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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둘이서 일찌감치 저녁을 먹은 다솔이는
아빠가 식사를 하시는 모습에 또다시 군침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빠의 저녁 메뉴는 생선초밥과 라면.
매콤한 고추냉이 위에 날 생선이 올려져 있는 초밥과,
꼬불꼬불 라면은 다솔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지요.
살짝 고민을 하다가 엄마는 다솔이에게 면만 조금 삶아 헹궈서 줘 보기로 합니다.
이미 밥도 먹었겠다 맛만 보라는 의미로 말이에요.


예나 지금이나,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몸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음식들은
하나같이 어쩜 그리 맛있게 느껴질까요?
다솔이는 아무 양념도 없는 라면 가락을 오물오물 잘도 먹네요.
어느 정도 먹다가 손으로 주물거리며 장난을 치기에 물렁한 자두를 하나 주었더니
손이며 옷이며 얼굴이며 하나같이 찐득찐득합니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찐득한 걸 다 묻힌 다솔이는 손을 내밀어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고,
엄마는 그 모습이 귀여워서 닦아주기 전에 먼저 사진에 담기로 했는데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다솔이를 보던 엄마가 문득 찡~해집니다.




어떤 생각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솔이가 엄마를 보고 웃으며 '사랑해'를 해 주었기 때문이에요.
아직은 어눌한 발음으로 '사랑해' 하며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려 주는 다솔이.
그 모습이 어찌 감동스럽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사실 다솔이가 '사랑'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아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에는 사랑해는 커녕 순식간에 엄마를 때리고 할퀴는 다솔 군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것도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요,
아이가 점점 자라나면서 욕구는 점점 많아지는데, 그것을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때리고 할퀴는(가끔은 박치기까지) 행동으로 표현됐던 것 같아요.


한동안 다솔이에게 어찌나 많이 맞았던지 다솔이가 제 얼굴 가까이에 손을 올리기라도 하면
저절로 눈이 질끈 감기고, 고개를 홱홱 돌리게 되더라고요.
저는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잘 타이르고 상황을 설명해 줬어요.
그 대신 안아주고, 뽀뽀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라고 가르쳐 줬지요.


이제는 다솔이가 엄마를 때리고 할퀴는 경우가 전혀 없고요,
예전에는 인형이나, 책 속 주인공에게만 해 주어 치사하게 느껴졌던 값비쌌던 뽀뽀도
자기가 먼저 '뽀뽀!'하면서 엄마의 눈, 코, 입 할 것 없이 퍼붓고 있답니다.
뽀뽀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인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혹시나 남자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의 폭력적인 행동 때문에 고민하셨던 엄마들이라면
조금 더 기다리면서 잘 타일러 주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다감한 아이로 자라 나 엄마를 감동시킬 겁니다.


식사 후 난장판이 된 식판과 거실을 치우고 다솔이는 아예 목욕을 시켰어요.
한참 물속에서 놀리다가 꺼내 놓으니 다솔이는 또 장난기가 발동해 제대로 닦지도 않고 도망을 갑니다.
 
 

 
 
꺅꺅거리면서 손을 들고 침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일부러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서 뱅글뱅글 돌고, 꺄르르 웃으며 누웠다가 다시 일어났다가
볼록 나온 자기 배를 보고 또 한 번 웃었다가......를 반복하며 한참을 놀더니
 
 
 
 
마무리는 '사랑해'
다솔아, 엄마도 다솔이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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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사랑하는 마음을 숨긴 채 끙끙 앓는 장면을 볼 때면 너무 답답해서 화가 날 지경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분명한 데도 무엇이 문제인지 그저 애틋하게 서로를 바라만 볼 뿐 결국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못하고 멀어져 가는 그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이별 후 쓸쓸히 돌아서며 이미 다 안다고, 말 안 해도 괜찮다고, 애써 자신들을 위로할 지는 모르나 그것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분노로 가득찰 뿐이다. '사랑해' 말 한 마디면 무언가 달라질 것 같은 분위기인데, 결국 입을 떼지 못해서 헤어지고야 마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랑은 진정 '마음'이 아닌 '말'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제 3자가 돼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땐 잘도 지적하는 우리들, 그런데 실제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신들의 마음을 속 시원히 표현하는 차세대 드라마 속 주인공과 같은가? 아니면 우유부단 흐지부지, 속 답답한 옛날 드라마와 같은가?


나는 아주 오래전에 어느 월간잡지에서 공감할 만한 좋은 글을 몇 개 읽었다. 하나는 신혼부부의 이야기이다.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신혼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신혼인데도 일이 너무 바빠서 집에 일찍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출장도 잦았다. 그런 남편 때문에 혼자서 집에 있어야 할 때가 많았던 전업 주부 새댁은, 남편이 보고 싶기도 하고 밤에는 무섭기도 해서 늘상 현관에 남편의 구두 한 켤레를 꺼내 놓았다.

어느 날 오랫만에 일찍 집에 들어온 남편의 얼굴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던 새댁은 애교반 어리광반으로 남편을 반기며 슬쩍 얘기를 꺼냈다. 새댁은 남편에게 그동안 현관에 그의 신발이 늘상 있었던 것을 보았느냐고, 왜 그런지도 아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남편이 볼멘 소리로 하는 말이, '내가 계속 늦게 들어오니까 보기도 싫고 귀찮아서 신발 정리를 안 한 거잖아' 남편은 아내가 자기 대신으로 신발을 상징처럼 현관에다 놓아두었던 것을 전혀 알지 못 했던 것이다.

또 다른 얘기는 이러하다. 어느 가난했던 부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의 식성에 맞추어 삼겹살을 먹기로 했고,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터라 2인분을 시켜서 아내는 그저 굽기만 했단다. 남편이 복스럽게 먹는 모습만 봐도 흐뭇했던 아내는 남편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밑반찬과 야채만을 먹었다. 그 이후로도 가끔씩은 그 식당에서 외식을 했고 아내의 그러한 행동도 계속 되었다. 이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남편은 4명이 간 자리에 3인분만을 주문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의아한 나머지 이유를 물으니, 남편은 이 식당은 양을 많이 주기 때문에 넷이서 3인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단다. 그동안 둘이서 2인분을 시켰을 때 어찌나 양이 많던지 배가 터질 지경이었다고 했단다. 이 사람 또한 그동안 아내의 배려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소개한 이야기는 모두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내용이지만, 그 반대의 상황도 많을 것이다. 남편의 상징이었던 신발과 아내의 배려 덕에 푸짐했던 음식. 상대방은 전혀 이런 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이 꼭 그 사람들의 둔함때문인가? 나는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자신들처럼 속깊은 사이에서 굳이 말로써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냐고, 자신들에게는 말 하지 않아도 애틋한 무언가가 있다고 하는 사람을 우매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향한 내 오묘한 마음은 말로써 표현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또한 끈끈한 사이일수록 사랑한다는 말은 더 자주 하는 것이 좋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착각하지 말자, 아무리 깊은 사이라도 상대방은 내가 아니니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봐 줄 수는 없다. 설령 그 마음을 훤히 꿰 뚫고 있을지라도 사랑한다는 말로써 그 마음을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다. 사랑은 소모품이 아니기에 많이 사랑한다고 쉽게 닳아 없어지지 않으며, 사랑한다는 말은 아낄 필요가 없다. 사랑이라는 말의 고귀함 때문에 아껴두고 싶다는 사람은 정말 상대를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한다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왜 그 말을 아끼는가? 가끔은 진심어린 말 한마디로 모든 복잡했던 상황이 순식간에 말끔히 정리되는 것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표현을 해 보자. 다시 말 하지만, 사랑은 '마음'이 아닌 '말'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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