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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을 아직 치우지도 않은채 한쪽으로 슬쩍 밀어만 두고 볼록 나온 배를 기분좋게 쓰다듬다가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란다. 역시 나쁜 습관을 들이기란 이렇게도 쉬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당연하지만 나는 굳이 밥상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역시 바닥이 보인다. 어찌나 알뜰히 잘 먹었는지 휑한 느낌마저 주는 국그릇을 보고 잠시 심란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한국 사람은 국물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다더니 며칠째 살뜰이도 들이마신 국물 덕에 속은 물론이거니와 정신까지 든든해진 기분이다. 며칠 전 설마하다가 찬 바람에 뒷통수를 맞았을 때 꽁꽁 언 몸을 녹이려고 모처럼 뜨끈한 국을 끓였고 한참 만에 맛본 끝내주는 국물의 짜릿함에 어렵게 들인 좋은(?) 습관이 와르르 무너지고야 말았던 것이다.

내 글을 읽고서 어떤 분들은 국을 먹었으면 먹었지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1년 365일 다이어트를 계획(만) 하는 통통(?)녀이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영양소의 집합체이며 뱃살의 주범이라는 국물을 꽤 어렵사리 끊고 살아왔다. 그랬다가 갑자기 분 찬바람을 핑계삼아 며칠 째 국물을 들이키고 있으니 내 딴에는 정말 허탈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인 내가 다른 음식도 아닌 국물을 나쁜 음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에는 계기가 있다. 나와 키는 10센티미터 이상 차이가 나면서 몸무게는 똑같은(!) 친구 때문인데, 우리는 친하다보니 함께 밥 먹을 기회도 많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 것 같은 친구가 늘 마른 체형을 유지하는 비법이 궁금했기에 그녀의 식사습관을 꾸준히 관찰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물론 다른 이유도 참 많지만 나는 국물을 대하는 태도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라면을 먹어도 늘 국물을 먼저 탐하는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태생적으로 국물을 멀리하는 까닭이었다. 라면을 한 냄비에 끓여서 작은 그릇에 덜어먹을 때 그 친구는 국물을 한 숟가락도 떠 먹지 않는다. 정말 그런가 싶어서 일부러 면과 국물을 함께 그릇에 떠서 주면 그 친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러면 맛이 없다고 질색을 한다. 면은 국물과 함께 촉촉하게 먹어야 맛있고 면을 먹는 중간중간 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셔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정반대였다. 꼬들꼬들하게 말라가는 라면을 먹는 것이 훨씬 더 맛있다며 국물은 쳐다보지도 않는 그녀. 다른 국이나 찌개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부터 국물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식사를 끝낸 친구의 국 그릇에는 건더기만 건져먹고 남은 국물이 가득 남아있었다.


옳다구나! 그 이후로 나는 국물을 먹지 않았다. 보글보글 찌개를 끓였을 때도 건더기만 건져 먹을 뿐 국물은 먹지 않으려고 애썼고 라면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물을 후루룩 먹어야만 밥 먹은 것처럼 느껴지던 내 식습관을 고치자니 정말 힘들긴 했다. 특히나 날씨가 추울 땐, 각종 해물과 얼큰할 것이 틀림없는 짬뽕 국물, 뽀얀 색감으로 먹기만 하면 건강해질 것 같은 설렁탕, 신김치로 끓이면 더욱 맛있는 김치찌개, 고기 익는 냄새가 구수한 쇠고기무국 등 국물이 끝내주는 음식들만 생각나니 말이다.

그런데 국물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찌는 것은 사실이다. 국물이 살찌는 원인은 크게 소금과 기름 때문인데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 각종 재료의 염분과 지방이 국물속에 녹아난다. 국물이 고소한 것은 육류에서 빠져나온 기름 때문이며 짭짤하고 감칠맛나는 국물맛은 소금이 좌우한다. 그래서 국물은 열량이 높으며 이것을 마시면 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비만 문제 뿐만 아니라 밥을 먹을 때 국물과 함께 먹으면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하니, 건강을 생각한다면 눈물겹지만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국물 음식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아예 끊을 수는 없으니 국물보다는 건더기 위주로 먹도록 습관을 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끝내주는 국물의 유혹을 이기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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