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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나선 동네 산책 길~
오랫만에 비가 그쳐 보송보송 기분도 좋고 아이와 함께라 더 좋았던 그 날 저녁,
아이가 제 등 뒤를 바라 보며 크게 소리를 칩니다.


엄마!! 쟤가 나한테 인사를 해~
응? 뭐라고??
쟤가 나한테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고~
(동네니까 어린이집 친구를 만났겠거니 생각하고 무심코 고개를 돌리며)
누가?
쟤! 쟤가!!
...


저는 사람 좋은 웃음을 허허허 웃으며 다솔이를 향해 손을 흔드
경비원 할아버지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답니다.
!!!!!!!!!!!!!!!!!!!!!!!!


다솔이 대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면서,
일부러 크게 다시금 (몇 번을 반복해서 가르쳤던 건데도 아직 개념 이해가 안 되나봐요~) 설명을 해 주었어요.
'너, 얘, 쟤'는 친구나 동생한테만 말하는 거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선생님, 아저씨, 아줌마한테는 쓰면 안 된다고
.
그냥 이름(지칭어를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유일하게 아빠와 삼촌, 다인이 이름은 압니다만...)으로 부르라고 말예요.




또 이런 일도 있었어요.
다솔이가 재밌게 알콩달콩 얘기를 하는 중이랍니다.


나 오늘 너 집에 가고 싶어.
왜???
니가 예쁘니까.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웃는 '너'는 바로 다솔이의 외할머니,
다솔이가 외갓집에 가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아직 서툴어서 우리말을 배운지 얼마 안 돼 자꾸만 실수를 하는 외국 사람처럼
다솔이는 아직 높임말이나 언어의 체계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서 난처한 경우도 종종 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다솔이의 언어 발달이 엄청난 수준이라서
저는 거의 매일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있는데요~


<언어 관련 다른 글 보기>
28개월 다솔이는 언어 폭발 중! '아이가 말을 더듬어'도 염려 마세요.
http://hotsuda.com/1027


우리가 왜 자기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하는 어른을 유치하다고 말하는 줄 아세요?
예를 들면, 다 큰 어른이 '예슬이 배 고파, 예슬이 오늘 피곤해, 예슬이는 오빠를 좋아해'라는 말에
왜 손발이 오그라들고 머리카락이 쭈뼛 설까요?
아이들이 '나'의 개념을 가지기 전에 다른 사람이 이름으로 부르니까 당연히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 이름인 줄 알고,
다솔이 배고파, 다솔이 피곤해, 다솔이는 엄마를 좋아해~ 라고 하는 말을, 알 거 다 알아야 하는 어른이 따라 쓰고 있기 때문이지요.


다솔이도 말이 많이 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솔이가~ 다솔이는~ 다솔이~ 다솔이....하더니
어느 순간 부터 '나'라는 말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는 깜짝 놀라서 칭찬을 해 주고, 다솔이가 '나'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만히 들어 봤었는데요~
한참 동안이나 '할머니 나 집에 와, 나 장난감...' 등으로 '나'를 사용하던 다솔이가
'내 집'에서 '우리집'으로 점점 더 언어(모국어인 한국어)의 발달을 이룰 때 와우... 어찌나 신통방통한지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그 뿐인가요?
외국인들이 머리카락을 쥐어 뜯어며 어려워 하는 조사의 사용도 다솔이는 자유자재예요.


엄마, 나 먹고 싶어.
엄마, 다인이는 말고 나 안아 줬으면 좋겠어.
엄마, 자고 일어났더니 침대에 다인이랑 나랑 둘이 있었어.
... 거의 환상적이니 않나요?
(국문과 나온 엄마의 엉뚱한 환호.)


아이의 키가 자라고 몸무게가 늘고 발달이 일어나는 순간도 감동적이지만,
언어가 자라고 어휘력이 늘어서 저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순간도 정말 감동적인 것 같아요.
최근 다솔이에게서 들은 가장 완벽했던 한 문장은요~
나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캬~~ 기가 막힙니다.
기술 점수 100점에 예술 점수도 100점이에요.




한 편, 21개월 3살인 우리 다인이는요~
'엄마, 물 줘~' 3음절의 문장을 구사할 줄 아는데요~
(다른 말을 3음절로 말하는 것은 아직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 함정.)


보통 아이들이 돌이 지나면
엄마, 밥, 물, 집...등등 한 음절의 말을
두 돌이 지니면
'엄마, 물', '집 가', '맘마 줘' 등등의 두 음절의 말을,
세 돌이 지나야 3음절의 문장을 말할 줄 알게 된대요.


아이가 말이 늦다고 걱정할 필요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면,
곧 조잘조잘 귀가 따갑도록 엄마를 불러 대며 말을 쏟아 낼 때가 오겠죠.
둘째들은 그 날이 조금 더 빠를게 분명하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아이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언어 조합에 감탄을 하시고,
아이가 하는 참으로 듣기 좋은 말에 감동을 하시면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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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가 중천에 떠서 나를 빼꼼히 (햇님에게 진짜로 눈이 있다면 아마도 한심한 눈으로) 내려다 볼 때까지 쿨쿨쿨 자다가, 띠리링~ 울리는 문자 메시지 소리를 듣고서야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애써 시계를 외면하고서 약간의 코맹맹이 소리를 섞어 잘 자고 일어났더니 피부가 좋아졌다는둥 역시 잠이 보약이라는둥 애교아닌 애교를 부릴 수 있었던 까닭은,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이었다.어제 저녁에 양파와 마늘을 달달달 향기롭게 볶고 감자, 고구마에 닭고기까지 듬뿍 넣어 만들어 맛나게 먹었던 카레라이스가 아직도 한솥 가득 남아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대접에 밥을 넉넉하게 푸고 그 위로 카레를 보 기좋게 담으면 따로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로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된다. 뜨끈하게 카레를 데우고 적당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접시만 곁들이면 되니 식사 준비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길게 기지개를 켜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잠기운을 눈가에 붙인 채 카레솥에 불을 올린 후 '식사하세요' 남편을 부른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돌아와 김치 접시를 식탁에 내려 놓는데, 끙끙끙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냄비 뚜껑을 열자 이미 하얗게 곰팡이 비스무리한 것이 노란 카레와 뒤엉켜 있다.
어제 저녁 딱 한 끼 먹은 카레가, 이 추운 겨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끓여 두기까지 했는데 도대체 왜왜왜 벌써 상해 버렸는지 속상해 하고 있는데 남편이 식사를 하러 왔다. 어쩌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남편에게 카레가 쉰 것 같다고 어제 '팔팔'은 아니지만 '슬쩍'은 다시 끓여 두었는데도 쉬어 버렸다고, 그래서 아침은 '라면(그나마 소시지와 만두를 넣은)'을 먹어야 되겠다는 끔직한 소식을 전했다. 남편의 눈치를 살살 보며 다른 냄비에다 물을 받아 가스불에 올리는데, 의기양양한 남편의 목소리가 등뒤로 들렸다.

'나는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카레가 왜 쉬었는지 알아. 당신이 카레를 팔팔 끓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미생물은 100도 이상에서는 죽지만, 당신은 적당히 끓여서 오히려 미생물이 살기에 적당한 온도로 맞추어 주었기 때문에 카레를 상하게 만들었어'



사실 남편에게는 말 하지 않았지만 어제 먹다가 남긴 카레를 그대로 카레솥에다 부었기 때문에 침이 들어가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남편의 말이 백번 옳다. 그러나 꼭 그렇게 따져야 했는지...... 하긴 되짚어 보니 남편은 위로를 구하는 내 말에 늘 이런식이었다.

몇 년 전
결혼하고 처음 맞는 '초복'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삼계탕을 끓였다. 그것도 시부모님까지 초대한 자리였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결혼초라) 어려운 시부모님 앞에서 혹여 실수라도 할까봐 끙끙대면서 닭 네 마리를 기적적으로 끓여 내 식사 대접을 했다.

맛있게 드세요.

닭다리가 잘 뜯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이미 실패를 예감하면서, '복화술'로 슬쩍 남편에게 귓속말을 했다. 삼계탕이 좀 이상하지?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우렁찬 남편의 목소리,

응. 닭을 좀 더 끓여야 했어. 덜 익어서 닭다리에서 냄새나.

그 때 내가 웃었던가? 웃었대도 웃는게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 말고도 나를 화나게 만드는 남편의 대화법은 수두룩 빽빽이다. 

아무리 화성에서 온 남자들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화법을 고수하는 족속들이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닌 듯 싶다. '이해' 받길 원하고 '공감'해 주길 바라는 여자들의 마음을 어쩌면 이렇게도 몰라 주는지......

이 글을 쓰다가 나는 글을 한 번 날렸다. 다행히 자동저장 기능이 있어서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시 불러올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복구시킨 후 가슴을 쓸어내리며 왜 갑자기 내 글이 모두 없어져 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웅얼거리는 내 이야기에 남편은 대답한다. 대답을 원한 질문이 아니었는데도 굳이 대답을 한다.

당신이 뭔가를 잘못 건드렸겠지!

내 저 인간을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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