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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뷔폐 식당. 똑바로 앉아 있기도 버거운 내가 부른 배를 부여잡고 주위를 살피고 있다. 아까는 먹느라 바빠서 제대로 못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음식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뷔폐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로 음식을 즐, 기, 고 있을까? 내 생각엔 모두가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후식으로 조각케이크와 아이스크림과 커피까지(두 잔) 마신 후 숨쉬기도 불편한 내가 음식을 진정으로 즐기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뷔폐 식당에 있는 사람 중 절반은 본전을 뽑기 위한 경쟁이라도 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면서도 가끔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찾는 뷔폐 식당에선 많이 먹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찬 난 모순 덩어리이다. 과식을 하게 되면 많이 먹은 것에 대한 불쾌함과 그 열량을 소모하기 위한 신경전, 그리고 식사 후 불룩해진 배를 다시 납작하게 만들기 위한 무수한 노력이 들게 된다. 그러니 본전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적게 먹는 것이 맞지만 뷔폐 식당에 들어선 그 순간에는 오직 '많이 먹는 것=본전을 뽑는 것'이라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니 정말 이상한 일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내 일행들은 모두 그렇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이지만 각자 음식을 가져다 먹기에 바빠서 함께 자리해서 느긋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배가 어느 정도 부른 이후에야 본격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대화 중에도 본전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꼭 누군가는 다시는 뷔폐 식당에서 만나지 말자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말을 꺼내고, 그러면 나머지는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평소에 적게 먹는 우리에게 뷔폐 식당은 손해라고 우겨대기 시작한다. 남들이 볼까봐 두려운 한 편의 코메디처럼 말이다. 그리곤 식탁의 한쪽엔 다 먹지도 않은 채 밀쳐 둔 접시들이 수북한데 또다시 음식을 가지러 자리를 뜬다. 순전히 본전을 뽑기 위해서.

나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막식가'라는 이름을 붙였다. 막식가는 많은 접시를 비워 내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며 음식의 종류나 조리법에 관계 없이 내키는 대로 마구잡이로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본전을 뽑아야 된다는 생각이 가득하여서 배가 부른 이후에도 계속해서 먹는 경향이 있는데, 나중에는 먹다가 지쳐서 다시는 뷔폐 식당에 오지 않을 것을 맹세하지만 곧 이를 잊고 다시금 뷔폐 식당을 찾아서 마구잡이로 먹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뷔폐 식당에는 우리처럼 무식(?)한 막식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부산스럽게 왔다갔다하며 정신없이 접시를 비워낼 동안 아주 기품있는 동작으로 천천히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정한 순서에 따라서 뷔폐의 음식을 맛보는 듯 보였는데, 일행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며 여유롭게 앉아 있는 모습이 참 우아해보였다. 그들은 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미식가'였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접시의 수가 문제가 아니며 많이 먹는 것을 가지고 본전을 뽑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미식가가 아닌 막식가이기에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뷔폐 식당에 오는 지 잘은 모르겠다. 보기 좋을 정도로 담아 온 음식을 놓고 한참을 음미하는 그들의 식사 모습은 분명히 좋아보이긴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주머니 가벼운 내가 자주 찾지 못하는 뷔폐 식당에서 미식가가 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 또 올 지 모르는데 우선은 먹어두고 볼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처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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