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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드나드는 인터넷 카페가 있어요. 그 카페는 임신&육아 전문 카페라서 여성들만 가입을 할 수가 있는데요, 임신을 준비하거나 임신 중인 예비엄마들에서부터 출산 후 아이를 잘 기르고 있는 선배 엄마들까지 회원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에요.

제가 느끼기엔 육아 서적을 기본으로 읽고 카페 게시물들을 참고서로 활용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첫 임신을 했을 때 생기는 막연한 걱정거리에서부터 아이들 이유식 식단까지 해결할 수가 있어서 저에게는 책 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곳인데요, 얼마 전 그 카페에서 재미있는 글을 하나 발견했어요.




어떤 임신부가 육아교실에 갔는데 강사분이 말씀하셨대요. '시댁에 사는 임신부가 입덧을 덜 한다'고요. 무슨 말인지 갸우뚱 하고 있는데 그 강사가 웃으며 덧붙인 말이 좀 씁쓸했다는 이야기예요. '입덧할 시간이 없겠죠' 카페의 특성(??)상 '시댁'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폭발적인 조회수와 쓰나미 격의 덧글이 달리는데요, 과연 이 글도 회원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어요.

시어머니가 서운하게 했던 일에서부터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의 차이점, 불똥이 다른 데로 튀어서 미운 시누이와 한심한 남편 등등...... 연일 새로운 덧글이 달리면서 게시판의 최고 인기글로 자리매김 하는 듯 했어요. 임신부들은 호르몬의 영향 때문에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감정의 기복도 심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고요, 또 이런 공간이 있어야 숨통이 좀 트이지 않겠어요?

덧글을 읽다가 어찌나 우스운 것들이 많은지 한참을 깔깔댔는데, 다시금 그 강사의 말을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뭐, 상관없는 말일 수도 있는데요, 학과 교수님과 함께한 술자리(술자리를 한 기억이 너무 오래 되었기에)에서 주량 보다 더 많은 술을 받아 마셔도 정신을 말짱하게 차릴 수 있는 것 처럼 입덧도 심리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제가 다솔이를 임신했을 때, 친정엄마의 우려와는 달리 전혀 입덧을 하지 않았던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에요. 입덧도 엄마와 닮는다고 하잖아요? 저희 엄마께서는 임신 5개월이 다 되도록 다른 음식은 쳐다도 못 보시고 오직 빵과 과일만 조금씩 드실 수 있었대요. 그 정도로 입덧이 심하셔서 저 또한 그런 고통을 겪게 될까봐 걱정을 하셨었어요.

그런데 웬걸? 저는 임신 기간 내내 입덧의 'ㅇ'도 모른 채 가리지 않고 잘만 먹어서 스스로도 임신 체질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더러운 화장실 환경' 때문이었답니다. 다솔이를 임신했을 때 임신 10주부터 28주까지는 중국에서 살았었거든요. 중국에 있는 웨이팡교육대학 한국어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었어요.


her hug
her hug by Flying House Studio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재미있었고 그곳에서의 삶도 만족스러웠는데, 단 하나!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화장실 때문에 사는 내내 고생을 좀 했어요. 저희 부부가 살던 곳은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아파트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더러움이 가득한 곳이었답니다.

너무 더러웠기 때문에 되도록 화장실에서는 빨리 나오는 것이 좋았으니, 차마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토할 수는 없는 곳이었지요. 그 생각이 강렬했기에 저는 입덧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입덧이 너무 심해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드실 수 없어 괴로워하시는 분들은 어쩌면 행복한 임신 기간을 누리고 계시는지도 모르겠네요. 입덧으로 육체는 힘드실지라도 정신적으로는 긴장할 필요가 전혀 없는, 너무나도 편안한 삶을 누리고 계시니 어쩌면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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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식구들 몰래 라면 끓여 먹은 며느리...... 바로 나다.

아니 배가 얼마나 고팠으면 밤에, 그것도 몰래, 홀로 부엌에 들어가 라면을 끓이고 있느냐 싶겠지만, 대체 밤 12시에 염분 많고 칼로리 높은 라면을 어떻게 먹느냐며 냉장고에 다른 음식들은 없었느냐고 묻고 싶은 분도 있으시겠지만, 나는 정확히 라면이 먹고 싶었다.

오밤중에 먹는 라면이지만 나는 대파도 송송 썰어넣고, 튀겨도 좋고 쪄도 좋다는 두루두루 냉동 만두도 두어개 넣고, 향이 끝내 주는 표고 버섯도 하나 큼직큼직 썰어 넣어, 맛있게 매운 명품 라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식구들이 모두 자는 틈을 타 슬쩍 방에 들어와 컴퓨터로 드라마를 다시 보며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을 아주 아주 천천히 아주 아주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





다 먹고 나서는 국물까지 다 먹어 버린 건 좀 너무 했다 싶었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내맘대로 라면을 먹어 보냐는 생각에 곧 뿌듯한 포만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닐 수 있는 것이 라면이지만, 나에게는 좀 다르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가 끼니를 라면으로 떼우(?)겠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껄끄러운 일이며, 특히나 요즘처럼 아기를 보느라 느긋하게 밥을 먹을 시간이 없는 나에게 있어 '면'요리는 상당히 사치스런 음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아직도 모유 수유 중이기 때문에 내가 먹는 것이 바로 아기가 먹는 것이 되니 어르신들이 더욱 내 식단에 관심을 가지신다.

그래서 반찬이 부실하거나 유난히 라면이 먹고 싶을 때면 남편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서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게으른 며느리 때문이 아닌, 갑작스레 매콤하면서도 기름진 라면이 생각난 아들의 입맛 때문이라면 시어머님도 부드럽게 넘어가실 것이니 말이다.(앗! 이 글을 읽고 우리 시어머님을 드라마 속에 나오는 고리타분하고 사악한 시어머님으로 상상하신다면, 그것은 오해다. 천사표 시어머니 앞에서도 며느리는 본능적으로 긴장하게 되니까. 이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늘 있다.)

그렇다면 남편과 어머님이 모두 출근을 하셔서, 아기와 단둘이 남게 되는 낮시간은 어떤가? 더더욱 불가능한 것이 아기와 둘이서 식사를 할 때 면 요리를 먹는 것이다. 콕콕 찌를 남편도 없이 온전히 아기를 도맡아 돌보면서 라면을 먹다 보면 어느 새 라면이 퉁퉁퉁퉁퉁퉁퉁퉁 불어 쫄깃한 맛이 관건이 라면이 맥없이 뚝뚝 끊어진다. 후루룩 들이킬 국물 한 방울 없이 면이 국물과 혼연일체가 돼 숟가락으로 라면죽을 떠 먹는 아- 가련한 내 신세여.

나에겐 천천히 음식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고, 끼니를 쨈 바른 토스트로 먹든 우유에 만 시리얼을 먹든 당당할 수 있는 내공이 부족하다.

내가 아기가 낮잠 자는 사이, 달달한 크림이 듬뿍 들어간 빵을 야금야금 먹거나, 늦은 밤 아기를 재운 후 남편이 먹다 남긴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는 것도 다 그러한 이유다. 금지된 음식이 유난히 당기는 날,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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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쉽게도, (2)드디어, (3)어쩌다보니, (4)그러고보니, 설 연휴가 끝났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내가 던진 문장의 답이 다를 것이다. 나는 방학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어서 방학 중에 낀 휴일이라고 해서 더 반가울 것도 없으며,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맛있는 것 먹고 텔레비전 특집 방송을 보며 뒹굴거리다 문득 달력을 보니 설 연휴가 끝나 있었다. (4)번의 경우인 것이다.

그러나 가족애가 진한 사람들은 오랫만에 고향을 방문해서 가족 친지들을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쉽게도 설 연휴가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많아서 한숨짓던 며느리와 안주인들은 상 차리고 설거지하기를 무한 반복한 끝에 드디어 지긋지긋한 설 연휴를 마무리 했을 것이다. 한편 백수이거나 무심하거나 아니면 쉬지를 못했거나 해서 연휴라고 해도 별다른 감흥없이 일상생활과 같이 지낸 사람들은 어쩌다보니 설 연휴를 그냥 보내 버렸을 것이다.

비록 나는 (4)번의 경우로 명절을 보냈지만 가족 친지들이 다 모이니 그 속에는 (1)~(4)의 경우가 모두 있었는데, 즐겨야 할 명절을 그야말로 '견디는'듯 보였던 며느리들을 보니 마음이 참 짠했다. 오늘은 바로 (2)번군에 관한 짧은 생각을 써 볼까 한다.


우리 큰집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어서 미리 출발하지 않고 설날 아침에 큰아버지 댁으로 세배를 드리러 갔다. 그 댁에는 우리 가족말고도 결혼한 사촌 오빠 내외와 조카들, 역시 결혼한 사촌 언니 내외와 조카들, 그리고 작은아버지의 가족들, 고모네 등이 와 있어서 명절답게 북적댔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저희들끼리 술래잡기를 하는지 히히덕 거리며 쉴새없이 뛰어다니고 정신 없는 와 중에도 어른들은 옛 이야기를 나누시느라 바쁘셨다. 명절에는 왜 그리도 자주 입이 심심해지는지 밥 먹고 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떡이며 과일 상을 또 기다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세대별로 나뉘어서 조금 놀다보면 어느새 또 식사시간이라서 여자들은 별로 쉬지도 못하고 또 부엌으로 직행한다. 그런데 역시나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시집 온 사촌 오빠의 아내인 새언니다. 조카를 둘이나 낳고 길렀으니 시집 온 지 꽤 됐지만 그래도 시댁은 어려운 법. 게다가 친척들까지 잔뜩 와 있으니 어디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있었을까? 쉬면서 우리와 조금 놀 기회가 있었다고 해도 편하게 느껴질 리 만무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슬쩍 친정에는 언제 가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만 큰어머니께서 듣고야 말았다.


가뜩이나 짧은 연휴인데 새언니의 친정은 경기도이고 큰어머니댁인 시댁은 경상북도이다. 내 생각으로는 아무리 늦어도 설날 점심 먹고 나서는 슬슬 올라갔어야 친정에서도 명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저녁 먹을 때가 돼 버렸다. 그런데도 큰어머니는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느냐고 그 말을 한 나를 나무라셨다. 물론 새언니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사촌 오빠를 힐끔 쳐다보니 이쪽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텔레비전에 폭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이럴 때 남편이 짜잔하고 나타나서 한마디 해 주면 딱 좋으련만 어찌나 무신경한 지 모르겠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새언니를 보니 내가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집에는 새언니도 있었지만 시집간 사촌 언니도 분명히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어머니는 당신 딸은 어느새 친정에 와서 편안한 명절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모르시는 것일까? 자기의 딸은 일찍 친정에 오는 것이 당연하고 며느리는 조금이라도 늦게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 시어머니의 심보란 말인가. 한 번 눈에 띄니 내가 그 쪽으로 치우치게 돼 버려서인지는 몰라도, 계속 큰어머니의 이중적인 생각들이 내 신경망에 걸려들었다. 누워서 침뱉기를 하기 싫어서 더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지는 않겠으나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차이는 어머어마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영어로 시어머니는 mother-in-law인데, 이것을 monster(괴물)-in-law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니, 이런 일이 비단 우리나라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날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바삐 움직였던 새언니의 뒷모습이 남일 같지가 않아서 정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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