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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 지 얼마 안 되는 가은이 엄마는 나와 동갑내기이다. 고등학교때부터 친하게 지내 온 내 친구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골드(?) 미스들이 많아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마음을 완전히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은이 엄마는 일찍 결혼한 까닭에 벌써 두 아이의 엄마이고 나와 여러모로 잘 맞는 것 같아서 나는 그녀와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

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서 '시집살이요'를 같이 배웠지만 시집 무서운 줄 모르는 친구들에게 시금치가 쓰게 느껴지는 까닭을 백 번 이야기 해 봐야 헛일이요, 아기라고는 명절 때 조카들 얼굴 잠시 본 친구들이 내가 걸렸던 유선염의 아픔과 아기 키우는 재미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나는 아직은 서로 존대를 하는 가은 엄마와 얼른 친해져서 가끔은 남편 흉도 좀 보고 때로는 육아 문제도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가은 엄마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아이도 일찍 낳아서 큰 아이 가은이가 벌써 여섯 살이 됐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다솔이를 안아 보며 귀여워 하는 그녀에게 나는 '무심코' 셋째 계획은 없냐고 물어봤다. 정말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그랬는데 가은 엄마는 '저도 아들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가은 아빠가 괜찮다고, 딸 둘이라도 괜찮으니 잘 기르자고 했어요'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식당 놀이방에서 가은이와 함께 손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는 가희가 눈에 들어왔다. 딸만 둘인 가은, 가희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들 계획 없냐'는 얘길 들어왔으면 별 뜻없이 한 내 말에 그렇게 반응했을까. 나는 정말 미안해져서 엄마에게는 아들보다는 친구같은 딸이 더 좋다며 나도 둘째는 꼭 딸을 낳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지만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한편, 다솔이가 백일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였다. 그 사진관에는 미리 촬영을 하고 있던 아기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돌사진을 찍으러 온 듯 보였다. 그 아이의 촬영이 끝나고 다솔이 차례가 되어 나는 내 아들의 활약을 신나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아기들이 사진 찍을 때 부모는 그저 자리를 지키는 것 밖엔 할 일이 없다.) 앞서 사진을 찍었던 그 아이도 다솔이의 모습을 함께 보고 있었는데 나는 또 '무심코' 아이를 안고 있던 아이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아기 몇 킬로예요?' 나는 그저 돌 즈음이 되면 아기들의 몸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 지가 궁금했었을 뿐이었다.



아이 엄마는 조금 당황하는 듯 하더니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고, 그러나 절대로 아기가 약하지는 않다고 완고하게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그 엄마가 아기의 몸무게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솔이가 신생아일 때 한동안 몸무게가 너무 적게 나가서(2.5kg남짓) 매일 매일 체중만 점검하던 때가 떠올랐다. 다시 봐도 그 아기는 그렇게 말라보이지 않았는데도 엄마 된 입장에서는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던진 내 말이 그녀의 아픈 곳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낯선 사람들과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줌마가 되니 왜이리 오지랖이 넓어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일에도 이러쿵 저러쿵 참견하고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실수를 몇 번이나 저질렀을까. 말은 어떨 땐 칼보다 더 날카롭기도 하다 그러므로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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