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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고향집에서 만난 남동생. 그 날 따라 어깨가 유난히 축 늘어져 보이길래 무슨 일 있느냐고 슬쩍 물어보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별일 아니라며 자리를 떴을 텐데, 그 날은 무척 속상했던지 '누나, 사실은...... .'하며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대학생인 동생은 우연히 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발견했고 몇 달 동안 그녀에게 공을 들인 모양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서 첫눈에 반할 정도이니 그 여학생의 미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고 연락처까지 주고 받는 사이로 발전하고 나니, 그녀가 생각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누구나 호감을 가질 만큼 예쁜 외모를 가졌으면서 친절하고 착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가끔씩 통화하고 만나서 같이 밥도 먹는 사이로 발전하면서 어느새 내동생은 그녀를 많이 좋아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매력적인 여학생을 좋아하는 남자가 어디 동생 뿐이었겠는가? 알고 봤더니 그녀는 이미 학교에서는 유명한 퀸카였고 여러 사람들의 그녀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 중이었단다. 더 특별한 사이로 발전하고 싶었던 마음에 동생은 그녀에게 고백을 했고 그녀는 거절도 허락도 아닌 애매한 행동과 말로써 동생을 실망시키고 말았단다.

'누나, 나 그동안 어장관리 당했었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한참을 들어봤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인 것 같은데 도통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뜻을 알고 나니 마음이 더 헛헛해지는 '어장관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소위 퀸카(킹카)들은 자신의 어항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그 속에 여러 마리의 물고기를 키우고 그 수를 늘리는 재미에 살아간단다. 새로운 물고기가 들어올 때마다 갖은 애정을 쏟으며 물고기가 자신의 어항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데, 이 때 다른 물고기가 자신의 어항을 떠나지 않도록 가끔씩 예뻐해주고 적절히 먹이도 주면서 지혜롭게 어장을 관리하는 것은 퀸카(킹카)의 중요한 소임이란다.



그 중 누군가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으면서도 가끔씩 통화하고 같이 식사하면서 자신을 계속 좋아하게끔 만드는 것을 어장관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그냥 깨끗하게 자신을 거절했으면 이 정도로 속이 상하진 않았을텐데, 특별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꺼리면서도 자신을 떠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그 모습 때문에 동생은 너무 큰 실망을 했단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하자고 끝까지 아름다운 미소로 동생을 '관리'했다는 그녀, 어떻게 보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희망고문'(상대에게 잘 될 것이라는 희망적 암시를 계속 주어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과도 비슷한 '어장관리'는 남녀 사이에서는 죄악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어장을 가지고 있다. 혈연이든 학연이든 지연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 못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주변 사람들 챙기기'인데 그래서 그런지 어장관리가 나에게는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고 그들이 나에게 서운해 하지 않도록 적절한 애정을 쏟아부어 주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죽마고우라서 괜찮아, 우리는 어찌나 친한지 1년에 한 두번만 만나도  바로 어제본 것 처럼 마음이 잘 통해. 그러나 그렇게 친한 사이라면 하다 못해 문자나 이메일로라도 내 소식을 자주 전해야 한다. 그 분은 학교 다닐 때 내가 가장 존경했었던 선생님이신데, 내가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것도 다 그 분 덕이야. 나중에 꼭 한 번 찾아 뵈어야지. 언제? 나는 졸업 후에그 선생님을 한 번도 찾아뵌 적이 없다. 아, 당연히 연말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지 우리 부모님 선물은 뭘로 사 드리지? 그러나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째 집에 전화도 하지 않고 있다. 친밀함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게 저렇게 나와 관계를 맺고 나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나는 그동안 내 어장(?)에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내 어장을 살뜰히 보살피는 자상한 어항 주인이 될 수 있을까? '보살핌'의 덕목이 아예 없는 나이기에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데에도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계획표를 잘 짜서 2008년이 다 가기 전에 많은 사람들과 훈훈한 정을 나누어야겠다. 아, 나도 내가 속해 있는 어장의 주인에게 어장관리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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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매일 전화로 수다떨고, 메신저로 대화하며, 틈틈히 만나 같이 노는 여고동창생이 '있었다'.

우린 자신의 속마음을 서로에게 낱낱이 다 드러내었으며 나는 재밌는 영화가 개봉하거나 맛있는 음식점을 새로 발견했을 땐 꼭 그 친구와 함께 갔다. 물론 그 친구도 싸고 예쁜 옷이 많은 가게와 커피향이 좋은 카페를 꼭 내게 소개해 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둘 다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우리는 당연한 듯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 몇 달은 좋았다. 팔짱을 끼고 장에 가서 사 온 반찬거리로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도 좋았고 휴일이면 만화책을 빌려 와 밤새 뒹굴거리며 킬킬대는 것도 재밌었다. 처음 몇 달,
우리의 본성이 눈뜨기 전까지는...... .

시간이 흘러 같이 산 지 5, 6개월쯤 되었을까? 나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친구의 양말이며 옷가지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고 밥이며 설거지가 내 차지가 될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기 일쑤였다.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쉽게 났고 그런 내 마음을 들킬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렇게도 자주 드나들던 극장이며 쇼핑몰에 자연스레 발길이 끊어지고, 해도해도 끝이 나지 않던 수다가 점점 지루하고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방문을 걸어닫은 채 다른 이들과 통화하고 약속을 잡았으며 서로에게는 침묵하고 서서히 무관심해졌다.

폭풍전야 같던 시간들이 흐르고 마침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 일 때문에 친구와 나는 서로를 집어삼킬 듯 싸웠고 또 울었다. 그것은 차라리 속 시원한 순간이었다.

각자 다른 집을 얻어서 이사를 가고 연락을 하지 않은 채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궁금함은 모가 난 돌처럼 내 심장 한 구석을 찌른다. 내 모든 것을 다 나누어도 아깝지 않았던 그녀였는데, 어쩌다 우리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왜그렇게 난 이기적이었던 것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지켜야 할 '선'을 정하지 못한 채 서로의 영역을 너무 많이 침범했던 것 같다. 미묘하고 섬세한 우리 여자들에게는 타인에게 들키지 않고 보호받고 싶은 자신만의 영역이 있게 마련인데...... .

어느날 불쑥 그녀 앞에 나타나 서로 마주보며 맘껏 웃어보고 싶다. 그녀가 나를 보고 다시 웃어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욕심은 아니리라. 얼른 그녀를 만나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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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칠지경이다.

오늘 얘길 들어보니 결국 내가 그 애를 앞지르고야 말았다. 힝~! 속상해, 속상해~~ 학교 다닐 때부터 인기가 좋았던 내 친구와 그런 그 애와 친한 나. 우리는 성격도 잘 맞고, 취향도 비슷해서 그 애와 같이 있는게 정말 좋지만 나도 女友인지라, 가끔씩 울컥욱컥 올라오는 '얄미움'은 어쩔 수 없다. ^^;;

불쑥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하거나, 갑자기 '쿵'하고 맘이 울리는 것을 신호로 나는 나도 모르게 약간 치사(?)하고 조금 비열(?)한 악녀가 되기도 한다. 정말이다. 나도 어쩔 수 없다. 그 애는 평소에는 나와 몸무게가 같지만 잠시 방심할 때면, 내가 그녀보다 2~3kg 정도 더 무거워지게 되는데 오늘! 결국 내 몸무게가 그 애를 앞지르고 만 것이다. 나보다 10cm나 더 큰 그 애 앞에서 이 사실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순간 슬펐다. ^^;;;;;

마른 친구와 계속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아니, 말을 조금 바꾸어 '이쁜 친구'와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조금만 더, '자신이 우리 중에서 제일 이쁜 줄을 아는 친구'와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은근히 부아가 치밀 때가 한 두 번이 아닌데, 이럴 때 내가 잘 쓰는 방법은 고의로 친구에게 간식을, 그것도 칼로리가 높은 것으로 먹인다거나 ^^ 그녀 몫의 커피에 시럽을 더 넣는다거나
배부르게 양껏 먹인 후 잠을 푹 재우는 등 -.-;;;; 정말 내가 생각해도 저급한 수준의 속보이는 짓을 하는 것이다. 순진한 내 친구는 다 속아주지만, 잠시 볼록 나와 있던 배는 하루를 버텨주지 않는다.

나로서도 억울한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사실은 좋아한다고 스스로 체면을 건)은 칼로리가 적은 한국 음식을 비롯하여  찐고구마, 삶은 계란 등의 소박한 것들인데 그 애는 그 기름진 햄버거며 피자를 입에 달고 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생활 습관과 먹는 음식들, 또 활동량 등을 측정해 본다면 내가 그 애보다 살 찐 이유가 고스란히 드라나겠지만 오늘만큼은 철저하게 주관적이기로 해 본다.^^

그런대로 내 외모에 만족하면서 살다가도 그 친구만 만나고 오면 그녀의 마른 듯 이쁜 몸이 부러워지기 일쑤니 이것 참 큰 일. 이런 사실 그 애가 알면 얼마나 웃기고 또 서운할까?


그래서 오늘 울컥했던 마음을 달래며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이기에 나는 끊임 없이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살아가지만 고민할수록 해가 되거나 나에게 발전적인 결과를 주지 않는 일에는 신경끄고 살기로. 기준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두니 자꾸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세운 범위를 일탈할 때에는 그것을 조정할 필요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내 기준의 잣대가 이동하는 것이야말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포츠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들인데, 타인과 싸워 상대를 쓰러뜨릴 때가 아니라 스스로 짜 놓은 시나리오에서 자신의 기록을 넘어설 때 이기는, 예를 들면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같은 것 말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우중충했던 기분이 맑아졌다. 다소 가벼워진 마음으로,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로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아궁~ 어찌나 맛있던지. 히힛~ 나는 정말 단순하다. 이런 단순한 내가 나는 정말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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