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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드디어 시작됐다. 붉은 색의 나라 중국 답게 온통 붉은 물결이었던 개막식도 성대하게 열렸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덩달아 들썩인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종목에서 금메달을 점치며, 메달이 유력한 종목이 시작되는 시간이면 가슴을 졸이며 텔레비전 앞에 모여든다.

올 해는 또 어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될 것이며 우리 나라의 종합 순위는 몇 위가 될 것인지 너무나도 궁금한 것들이 많은 때이다. 그런데 아무리 전 세계인의 체육대회라지만 모든 사람들이 베이징 올림픽에 울고 웃으며 열광할까?



주말이었지만 너무 더웠던 오늘, 특별한 약속이 없었던 나는 더위를 피해 집에서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봤다. 평소에 즐겨보는 방송은 아니었지만 여기 저기서 올림픽 관련 방송을 하는 바람에, 오늘은 SBS '스타킹'을 보게 됐다. 다양한 장기를 가진 사람들의 경합이 그런대로 볼 만 했다. 특히나 이번회에서는 앞을 못 보는 여대생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쳐 왔다는 그녀는 다른 놀 거리가 없어서 여러 방법으로 피아노를 가지고 놀다가 뒤로 돌아서 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훌륭한 음악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감동적이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다가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함성 소리와 함께 어느새 유도장이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스럽긴 했지만, 올림픽이나 기타 중요한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종종 있어왔던 상황이었기에 나는 곧 사태를 파악했다. 우리 나라 유도 선수인 최민호가 준결승 경기를 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스타킹'을 보는 중에 갑자기 등장한, 최민호 선수는 시원스러운 한 판 승으로 준결승에서 이겼고 이후에 벌어졌던 결승전에서도 이겨서 우리 나라에 값진 금메달을 선사해주었다. 최민호 선수의 경기가 끝나자 SBS에서는 곧바로 '스타킹'을 다시 보여주었다. 일시 정지해 둔 영화를 다시 보는 기분이었다. 한마디로 김이 샜단 말이다.


 
아까의 감동을 다시 느끼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나는 시력을 잃은 여대생이 일반인들과 동일한 조건으로 경쟁하여 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얘기를 듣고 또다시 놀랐고 성악과 학생인 그녀의 꿈이 정규방송의 끝에 나오는 애국가를 자기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라는 것에 감탄했다. 뒤이어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로 불렀던 애국가. 정말 감동적이었다. 나는 최민호 선수의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으나, 동시에 올림픽 경기가 한창이라는 것을 아는 내가 경기대신 '스타킹'을 선택했는데, 왜 그 시간에 유도 경기를 봐야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SBS 측에서 중요한 경기를 못 봐서 슬퍼할 나와 같은 여러 시청자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님 유도 준결승 소식을 듣고 시청자들이 휙휙 채널을 돌려버릴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을까?

감동적인 경기 장면은 보기 싫어도 너무나 많이 재방송해주기 때문에 결국에는 볼 수밖에 없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동안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들을 얼마나 많이 빼앗기게 될까? 방송사들의 올림픽 중계 시청률 싸움때문에 왠지 내 권리가 빼앗기는 기분이 든다면, 내가 올림픽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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