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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므라이스 전문점에 갔다. 어릴 적에는 오므라이스 하면 동네 분식점에서 그저 그렇게 흔하게 먹는 음식이었다. 물론 오므라이스는 볶음밥 위에 커다란 달걀이 예쁘게 덮혀져 있는 형태를 지니다보니, 다른 음식보다 더 들어가는 정성때문에 가격이 약간 더 비쌌다. 그래도 떡볶이나 김밥, 볶음밥 보다는 오므라이스라는 어감이 주는 고급스러움(?) 탓에 그것을 먹을 때마다 조금 우쭐해지곤 했다. 그런데 최근 오므라이스가 환골탈태를 했다. 분식점에서 쉽게 먹던 음식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고급 음식으로 탈바꿈해서 그 음식만의 전문점이 생겼고, 맛을 내는 소스와 재료에 따라 종류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

친구와 같이 간 식점도 오므라이스만을 파는 곳이었다. 솔직히 자주 먹기에는 부담스러울만큼 가격이 올라버렸기 때문에 한 번 먹을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 적당한 가격 수준을 정하고 가격대비 가장 맛있어 보이는 오므라이스를 골라내기 위해 메뉴판에 몰두했다. 그러다 우리 근처 식탁에 앉아 있는 어느 가족들을 보게 됐다.
 
엄마, 아빠와 어린 아이들 두 명. 모두 네 명의 가족들이 단란하게 외식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참 보기가 좋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식탁을 무심코 봤는데, !!! 엄마의 오므라이스는 없는 것이었다. 사실 음식이 비싸지면서 양도 같이 많아졌기에 여자들이 혼자서 다 먹기에 약간 버겁기도 하다. 그러니 아이들이 혼자서 한 그릇씩 맡으면 분명히 다 먹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네 명이서 세 그릇을 주문한 것 같았다. 알뜰한 가족의 지혜로운 선택임은 분명했다. 그런데 엄마 혼자서 숟가락만 들고 아이들과 아빠 앞에 놓여있는 음식을 한 숟가락 씩 얻어(?) 먹는 모습이 왠일인지 보기가 싫었다.

왜 늘 엄마가 그렇게 배려해야하는 것일까? 철없던 내가 다 커 철이 드니 이제 엄마가 보이나 보다. 얼핏 우리 엄마의 잔상이 스쳤다. 식구들끼리 여럿이 모여 과일을 먹는 자리에서 사과를 깎으시던 엄마. 먹성 좋은 우리는 엄마가 사과를 깎아 놓기가 무섭게 하나 둘 씩 다 집어 먹어서 엄마는 계속 과일을 깎으셔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고 나서 엄마가 드신건 다 깎은 사과에 붙여 있던 남은 과육이었다. 그 뿐인가, 엄마는 우리들이 무심하게 남긴 밥을 그냥 버리지 못하신다. 우리가 밥을 남길 때마다 엄마는 그것을 드셔야했기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셨다. 집을 떠나와 자취를 하면서,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목이 뜨거워지는 것은 엄마의 배려에 대한 답이 너무 작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여성은 아줌마가 됨과 동시에 배려와 희생이라는 굴레(?)도 함께 받게 되나보다. 얼마전 사촌 언니에게 놀러갔을 때에 언니가 형부의 늘어진 티셔츠와 무릎나온 운동복 바지를 물려(?)입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집에서라지만 형부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있는 언니가 참 낯설었다. 처녀 땐 그렇게도 잘 꾸미고 다니던 언니었는데, 주부가 되고나니 자기를 위해 무언가를 사는 게 참 어렵단다. 새 옷 한 벌 사입고 싶다가도 그 돈이면 교통카드 충전에 반찬을 몇 가지나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단다.

나는 철이 들어서 엄마의 수고로움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됐지만, 아직 엄마가 되지는 못했기 때문에, 아직은 엄마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저 우리 '엄마'들이 당신들을 위한 삶도 살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의 엄마로서 누구의 아내로서의 삶을 살다가 당신들의 삶을 잃어버릴까봐 두렵다. 엄마만을 위한 음식, 엄마만을 위한 여행, 엄마만을 위한 휴식과 여유. 그런 것들을 딸이라는 이름의 '감사하는 맘'으로 돌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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