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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집 근처 포장마차에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분식 삼종모둠을 모두 사 왔다. 요것들 없이 내가 어찌 살까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떡볶이, 순대, 튀김을 들고 집으로 오노라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순대는 소금에 튀김은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정석이지만 나는 모두 빨갛고 감칠맛나는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주인 아주머니께 늘상 떡볶이 국물 좀 넉넉하게 달라고 애교를 부리곤 한다. 쫄깃쫄깃 매콤한 떡볶이와 탱글탱글 고소한 순대, 그리고 바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 튀김을 매일이라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중국에서의 경험이 떠올라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지, 매일은 먹을 수 없지.

그렇다. 특히나 튀김은 더욱 그렇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제 아무리 튀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매콤한 떡볶이 국물이 아닌 간장에 튀김을 찍어 먹는 사람이라도, 간장 없이도 고소한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결코! 매일 튀김만을 먹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중국 음식이 기름지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 자장면을 한그릇을 욕심내서 싹싹 비운날에 속이 더부룩한 까닭도, 달달한 탕수육과 고소한 군만두를 좀 격하게 먹은 후 속이 뒤틀리는 경험을 하는 까닭도 그 속에 들어 있는 방대한 양의 기름 때문일 겨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먹는 중국 음식은 대부분 한국인 입맛에 맛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느끼한 음식들도 사실은 기름의 양을 대폭 줄인 것들이다. 중국 본토에 가서 그들의 음식을 먹기 전까지는 중국 음식이 기름지다는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상상할 수 없다. 정말이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중국인 친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총 체류 기간은 일주일이었는데 4일은 친구 집에 머물면서 근처 관광지와 중국 현지인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나머지 3일은 친구 집 근처로 이동을 하는 경로로 계획된 여행이었다. 중국을 처음 방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중국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그들의 삶의 방식을 같이 체험해 보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각오를 했다. 일주일동안 그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기로 작정한 것이다. 샹차이(중국 특유의 향이 가득한 야채인데 처음 먹는 사람은 몸서리 쳐지는 끔찍한 맛을 경험한다.)가 듬뿍 들어가 있든 팔각(불가사리 모양으로 생긴 향신료인데 껍질을 까면 통후추처럼 생긴 동그란 모양이 나온다. 잘못 씹으면 치약처럼 화한 향이 가득퍼진다.)이 셀 수 없이 많든 주저없이 먹기로 결심을 하고 떠났다.


그런데 예상외의 복병은 골이 흔들리는 샹차이도 폭탄처럼 터지는 팔각도 아닌 별것 아닌(?) '기름'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기름에 짭짤하게 튀겨낸 도너츠 같은 것(요티아오)을 먹는다. 속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아서 맑은 죽과 함께 먹는데 기름이 어찌나 푹 스며들어 있는지 아침부터 먹기엔 속이 너무 느글느글했다. 그네들은 의외로 아침은 간단히 먹고 점심 저녁을 풍성하게 먹는데 식탁 위에 상큼한 맛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이름 모를 국과 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볶아낸 각종 아채들, 육류 본래의 기름에 땅콩 기름까지 더 해진 탕수육 비슷한 음식들, 소스에 기름이 걸죽하게 들어있는 생선요리 등 모든 음식엔 기름이 듬뿍 듬뿍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이틀을 연이어 먹고 나니 속이 너무 불편했지만, 손님이 왔다고 신경을 많이 써 주시는 걸 잘 알기에 맛있게 먹는 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친구 어머니는 중국 음식이 맛있는 이유가 프라이팬에 기름을 가득 붓고 팔팔 끓인 다음 센 불로 재료를 익히기 때문이라고 비법까지 살짝 전수해 주신다. 그들의 말로는 볶음이지만 내가 보기엔 튀김인 그 음식들은 너무 기름진 탓에 재료만 다르지 맛은 모두 같은 것처럼 느껴졌다. 짠 튀김, 달콤한 튀김, 매콤한 맛이 조금 든 튀김, 모두 튀김이었다. 식탁 가득 차려진 기름 가득한 진수성찬을 뒤로 하고 생나물에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삼일 째 아침 또 기름이 푹 밴 도너츠를 먹는데 헛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아침부터 애꿎은 콜라만 몇 잔씩 들이키다가 나는 내 결심을 뒤엎고 친구 몰래 가게로 뛰어갔다.


느끼함에 이미 이성을 잃은 내가 정신없이 가게에서 찾아낸 것은 바로 한국 컵라면! 튀김만 먹은지 삼일 만이었다. 미친듯이 계산을 하고 그 자리에서 물을 붓고 국물부터 들이키니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묵었던 체증이 싹 가시는 느낌이 든다. 누가 라면을 기름진 음식이라고 말했던가. 그렇게 담백하고 얼큰한 음식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었다. 국물 한 방울 안 남기고 정말 맛있게 먹고 나니 이젠 슬슬 잔 꾀가 나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어머님 힘드신데 한국 음식점에서 식사 대접을 해 드리는게 어떻겠냐고 친구를 꼬이는 것으로부터 타국에서 한국 음식점을 찾으니 반가운 마음에 아니갈 수 없다는 눈물겨운 거짓말까지.

귀국 후 중국 음식의 후유증에서 겨우 벗어난 후, 고소한 튀김 생각에 퇴근 후 다시금 사 먹고 있긴 하지만 기름 솥에 빠진 것만 같았던 끔찍했던 그 날들을 잊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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