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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가 끝나 버린다는 서른 살. '2'와 '3'이 주는 느낌이 너무나도 달라서 두려운 마음으로 서른을 맞이했던 작년 이 맘 때가 생각난다. 그러나 살아보니 스물이나 서른이나 철이 없기는 매한가지. 서른을 기점으로 확 달라질 것만 같던 내 삶도 지내보니 비슷했다. 여전히 떡볶이를 좋아하고 여전히 긴머리를 고수하고 있으며 여전히 연예인에 열광하는 나. 스물이나 서른이나 나는 여전히 나인 것이다. 휴...... . 이렇게 시시한 줄 알았으니 '3'이 아닌 '4'가 와도 나는 끄떡 없을 것 같다. '4'가 좀 천천히 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그래도 여전히 잔치는 계속되고, 여전히 나로서 살고 있을 것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2008년을 살아 온 스스로에게 선물 두 가지를 주기로 했다. 그동안 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벌렁거리는 심장때문에 할 수 없었던 것 중 세 가지를 선택하기로 한다. 먹고 사는 일에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그래서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기에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것 말이다. 목록을 적어 내려가는 내 손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호기심에 기웃거리다가도 비용을 보고 놀라서 지레 포기했던 것이 어디 한 두가지였겠는가.

그 중에서 나는 적당한 것을 두 가지 골라 하나씩 하나씩 나에게 선물했고, 야금 야금 천천히 행복을 즐겼다. 내가 정한 선물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에게 때 밀기.
     둘째, 손톱 매니큐어 관리 받기.              


목욕탕에 갈 때마다 혼자서 쓱싹쓱싹 때를 밀었던 나는 누가 저렇게 큰 돈(?)을 내고 남에게 때를 밀릴까 늘 궁금했었다. 우리 동네 목욕탕의 때 미는 가격은 15,000인데(오일마사지, 전신마사지는 각각 35,000/50,000원이었다.) 입장료 5,000원까지 더하면 목욕하는데 최소 20,000원이 드는 셈이다.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2만원은 너무 아깝게 느껴졌고,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2만원으로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떠올랐었다. 그걸 이번에 해 본 것이다.

아무래도 연말에는 목욕탕에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평일 저녁 시간을 이용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목욕탕이 붐볐다. 나이가 들수록 온탕이 좋아져서 물 속에서 충분히 놀다가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밀려고 했는데, 아뿔싸!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아닌가? 세 명의 목욕관리사가 세 개의 침대에서 때를 미는데도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평소에 그 쪽으로 쳐다보는 일이 적었기에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미는 줄 몰랐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왕 맘 먹고 간 거 기다리기로 했다. 두 시간 동안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며 놀다가 밖에 나가서 책도 좀 보고 다시 탕으로 들어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 두 시간이 쉽게 기다려지기는 했다.

쪼글쪼글 해 진 할머니 손으로 때미는 침대에 누워 막상 때를 밀리려고 하니 민망한 생각도 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구석구석 내 몸을 맡긴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때가 나올까 봐 민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도 잠시, 능숙한 솜씨의 목욕관리사의 때밀기는 내 몸을 정말 호사스럽게 만들어줬다. 피부결을 따라서 시원하게 때를 밀어주는데 내 솜씨하고는 비교도 안 됐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이 이렇게 큰 돈을 지불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문화의 수준은 높일 수는 있어도 낮출 수는 없다던데, 목욕 문화도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목욕탕 가는 횟수를 줄이더라도 목욕관리사 아줌마를 애용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대학교 근처에 있는 손톱관리 가게에 갔다. 나는 화장하는 것에는 꽤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저런 시도도 해 보고 여러 가지 화장품도 사 본다. 그런데 손이 작고 못 생겨서인지 기술이 없어서인지 가끔씩 기분을 낼 때 빼고는 손톱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손톱관리 가게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호기심이 생기긴 했지만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 때문에 문 안을 빼꼼히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선물 목록에 손톱관리도 넣어 봤다. 학교 근처라서 그런지 예쁘장한 여대생들로 가게 안이 북적댔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는 나와는 달리, 여대생들은 익숙한 듯 보였다. 어렵사리 색을 고르고 매니큐어를 바르려는데 손톱 관리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매니큐어만 바르면 될 줄 알았는데 색감을 좋게 해 주는 것, 색을 오래 지속해 주는 것 등 바르는 것도 다양했고 시간도 꽤 걸렸다.

투박하기만 했던 내 손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매니큐어를 발라놓으니 한결 예뻐보였다. 그런데 나와는 달리 매장을 방문한 대부분의 손님들은 10회/20회 쿠폰을 끊어서 온 사람들이었다. 한 눈에 봐도 여대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비싼 손톱관리를 쿠폰을 끊어서 정기적으로 받는다니 대단한 열성이었다. 불황에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화려해진다고들 하던데, 정말 그런가?

불황이지만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자기 관리에 애쓰는 여성들은 더 늘어나는 것 같다. 내 주변만 봐도 차라리 먹는 음식값은 줄일지언정 피부관리나 의류 구입에는 여전히 돈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이러한 시기에 자신을 계발하는 데 더 힘쓰는 여성들도 많다. 그래서 지금 당장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어를 배우거나 악기, 춤 등을 연마해서 삶의 질을 더욱 풍요롭게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이번에 나에게 주는 선물을 통해서 내가 오로지 나를 위해 들이는 비용이 너무 적었음을 인식하고 앞으로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 지기로 했다. 그래서 다음주부터는 나도 중국어회화 수업을 들을 작정이다. 당장에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영영 써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타인의 강요없이 관심을 가지게 된 외국어이니만큼 한 번 배워보고 싶다. 여성들의 불황을 모르는 자기 관리, 그 대열에 나도 합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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