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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뜬금없이 전화를 하더니 대뜸 '밥 사'라고 한다. 무슨 영문인 줄을 몰라서 자다 깬 것 처럼 '으응?'하고 반문했더니 꺄르르 시원하게 웃으면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초대권이 두 장 생겼단다. 와우, 뮤지컬! 와우, '지킬앤하이드'! 예전에 조승우가 주연을 맡았던 그 지킬앤하이드가 아닌가? 정말 좋았다. 요즘같이 주머니 사정 어려울 때는 문화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뮤지컬은 감히 엄두도 못 낼 것이었다. 그것도 '지킬앤하이드'처럼 규모가 큰 공연은 정말 내 돈 주고 가기가 힘들다. 왠만큼 괜찮은 자리에서 보려면 정말 큰 돈이 들기 때문이다.

예전에 친구하고 뮤지컬 '맘마미아'를 제일 싼 자리에서 본 적이 있는데, (제일 싸다고는 했지만 3만원이었다. 가장 비싼 좌석은 20만원 정도??) 자리를 배정받고 보니 3층 구석진 곳이었다. 뮤지컬은 현장감이 생명인데 3층이나 되는 무대와 동떨어진 곳에서 공연을 보려니 정말 속이 상했다. 등장 인물들의 표정은 그렇다치고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었다. 친구와 합하면 무려 6만원. 그 돈으로 영화 한 편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공연 내내 했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공연이 끝난 후 다른 사람들은(특히나 좋고 비싼 자리에 앉아 있던) 환호성을 지르면서 기립을 하는데 우리는 눈만 멀뚱멀뚱거리다가 민망해서 서로를 바라보고 한참이나 웃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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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친구의 말이 이번에 우리가 배정받을 좌석은 1층이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을 1층에서, 그것도 무료로 보게 될 줄이야. 정말 신났다. 밥 사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일 오후에 공연장이었던 세종문화회관으로 갔다. 명성에 걸맞게 평일이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을 즐기러 광화문으로 몰려 들었다. 친구에게 기쁜 마음으로 스파게티를 사 주고 공연장으로 들어 섰다. 세종문화회관의 고급스러움과 문화 생활을 즐기러 온 여유있는 사람들의 느긋한 발걸음, 이 모든 것들이 참으로 오랫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친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니, 이번 공연은 '지킬앤하이드'의 오리지널팀이 최초로 내한한 공연이란다. 그럼 모든 공연이 영어로 이루어 질 것이란 말인데...... . 좌석에 화면이 있어서 해석을 보면 되니까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겠으나 약간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실력이 있는 오리지널팀이 하는 공연에 더욱 열광하겠지만 나처럼 영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은 해석하려 공연보랴 신경이 분산돼 감흥이 약간 덜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나니 내 걱정은 기우였다. 배우들이 워낙 훌륭하다보니 그들의 언어가 한국어가 아닐 지라도 객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나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공연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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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의 특이한 점은 오리지널팀을 그저 돈을 주고 초청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트루뮤지컬컴퍼니라는 우리 나라 회사에서 이 공연을 주도했고 호주에서 직접 배우들의 오디션을 봤으며, 한국인 정서에 맞게 내용과 극중 노래도 약간 수정 했단다. 그리고 이 작품을 해외로 역 수출 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비록 우리 나라에 서내용을 창작한 뮤지컬은 아니지만 기획단계에서부터 배우 오디션, 대본 수정작업, 무대 연출, 음향 시설 등등 모든 것을 우리손으로 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수출까지 한다니.

뿌듯하게 공연을 관람했는데 총 공연 시간은 무려 140분! 너무 기니까 1부 80분-휴식 15분 2부 60분 이렇게 진행이 됐다. 실력이 뛰어난 배우들이라서 정말 탁월하게 잘 했다. 노래도 그렇고 대사처리도 그렇고 너무나 완벽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노래를 잘 할 수 있는지 감탄스럽기도 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오리지널, 오리지널 하는 것인가 싶었다. 이 날 공연을 했던 배우들은 내가 그동안 봐 왔던 뮤지컬 배우들 중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지킬 역을 맡았던 배우는 완벽하게 선과 악을 표현하였고, 악을 연기할 때는 괴물같은 소리를 소름끼치도록 잘 내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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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내용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도 여럿 있는 듯, 눈시울을 훔치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공연이 끝나니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립 박수를 쳤고 배우들도 신이 나서 여러 번 인사를 올렸다. 정말 좋은 공연이었다. 오랫만에 이렇게 값진 공연을 본 것이 정말 만족스러웠다. 친구에게 잘 봤다.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한 후에 조승우의 지킬앤하이드를 봤으면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랫만에 정말 좋은 구경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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