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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한기가 느껴지는 꽃샘 추위 가득한 3월의 주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아침부터 봄맞이 대청소를 시작했다. 안방 분위기는 커튼이나 침대 시트만 바꿔 줘도 확 변하는 법.

겨울 내내 깔고 덮었던 진분홍색 침대 시트를 벗겨 내고 미리 빨아 널어 놓은, 하얗고 보들보들한 봄 느낌의 덮개와 이불을 가져왔다. 혼자서 낑낑대면서 덮개를 침대 매트에 끼우고 착착 편 다음, 그 위에 순백색의 고귀함 마저 느껴지는 구름 이불을 펼쳐 놓았다. 드디어 완성! 안방 분위기가 어찌나 화사해 보이는지 너무 기뻐서 양 팔을 벌리고 두 바퀴 쯤은 돌아야 될 듯 싶기도 했다.

사실 나는 청소하는 것을 싫어하는 게으른 주부 중 한 사람인데, 청소도 싫어하는 내가 '대'청소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러나 나도 어느새 완연한 주부가 되어 가는지, 정리하고 쓸고 닦은 후 반들반들 윤기나는 집안을 보는 뿌듯함이 너무 커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가끔씩(?) 청소를 하고 있다.

내 손으로 인해 말끔해진 집 안을 보는 즐거움이란......!
자연스레 한 옥타브 높아진 목소리를 하고 저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솔이의 식사 준비를 마친 후, 진지를 드시라고 다솔이 님을 부르는데, 몇 초간의 적막. 등 뒤로 느껴지는 쎄한 느낌을 애써 지우며 다급히 다솔이를 찾으러 갔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예상대로 다솔이는 안방에, 침대 위에, 욕조에서 푹푹 밟아 빨아 그늘에서 이틀을 말린 새 침대 시트 위에, 너무나 깨끗해서 손대기 조차 아까운 새하얀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혼, 자, 서...... 요 맘때 아이들이 쥐 죽은 듯 조용히 홀로 방 안에 있을 땐 십중팔구 사고를 치거나 이미 쳤거나 칠 계획을 하고 있는 중일 텐데, 안타깝게도 내가 슬픈 예감을 한 대로 다솔이는 이미 저지른 상태였다.

상황을 보니 하나의 그림이 내 머리속으로 휘리릭 휘리릭 영화처럼 지나갔다.
다솔이는 내가 요리를 하고 있는 틈을 타 조용히 몰래 혼자서 방으로 들어 왔다. 그러곤 안방에 있는 화장대에 의자를 밟고 올라가 화장품이 잔뜩 들어 있는 파우치를 가져와 침대로 간다. 그 위에 화장품을 모두 쏟아 놓은 뒤, 파우더 통을 뒤집어 이불 위에 뭉개고, 립스틱을 꺼내 무언가를 그리고, 크림 통에 손가락을 푹푹 찔러 넣은 후 손가락을 쓱쓱 옷에다 닦고 다시금 가루며 액체들을 침대 시트와 이불 여기 저기에 문지르고 닦았을 것이다.
아주 해맑게 웃으면서...... .




내가 방으로 들어 오자 다솔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움찔 놀랜다. 18개월 쯤 된 다솔이는 이제 자기가 친 사고가 '사고(事故)'인 줄 아는 것이다! 이다솔, 네 이놈! 나는 뒤늦은 소리를 질러 보지만 공허한 울림일 뿐. 대충 수습을 하고 침대 시트와 이불을 걷어내니 침대가 유난히 앙상해 보였다. 그래, 어차피 꽃샘추위라는데 봄은 무슨 봄.

자기 잘못을 알고 있는 다솔이는 곁에서 착한 척 인형과 함께 조용히 놀고 있다가, 일을 끝낸 내가 일어서자 와락 달려들어 목을 껴안는다. 내내 눈치를 보고 있다가 기회를 타 내게 화해를 요청한 셈인데, 다솔이의 계획은 이번에도 통했다. 사랑해? 엄마도 사랑해. 다솔이를 한 없이 따뜻하게 안고 쪽쪽 입을 맞춘 후, 아까 준비해 두었던 진지를 바치는 나.

읽고 있던 책을 갑자기 확 던져도, 뜬금없이 내 이마에 박치기를 해도, 갈아 입힌 지 얼마되지 않은 바지에 주스를 들이 붓고 내 얼굴를 할퀴어 상처를 내도, 꺄르르 웃음 한 번과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한순간에 미움이 사라지게 되는 사람이 바로 엄마이다.

일전에 7살배기 아이를 둔 엄마와 얘기를 하다가 요즘 유행하는 말을 듣게 됐다. 예전에는 미운 일곱 살이랬는데 요즘엔 아이들의 성장이 빨라져서 덩달아 유행하는 말도 달라졌단다. 미운 네 살, 때려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라나?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하면서도 호호호 웃는 그 엄마의 얼굴이 그리 무섭게 보이지 않았던 까닭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그 말이 '엄마들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이미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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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저희 집 거실입니다.

말 그대로 참 가관이죠?
너무나 어지러운 위 사진을 보시고 깜짝 놀라셨을텐데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불과 서너 시간 전, 책은 책장에 장난감은 장난감 바구니에 빨래는 차곡차곡 개서 한 켠에 다 정리를 해 두고
오리 걸음까지 하면서 바닥을 싹싹 물걸래질 했었는데......

...... 그건 꿈이었을까요?

하루 일과를 마치며 너무나 허망하여, 남편에게 도리질하며 하소연을 했어요.
안돼! 이럴 수는 없어!!! 이건 분명히 악몽일거야!!!!
의자, 요가 매트, 베개가 왜 저기 있는걸까요? 다시 치우기가 너무 싫어서 그냥 주스 마시고 텔레비전 보고 컴퓨터 하면서 놀아 버렸어요. 그리고 나서 방 안으로 들어 오니 우리집 말썽쟁이 다솔 군이 천사같은 얼굴로 잠을 자고 있네요. 절대 미워할 수가 없죠.

사진 정리를 하다가 귀여운 다솔이와 다솔 아빠의 모습이 있어서 좀 보여 드려요.



외갓집에서 이 사진을 찍으면서, 서울 사는 분들께 자랑하기 딱 좋은 사진이라고 다솔 아빠와 둘이서 엄청 흐뭇해 했었는데 다시 봐도 정말 좋네요.

이제 겨울이라 휑 해진 논들이 조금 쓸쓸해 보이긴 하지만 탁 트인 시골 마을 풍경이 역시나 정겨워요. 차도로 맘껏 걸어 다녀도 저희 가족이 나들이 갔던 시각엔 자동차가 별로 없어서 별로 위험하지도 않았고요, 곳곳에서 일하고 계시던 어르신들이 처음 뵙는데도 어찌나 다솔이를 예뻐해 주시던지 역시 시골 인심이 최고예요.

다솔이가 돌멩이를 마구 집어 먹어도 엄마는 못 본 척 합니다. 저렇게 자라야 더 건강하다고 믿거든요.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서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다솔 군과 든든한 다솔 아빠예요.


한적하고 공기 좋은 시골길을 아이와 손 잡고 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저희 가족은 다솔이가 첫 아이라서 이러한 모든 순간이 다 행복하게만 느껴지는데요, 작년 이맘 땐 꼬물꼬물 누워만 있던 다솔이가 벌써 이렇게 자라서 아빠 손을 잡고 걷는다니 정말 세월이 빠른 것 같아요.


논으로 들어가려는 다솔이를 겨우 말려서 다시 방향을 트는데,


뭘 봤는지 저렇게나 귀여운 표정과 몸짓을 하는 다솔입니다.


다솔이는 이제 아빠 손을 놓고 혼자 앞서서 걷기도 하고요,


신이나면 깡총깡총 뛰기도 하는데요,


무슨 생각에서인지 새삼스레 뒤를 돌아서 가 버리기도 해요.
그래서 목적지를 갖고 다솔이와 함께 걸어서 산책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답니다.
다솔이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신기하고 처음보는 것 투성일테니 얼마나 궁금한 것이 많겠어요?


아빠가 다솔이에게 인사 연습을 시켜 봤는데요,
다솔이는 '안녕하세요?' 나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할 줄 알게 됐어요.
이번에는 '안녕하세요?'하면서 아빠가 먼저 인사를 하니,
다솔이도 엉거주춤 인사하는 자세가 되었지요.


그러다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린 다솔이.


사진을 찍는 엄마를 발견하고는
엄마에게 달려오는 다솔이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엄마엑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는엄마의 신발이 궁금해서 또 만지고 있네요. 예측불허 엉뚱한 다솔이,
장난꾸러기지만 괜찮아! 좀 어지럽히면 어때? 내일 또 치우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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