신 계획이 있는 여성이 먹을 영양제라고 약사 아저씨에게 덧붙여 말했고, 약사 아저씨는 내가 산 영양제가 아주 좋은 것이니 누가 먹든 상관 없이 좋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이런 무시무시한 내용이 사용 설명서에 적혀 있을 줄이야~! 만약 언니가 설명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읽어보지 않았다면 정말 큰 일이 났을 수도 있는게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사의 말과 약 상자와 약 병에 써 있는 계략적인 설명만을 믿고 약을 복용할 것이다. 사용 설명서를 꼼꼼하게 밑줄 그어가며 읽어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상반된 내용을 포함 하고 있는 약을 별다른 설명 없이 판매한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약을 산 나도 문제지만,  8만원이나 되는 돈을 너무 쉽게 벌어간 약사와 더 알기 쉽게 약의 성분과 효능을 표기하지 않은 제약회사가 더욱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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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상자 속 깊숙히 들어 있는 자세한 사용 설명서를 더 잘 눈에 띄게 보여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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