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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인가 무한도전을 제치고 내가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돼 버린 '패밀리가 떴다'. 유재석에게 SBS 연예 대상의 영광을 가져다 주었을 정도로 일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의 강자로 올라섰다. 인기의 여파로 뜨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뻔 한 '대본'까지 떠 버려서, 출연진들의 즉흥 행동과 대사인줄로만 알았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작가들의 수고와 노력에서 비롯된 것임이 들통났지만 이 정도로 패떴의 인기가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패밀리의 인기가 무르익을 무렵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장혁재 피디는 '인기의 40%는 자막의 힘'이란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인기의 비결이 자막의 힘이라니,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예능 프로그램에는 자막이 등장했고 이것은 점점 더 세력을 키워나갔다. 처음에는 출연진들의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만 쓰였던 것 같은데, 그들의 생각까지 자막으로 표현하더니(물론 자막은 모두 피디가 쓰는 것이므로 정말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요즘에는 아예 프로그램에 등장하지 않는 피디의 생각마저 자막으로 나오고 있다. 마치 판소리에서 소리꾼이 노래를 부르며 판소리의 내용을 전달하다가 난데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에서 처음으로 청중들의 '가짜 웃음 소리'를 프로그램에 사용했다. 웃음이 날락말락하는 애매한 상황에서 시트콤 속에 미리 깔려 있는 가짜 웃음 소리를 듣게 되면 시청자들은 스스로 판단을 하지 않고, 그 웃음 소리를 따라서 웃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연출진은 좀 더 쉽게 재미를 배가 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짜 웃음'을 애용하게 됐다. 시청자들은 '남이 웃으니까 나도 웃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추김을 받고 '남이 웃는 것을 보면 재미있나 보다'라고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속된 말로 '낚인 것' 아닌가?

초창기엔 그리도 어색하던 '가짜 웃음'이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지더니 다음 순서로 자막이 등장하게 됐다. 아까 언급했던 장 피디처럼 다른 프로그램의 연출진들도 자막을 넣으면 시청률이 높아진다고 믿는 모양인지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는 자막이 넘쳐난다. 낄 데 안 낄 데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자막을 멍하게 보노라면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가짜 웃음'때문에 별로 재미있지 않은 부분에서 헛웃음을 웃거나, 유치한 말장난 같은 자막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며 한 글자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받아 읽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맞춤법부터도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연출진의 생각을 강요하는 듯한 자막의 내용이나, 내가 보기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은 출연자의 마음 속 표현, 그리고 글로 써 놓지 않아도 뻔히 다 아는 내용을 굳이 밤샘 작업을 해 가며 자막으로 써 놓은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프로그램을 완성도 있게 만들어 놓고 그것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두면 더 좋을텐데, 왜 만화책처럼 모든 것을 다 보여 주려 하는가. 우리 시청자들의 수준을 믿지 못하는 것인지, 프로그램의 수준을 자막으로 올리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한도전 유앤미 콘서트 편이 사정상 자막 없이 방송됐다. 사실 그 날 나는 자막이 없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방송을 봤는데,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네티즌들은 자막 없는 무한도전을 한탄하며 엄청난 수의 덧글로 인터넷 공간에 항의를 했으며 몇몇은 직접 만든 자막을 올리기도 했다. 사실 김태호 피디의 자막이 가장 재미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타인의 해설(자막)없이는 예능 프로그램 하나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방송의 흐름을 이해하고 등장 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하여 그 날의 방송 내용을 정리할 능력이 우리에게도 분명히 있는데...... . 자막이 없이도 예능을 즐길수 있을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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