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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꼴로 있는 산부인과 정기 점진을 마치고 같이 갔던 남편,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벌써 임신 19주. 몸이 무거워졌기 때문인지 어느새 여름이 절정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인지 '덥다'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6월이었다. 마침 근처에 냉면 가게가 있어 매콤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후루룩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이윽고 음식이 나왔다.

회냉면 한 그릇과 뜨끈한 갈비탕 한 그릇. 남편이 후룩후룩 냉면을 먹는 동안 나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밥을 만 갈비탕을 식혀 아이를 먼저 먹인다. 20개월 된 아이에게 매콤한 비빔냉면을 먹일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이 몫의 음식을 따로 시키기도 애매하니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뜨뜻한 갈비탕을 먹기로 마음을 돌렸었다. 잠시 식당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얌전했던 아이가 드디어 식당을 '접수'하기 시작한 지라 남편과 나는 둘다 마음이 급했다.


결국 뽀로로 님의 은혜로우신 도움을 받아 간신히 아이에게 밥 반공기를 먹이고 슬쩍 남편 쪽을 보니 남편의 냉면 그릇이 얼추 다 비워졌다. 남편과 나의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는 호흡이 잘 맞는 육상 선수들처럼 투명한 바통을 착착 터치하고, 서로의 역할을 바꾸었다. 아이가 남편의 손으로 넘겨진 순간부터 내 식사가 시작된다.

갈비탕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떠 먹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먹이고 남긴 밥을 싹싹 비우고, 반찬 그릇의 반찬도 싹싹 비우고, 갈비탕 그릇을 그릇 받침대에 척 기울여 놓고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먹는데 채 십 분이 안 걸린 것 같다. 나는 아직 입 속에 음식들을 우물거리며 남편과 함께 얼른 식당을 빠져 나왔다.




남편의 식사가 끝난 후에 내 식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개구쟁이를 돌보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내 식사 시간이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것도 신경이 쓰였고, 또 밥 상 밑으로 기어 다니며 숟가락통이며 휴지통을 뒤집고 물병을 쏟기 시작한 아이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닌 배를 채우는 수준의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아기 식탁 없이 아이와 함께 외식을 하며 편안하게 밥 먹기를 기대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일인지도...... .

엄마가 된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우아함'에 관해서이다. 나도 우아하게 밥 좀 먹고 싶어. 나도 우아하게 차려 입고 외출을 하고 싶어. 나도 우아하게 커피 한 잔 마시며 책 한 권 읽고 싶어, 우아하게, 우아하게, 우아하게...... . 결혼 전에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별로 써 본 적 없었던 '우아함'이라는 말을 이렇게까지 많이 쓰게 된 까닭은 우리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나서 급격하게 변한 자신의 상태가 문득문득 안쓰럽기 때문이 아닐까?

출산 전에는 화려한 옷들도 잘만 입던 친한 언니가 아이를 낳고 나서는 무조건 싸고 무조건 편한 옷들만 집어 드는 것을 보고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또 예전에는 유행하는 화장법을 가장 먼저 선보였던 친구 A양도 아이를 낳고부터는 아이를 치장하는 데에만 신경을 쓸 뿐 정작 자신은 푸석한 얼굴로 나타나 안쓰러웠는데...... .

전에 한 번은 '우아함'을 부르짖는 엄마들끼리 모여 언제까지 우리의 '지지리 궁상'은 계속되어야 할 지에 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네 살쯤 되면 엄마들도 우아함을 되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이야기가 무척이나 희망적으로 흘러가던 순간,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모 엄마의 한 마디, 둘째는?!!!




아이가 다 클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 스스로 가능한한 우아해 지도록 노력하자며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했었다. 얼마 전 가족 여행 준비를 하며 실로 오랫만에 (결혼식 이후 처음) 손톱 가게에 가서 손톱 매니큐어를 받았다. 뭉뚝하고 못생긴 손톱이 전문가의 손길을 받자 꽤 예쁘게 변신을 했다. 마음에 들어 계속 손톱을 쳐다보며 감탄을 하고 있는데, 20개월 짜리 아들 녀석이 제 눈에도 신기한지 내 손을 잡고 한참동안 바라 본다.

엄마 예쁘지? 하는데 아이가 어디론지 후다닥 뛰어 갔다 오더니 슬쩍 내미는 것이, '휴지'다. 무언가 지저분한 것을 봤을 때 내는 감탄사인 '이~~~' 소리까지 내면서.

상황이 어찌나 우스웠는지 아이와 함께 배가 아프도록 깔깔깔 한바탕 웃었다. 나는 엄마가 되면서 '우아함'은 잃었을지 몰라도 아이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얻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나에게 주는 행복 선물 하나하나가 매우 크기에 그깟 우아쯤은 잠시 잃어 버려도 괜찮지 싶다. 글솜씨가 없어서 이 글도 매우 우울하게 읽혀졌을게 뻔 하지만 말이다.(저,,, 발랄함은 어디서 배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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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장사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다.
여성들을 상대로 옷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딱 봐도 66사이즈를 입어야 될 손님에게도 예의상 44? 55? 하고 물어 봐 주어야 하며, 남자 손님에게 물건을 권할 땐 족히 마흔은 돼 보여도 '오빠'하고 싹싹하게 불러 주는 것이 기본 상식이거늘, 오늘 나를 연타로 충격에 빠뜨린 마트 직원과 요가 상담사는 어쩜 그렇게도 눈치가 없을까?

한 눈에 봐도 66사이즈가 뻔한 여성에게 '44? 55?'를 묻는 사람인들 그 말이 진심이었겠으며, 아빠뻘 되는 손님에게 '오빠'라고 부른 사람인들 속으로는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급하게 살 것이 있어서 오전에 마트에 갔었는데 그 곳에서 나는 첫 번째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혼자 한 외출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발랄하게 옷을 입었다고 생각을 했고 맨얼굴에 야구모자를 눌러 쓴 내 모습이 어쩌면 대학생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고 흐뭇해 했다. 그러나 이런 내 상상이 그리 길지 않았을 때,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남자 직원의 한 마디,

'어머니, 돼지고기 좀 들여 가세요......'

오늘만 파격가로 30%를 할인 했다느니, 제주도에서 녹차를 먹여서 기른 깨끗하고 맛있는 돼지고기라느니......
그런 말은 이미 내 귀를 떠난지 오래고, 내 귓가와 머릿속을 윙윙 울리는 것은 오직,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혹시나 해서 주위를 둘러 봐도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직원은 연신 싱글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 보고 있었다.
흥! 그 돼지고기가 50%로 내려간들 내가 절대로 사나 봐라!

남편도 없이 아이도 없이, 나름 발랄한 모양새로 외출을 했건만 타인의 눈엔 나는 그저 '어머니'일 뿐.



아무래도 '회춘'이 필요한 것 같아서 다음 달부터는 운동을 좀 해 보려고 이것 저것 생각하던 차에, 집 앞에 요즘 유행이라는 '핫요가' 학원이 생긴 것이 생각나서 저녁에 상담을 받으러 가게 됐다. 자세 교정에도 좋고 뜨뜻한 곳에서 땀 흘리며 운동을 할 수 있어서 피부에도 좋다기에 솔깃했는데 다만 6개월을 한꺼번에 등록해야 된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예전에 싸다는 말에 헬스클럽을 몇 개월씩 한꺼번에 등록했다가 남 좋은 일만 시켰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이를 키우다 보면 돌발상황이 늘 있기 마련이라 매번 아이를 맡겨놓고 6개월을 꾸준히 요가학원에 다닐 수 있을지 너무 고민이 됐다.

이런 내 마음을 이야기 했더니, 상담 해주던 사람 왈,
'보아하니 이제 웬만큼 다 키우셨을 것 같은데 뭘 그런 걱정을 하세요?'
띵--  연타로 맞았기에 내 충격은 더욱 컸다.
이제 갓(?) 엄마가 됐고, 내 나이 이제 겨우(?) 삼십 대 초반인데 나를 도대체 몇 살로 봤단 말인가?

맘 같아서는 홱 고개를 돌리고 나와 버리고 싶었으나, 요가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운동이기에 상담을 해 주던 사람에게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냐고, 이제 겨우 14개월된 아들이 있는데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냐고 농담 약간과 진담을 듬뿍 담아 한 마디 해 주고는 돌아 왔다.

아줌마 고객들, 특히나 이제 막 결혼을 하여 아줌마 소리가 익숙치 않은 새댁이나 나처럼 출산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어머니 소리를 못 들은 척 하고 싶은 새내기 엄마들에게는, 
'아줌마' 보다는 차라리 '저기요'가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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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닌데, 끊임 없이 되살아나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처키 인형처럼(다솔아 미안) 다솔이가 좀처럼 자 주지를 않는다. 더운가 싶어서 부채를 살살 부치면서 자장가를 불러 주다가,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가슴을 두드려 주다가, 젖을 좀 더 물려 보다가, 다시금 끌어 안고 흔들어 보다가......(무한 반복)...... 겨우 잠 들었나 싶어 살금살금 몸을 일으키면 그와 동시에 눈을 번쩍 뜨는 다솔이 때문에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다솔이를 재워야만 했다. 드디어! 잠, 이, 든, 다, 솔, 이.

그날따라 다솔이를 재우는 내 마음이 이리도 급했던 까닭은 아침에 배달 된 소설책 때문이다. 아기가 태어남과 동시에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은 '고요'와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는데, 어찌 된 노릇인지 아기가 성장을 할 수록 점점 더 내 시간이 없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10개월이 된 다솔이는 호기심이 왕성해서 눈에 띄는 것은 모조리 '맛'을 봐야만 하고, 잡고 서서 걸을 수 있게 된 이후부터는 가구를 잡고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기 때문에 나는 한 시도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런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라곤 밤에 아기를 재운 후 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조금이라도 일찍 다솔이를 재우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드디어 다솔이가 잠에 든, 조용하고 평화로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맞이하고 나는 눈물겹게 책장을 넘겼다. 혹자는 어차피 '지어 낸 이야기'에 불과한데 뭣 하러 시간을 들여 소설을 읽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단어 하나 하나가 만들어 내는 참 재미를 알게 되는 순간, 그저 그런 이야기가 읽는 이의 인생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역시나 소설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며 힐끔 시계를 살폈는데 헉! 밤 3시가 넘었다. 너무 재미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나 보다. 한창 재밌게 읽고 있는데 책을 덮기가 너무나 아쉬웠지만, 이래서 단편 소설집을 샀어야 했다고 후회를 해 봤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날 또 '다솔이 엄마'로서 열심히 살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반드시 자야만 한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밤을 꼴딱 새워 책을 읽어도 그 이튿날 늦게까지 자면 그만이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밥 하기가 귀찮으면 하루종일 라면만 먹을 수도 있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원하는 만큼의 커피와 맥주를 실컷 즐겨도 괜찮았다.

그러나,
엄마가 된 후에는 아기가 깨어남과 동시에 나의 하루도 시작되기 때문에, 맑은(?) 정신으로 놀아주고 안아주고 사랑해 주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만 한다. 귀찮음이 하늘을 찔러 부엌에 한 발짝도 들이기 싫을 지라도 아기의 일용할 양식을 빼먹을 순 없으며, 맛있고 영양있는 젖을 주기 위해 커피는 조금만 맥주는 절대로 마실 수 없다.

가장 무서운 것은,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라는 점이며, 힘들다고 해서 엄마라는 자리를 잠시 휴가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임신한 친구들을 만날 때 마다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 주면서 아직 아기를 낳지 않아서 예비 엄마일 때 조금 더 많은 것을 누리라고 당부하곤 했다.

Perfect Heart
Perfect Heart by Caro Walli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엥??
갑자기 등 뒤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 오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 보니, 어느 틈엔가 친정 엄마께서 선풍기를 가져다 틀어 놓으셨다.(나는 잠시 다솔 아빠를 기러기로 만들어 두고 친정에서 다솔이와 지내는 중이다.) 친정 엄마 역시 딸이 장성해 결혼을 하고 아기까지 낳았지만 여전히 엄마이므로, 딸이 컴퓨터를 하는 동안 더울까봐 선풍기를 틀어 주신 것이다.

친정 엄마는 다솔이 돌보느라 고생한다시며 다 큰 딸에게 밥도 해 주시고(나는 낼름낼름 잘도 받아 먹는다.), 내가 힘들어 하면 잠시 누워 있으라고 하시면서 내 대신 다솔이와 놀아 주기도 하신다. 꾀가 나서 엄살을 살살부리면서 한숨 낮잠을 자는 동안 엄마는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일들을 다 해치우시고도 끄떡 없어 보였다. 삼십 년 경력을 가진 고참 엄마답게 이제 막 10개월째 엄마 이름표를 달고 있는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내공으로 한꺼번에 수많은 일들을 착착착 잘도 처리하시는 경외스러운 엄마다. 충성!

친정 엄마를 뵙고 있노라면 이제 겨우 신참 엄마면서 너무 엄살을 부렸던 것 같아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나는 엄마일 것이고, 20년이 지나도 엄마일 것이다.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요, 엄마의 이름에 휴가란 없을 테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너그럽고 푸근한 엄마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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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낙네(?)들과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산책하던 중이었다. 날이 더우니 애들처럼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져서 우리는 이참에 자리를 펴고 앉아 수다를 좀 떨기로 했다. 몇몇은 편의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고 나머지는 근처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서 제각기 주문한 아이스크림이 배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초콜렛과 견과류가 범벅이된 것으로 주문을 해 놓았다. 자외선은 피부의 적이자 노화의 지름길! 햇볕이 한풀 꺾일 때를 기다렸다가 오후 느즈막히 산책을 나갔기에 동네를 걷기에도, 앉아서 놀기에도 적당한 날씨였다.




살랑 바람이 한 점 불어왔던가, 후루룩 새가 한 마리 날아갔던가, 나는 잠시 정신을 놓은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다솔 엄마! 다솔 엄마! 아이고, 다솔 엄마' 연거푸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던 이들이 벌써 돌아와서 입맛에 맞게 아이스크림을 척척 다 배분하고 내 것만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한참을 불러도 대답도 않고 돌아보지도 않아서 몇 번이고 나를 불렀다고 했다. 나는 겸연쩍은 듯 못 들었다며 배시시웃었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듣긴 들었으되, 다솔 엄마가 나라는 것을 잠시 잊어 버리고 있었었다!!!!

넋을 놓고 앉아 있기는 했지만 '다솔 엄마'로 불린지도 벌써 10개월이 다 돼 가는데 어떻게 그 이름을 잊어 버렸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임신 중에 우리 부부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새롭게 사귄 분들은 모두 우리를 '다솔 엄마'나 '다솔 아빠'로 부른다. 그러나 이름이 붙여진지 아직 1년도 안 돼서 그런지 문득문득 그 이름이 어색하게 들릴 때가 있기는 하다.

아이스크림도 다 먹고 동네도 한 바퀴 돌아 와 집에서 쉬는 중에, 휴대 전화를 확인 해 보니 낯선 전화번호의 인물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Loch Rannoch
Loch Rannoch by slimmer_jimm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누구지?
문자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정은아--'로 시작한다.

여고 동창생이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바뀌었다며 새로운 전화번호를 안내 해 주는 내용이었다. 남편에게서는 '여보'로, 블로그에서는 '일레드 님'으로, 자주 왕래하는 친구들에게서는 '다솔 엄마'로 불려 왔기에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여고 동창에게서 그것도 글자로 내 이름이 불려지니 이것도 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색한 느낌이 있었다.

새롭게 얻은 이름인 '다솔 엄마도' 아직은 귀에 설고
예전부터 써 오던 내 이름은 이제 불릴 일이 별로 없다.
어쩐지 내 이름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라 조금 헛헛하고 조금 서글프다.

가끔씩 남편에게 내 이름을 불러 달라는 닭살스러운 부탁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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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의 일이다. 고만고만한 아기들을 키우는 친한 아줌마들끼리 출산 후 처음(!)으로 대중목욕탕에 가기로 한 것은. 우리는 각자 알아서 친정 엄마께, 남편에게 아기들을 세 시간만 부탁하기로 한 후 가벼운 차림으로 24시간 찜질방이 딸린 동네 목욕탕 앞에서 만났다. 피부 보호를 위해 때를 밀지 않기로 결심한 지 오래지만, 모름지기 목욕은 드넓은 탕에서 유유자적 하는 것이 제 맛인 법. 시원한 음료수도 사 먹고 달걀도 까 먹으며 밀렸던 수다를 떨 심산으로 우리는 이 모임을 계획했었다.

약간 부족한 듯 했던 세 시간 동안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뜨거운 물 속에서 오래 버티기, 운동 효과가 있다는 냉온욕, 너무 즐기면 피부를 노화시킬 수 있으니 조심조심 사우나, 푸석해진 피부를 위해 챙겨온 각종 영양 팩과 오랫만에 모발에도 영양 듬뿍 마사지...... . 이 모든 일을 하는 중간 중간 달걀을 먹고 냉녹차를 마시고 과자도 먹다가 허한 기분을 채울 수 없어서 찜질방에 달려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쫄면, 김밥, 만두도 먹었다.  

무슨 할 말은 또 그리도 많은지, 우리는 묵언수행을 하다 방금 해방된 사람들처럼 끊임없이 수다, 수다, 수다를 떨었다. 진심으로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세 시간 후 뽀얘진, 자세히 보면 발그레해진 볼을 하고서 우리는 종종 이런 모임을 갖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친한 아줌마들끼리의 스스럼없이 재미있었던 목욕 모임을 통해 나는 참 많은 것을 얻었는데, 그 중에 친구들에게는 차마 얘기하지 못한 충격적인 깨달음도 있었다. 참으로 참혹했지만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자극이기도 했다.

목욕탕에서 다른 사람의 몸매를 흘끔거리는 것 만큼이나 예의 없는 짓도 없지만, 무릇 여자들은 아름다운 것에는 저절로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 예의 없는 시선을 용서해 주시길...... . 어제 우리들처럼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러온 사람들 중에는 아가씨들끼리의 무리도 있었다. 역시나 임신과 출산을 거치고 완벽한 아줌마로 거듭난 우리들에 비해 풋풋하고 예쁘기가 한정없어서 자꾸만 내 시선을 앗아갔는데, 아가씨들의 허리를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결혼한 지 햇수로 4년. 이제 내 주위에는 대부분이 아줌마이고 아기 엄마들 뿐이라 '아가씨'가 어떤 부류인지 점차로 잊어버리는 중이었다. 그러다 어제 아줌마와 아가씨의 비교 불가능한 뱃살의 상태를 보고 경악을 한 것이었다. 출산 후 9개월 정도 지난 지금의 내 몸무게는 46kg(아! 내 키는 '160-X'이다.)으로 출산 전과 동일한 수치이기에 그런대로 만족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We Love SPAGHETTI
We Love SPAGHETTI by FotoRita [Allstar maniac]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몸무게는 똑같지만 출산 전에 입었던 옷을 입으면 맵시가 떨어지고, 배와 등에 두둑한 살 때문에 고민도 많았는데 만삭일 때의 배에 비해서는 참 많이 줄어들었기에 이만하면 괜찮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결코 괜찮지 않은 것은 중요한 것은 몸무게가 아니라 체형과 몸매의 선이기 때문이다. 현재 내 몸 속에는 근육이 거의 때문에 무게는 별로 나가지 않지만 그틈을 지방이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마른비만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더 뚱뚱하고 덜 뚱뚱하고의 차이가 아니라, 아줌마와 아가씨는 몸통(?)의 크기부터가 다르다. 당연하지! 45인치(만삭일 때 내 허리는 45인치였다!)로 불려 놨던 뱃살을 아무리 줄여 본 들 늘어졌던 살들이 어디로 가겠어? 배에 아무리 힘을 줘 봐도 아가씨들의 개미 허리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은 사실 핑계이고 먹는 양과 먹을 때의 마음가짐부터가 다르니 뱃살이 찌지 않을 수가 있겠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평소보다 사과 하나, 빵 한 쪽만 더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모유 수유를 핑계로 남편보다 더 많이 먹고 있으니 문제다. 이미 늘어버린 식탐과 식사량을 도무지 줄일 수가 없고 식당에서 주는 공깃밥의 양이 집에서 먹는 내 밥 그릇의 양의 절반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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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y coated dreams by horizontal.integration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아줌마와 아가씨의 날씬함은 이미 그 기준이 다르다. 아줌마가 아가씨와 같아지려고 한다는 자체가 욕심이겠지만 아줌마도 자신이 늘 아름답기를 원한다. 젊고 예쁘게 살고 싶은 아줌마들이라면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줄 풋풋한 아가씨 친구 한 명 쯤은 꼭 사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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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띠 친구 구해요.', '삼십 대 초반 친구 찾아요'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는 낮에 혼자 있기 심심하다며 친구를 찾는 아줌마들이 참 많다. 게시판을 통해 아줌마들은 가끔 만나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허물없는 친구를 원한다고 했다. 쉽게 왔다갔다 할 수 있도록 가급적이면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아줌마들이?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 .

오해하지 마시라, 아줌마들이 애타게 찾고 있는 새로운 친구는 바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동네 아줌마 친구이니까 말이다.
 
아기를 낳은지는 꽤 됐지만 아직 아기가 어려서 집 밖을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는 엄마들은 이따금씩 자신들이 창살없는 감옥 살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물론 아기를 돌보는 일이 보람되고 행복한 것이기는 하지만 매일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다보면 문득문득 울컥해질 때가 생기는 것이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 버리고, 어쩌다 보면 황금 같은 주말도 휙 사라져 버리니 맘 먹고 외출하지 않으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집 안에서만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그렇다.

Bathroom reading
Bathroom reading by thejbird 저작자 표시비영리

아기와 하루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다 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해서 자신의 아이와 비슷한 또래를 기르고 있는 새 친구를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주로 아기의 나이에 맞추어서 새 친구를 찾는데 운이 좋게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 급속도로 친해져서 서로의 집을 오가며 음식과 차를 나누어 먹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육아에 관한 정보도 나누고 속 이야기도 터 놓으면서 말이다.

...... .
나는 오늘 녹초가 돼 늦게까지 자고 있는 남편에게 차마 외출을 하자는 말을 못해서 호기롭게 혼자서 집 밖을 나서게 됐다. 일주일만에 바깥 공기를 마시는 순간 너무나 기분이 상쾌해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고개를 들어 '나는 자유인이다'를 속으로 외치면서 통통통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오랫만에 화려하게 화장도 하고 곱게 단장도 했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밀쳐내고 거의 1년 만에 구두도 신었다. 

남편과 아기와 함께 나오지 못한 것이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나는 능동적인 사람이기에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고 아직 감기를 다 벗어내지 못한 아기가 찬 바람을 쐬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각또각또각, 몇 발짝 즈음 걸었을까? 대체 어디에 가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 지,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고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었다.

May their JOY Embrace U!(Bali Kuta Beach)
May their JOY Embrace U!(Bali Kuta Beach) by Kenny Teo (start from scratch...)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늘 가던 길과는 다른 길로 한 번 걸어 가 보기로 했는데 이십 여 분이 넘도록 똑같은 이름의 아파트만 나왔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 동네였다. 오랫만에 신은 구두 때문에 발뒷꿈치는 점점 불편해져 오고 아무 빵집에라도 들어가 샌드위치와 주스를 먹을까 하다가 괜히 돈이 아까운 생각이 들고 갈 곳은 없지만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참 서글픈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참을 더 걸으니 다행히 번화가가 나왔고 저 멀리 큰 마트가 보였고 나는 안심하듯 그 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오랫만에 혼자서 외출을 했으나 내가 한 것이라곤 반찬거리를 두 손 가득 들고 돌아온 것 뿐...... . 어쩌면 나도 우리 동네에 사는 마음 맞는 친구를 찾기 위해 인터넷 카페 게시판을 기웃거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생각할 수록 아줌마들의 건전한 즉석 만남은 참 지혜롭고 좋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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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에서의 일이다. 밖이 그렇게 추웠나? 새삼스레 창문을 여시고 바깥 날씨를 가늠하는 엄마께 그저 헤헤헤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이동하고 마트 안은 따뜻할 것이기 분명하므로 얇은 니트 가디건 하나 걸치신 엄마와는 달리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완전무장이었다.

귀까지 덮는 군고구마 장수 모자에 목 위까지 깃을 올린 패팅 점퍼에 어그부츠까지. 몸 안으로 바람 한 점 안 들여 보내겠다고 작정을 한 것 같이 보였을 것이다. 그 위에다 목도리를 두를까 마스크를 쓸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역시 마스크가 더 안전할 것 같아서 눈만 빼꼼 내 놓고 마트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마트 안은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바글거렸고 나는 내 똑똑한 판단력을 기특해하며 안심하고 장을 봤다. 난방을 얼마나 했는지 삐질삐질 땀이 흐르기 시작했지만 나는 털모자를 벗지도 마스크를 내리지도 않았다. 좀 갑갑하고 불편한 것이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내 친정은 경북 안동이다.
서울 사람들은 절대로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지역의 번화가 풍경인데,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에게?' 정도 될까? 무슨 뜻이냐 하면 친구와 함께 시내 중심에서 약속을 하고 음, 구체적으로 안동에서 가장 큰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그 친구와 만나 서로 간단히 안부를 물은 후 커피를 마시든 밥을 먹든 분위기 좋은 곳을 골라 들어가려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십여 분 쯤 거리를 배회했다고 치자.

오랫만에 만난 친구라 할 말도 많고 마땅히 들어갈 장소도 없었다면? 아마 이들은 십여 분 동안 시내를 세 바퀴쯤 뱅뱅 돌며 모든 밥집, 찻집 간판을 다 훑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중일 것이다. 한참 얘기를 하다가 마주 오는 행인이 낯이 익어서 어디서 본 사람이었더라, 기억을 더듬으면 아까 두 바퀴째 돌 때 나를 앞질러 가던 사람이고 그 사람과 또 마주칠 확률은 70% 이상. 지역의 번화가는 주말에도 비교적 한산하기 때문에 좀 길게 놀 경우 같은 사람과 다섯 번 이상 마주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까닭에 나는 친정에 내려갈 때면 집 앞에 있는 수퍼마켓에 갈 때에도 추레한 몰골로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손바닥 보듯 빤한 동네에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다녔다간 금세 누군가에 눈에 띌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었다는 소리, 늙었다는 소리, 살 쪘다는 소리는 진짜 듣기 싫은데 동창이라도 만나게 되면? 생각만해도 자존심이 상한다. 몰골이 말이 아닐 땐 아예 집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가야 될 땐 비비크림에 립글로스는 필수, 머리가 부스스하다면 모자는 선택이다. 귀찮음이 극에 달해서 씻기는 싫고 장은 봐야 되면 완전무장으로 신분을 숨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기 낳더니 아줌마 다 됐네, 역시 나이와 주름살은 속일 수가 없어, 어머! 쟤 살 찐 것 좀 봐. 평생 이런 소리를 듣기 싫은 것이 모든 여자들의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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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들은 엄마들에게서 참 많은 당부를 받는다. 남편에게 내조는 어떻게 해야 하며 시부모님 봉양은 어찌 해야 되는지 등등등. 결혼 날짜를 잡고 나서부터 엄마는 '행복한 가정 꾸리기' 강좌 쯤 되는 이야기들을 틈만 나면 하시더니, 드디어 결혼식 하루 전이 되자 내 손을 꼭 잡으시곤 마무리 특강을 하셨다.

결단코! 집에 있을 때 남편의 늘어진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지 말것이며, 식탁 위에 남은 밥이며 반찬들을 탐하지 말지어다.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눈 딱감고 버릴지어다, 버릴지어다, 버릴지어다.

결혼 전날 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웃었던가 울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내 평생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거라는 호언장담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멀쩡한 내 옷 놔두고 뭣 하러 남편의 옷을, 그것도 늘어진 티셔츠를 주워 입겠으며 이미 식사를 마쳤으면 당연히 배가 부를 것인데 왜 먹다 남긴 반찬을 아구아구 먹는단 말인가. 아마도 강좌의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상견례 이후 6개월 뒤에 결혼을 했다.) 엄마께서 더이상 하실 얘기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 땐 몰랐다. 그 이야기를 왜 결혼 전날 '특강'으로 하셨는지를...... .



흔히들 여자들이 결혼과 동시에 아줌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 여자들은 다르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여자들은 아가씨 때와 별로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욱 아가씨처럼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에 더 화려해지고 더 예뻐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가씨가 아줌마로 둔갑하는 것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이후부터이다.

...... .

맛있는 저녁 시간. 맛깔나게 무쳐놓은 시금치 나물과 오징어채, 얼큰하게 끓여 놓은 돼지고기 김치찌개, 몸에 좋은 샐러드와 땅콩, 호두가 듬뿍 들어간 콩자반, 없으면 허전한 계란 말이와 구운 김, 친정에서 공수해 온 갖가지 김치들을 잔뜩 차려 놓고 냠냠 쩝쩝 행복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가 중반으로 치닫는 순간 나는 빠르게 다른 사람들의 밥그릇에 남아 있는 밥의 양과 반찬의 양을 비교해 보았다. 이 정도라면 얼추 밥과 반찬의 비율이 비슷하게 남아 있는 것이라며 안심했는데 아뿔싸 식사 종료. 반찬들이 또다시 애매한 숫자로 남아서 내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금치 나물과 오징어채는 반줌씩, 샐러드와 콩자반은 한 숟가락 정도, 계란 말이 세 개과 김 몇 장, 김치 몇 조각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민망한 양 만큼 남아 있었다. 럴수럴수 이럴수! 남편은 무슨 까닭에서인지 밥도 두 숟갈 정도를 남겼다. 나 또한 이미 배불리 식사를 마친 상황이었기에 정말 기가 막히는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모두 식탁을 떠난 순간 나는 '2차'로 남은 반찬 싹쓸이에 들어갔다. 모든 접시들이 비워지는 것은 한 순간이요, 내 뱃살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은 숙명이다.

어쩔 수 없는 아줌마 본능으로 밥상을 싹쓸이 하고 나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 왔다. 정말 내가 아줌마가 됐구나 싶었다. 물론 밥상 싹쓸이는 이미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이런 감정의 쓰나미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늘어진 티셔츠도 입게 됐냐고? 임신 이후 더이상 맞는 옷이 없어질 무렵부터 나는 은근 슬쩍 남편의 오래된 티셔츠를 탐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다솔이가 토하고 침흘려 얼룩덜룩 해 진 남편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소중한 내 옷에 다솔이가 토하는 것은 싫으니까? 아, 귓가에 설경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쯧쯧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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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땐 몰랐다. 작년이었던가 시어머님께서 당신이 욕심내서 사셨다는 66사이즈의 옷을 도저히 입을 자신이 없으시다며 내게 내밀 때만 해도 알지 못하던 것이었다. 어머님은 연세에 비해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계시지만 어쩔 수 없는 뱃살 때문에 딱 봐도 77사이즈는 입으셔야 될 것 같지만, 어머님도 여자인지라 한 치수 작은 앙증맞은 옷을 포기할 수는 없으셨나 보다.

어머님께서 내게 내미신 옷은 우연히 동대문 매장을 방문하셨다가 충동구매로 사신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그 매장의 모든 옷들은 사이즈가 66까지 밖에 없었단다. 단추를 잠그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열심히 살을 빼면 입을 수 있으실 것 같아서 욕심내 샀지만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인데, 그냥 두기는 너무 아까워서 며느리인 내게 주시기로 정하신 것이다.

어머니에 비해 체구가 작은 나는 55사이즈를 입기 때문에 그 옷을 선뜻 받아 들기가 망설여졌다. 받고 나서 입지 않을 바에야 다른 사람에게 주시도록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옷을 받아 들고서 쭈뼛거리고 있으려니 어머님이 '그거 아가씨 66이야' 하신다.



'아가씨 66??' 66이면 66이고 55면 55지 아가씨 66은 또 뭐람? 내가 어리둥절해 있으니까 답답하셨는지 어머님은 내 손에 들린 옷을 기어이 내 팔에 꿰어 주신다. 약간 큰 듯도 했지만 어머님 눈에는 당연히 안성맞춤이다. 좀 큰 것 같은데요, 라는 내 목소리가 무색학 거봐라 잘 맞지 않냐며 예쁘게 잘 입으라는 어머님 말씀.

아가씨들은 전혀 모르는 얘기일 테지만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몸매 선을 잘 드러내 주고 비교적 몸에 착 달라붙게 만들어진 옷들을 아가씨 55, 아가씨 66이라고 부른다. 백화점 등의 마담코너를 눈여겨 보셨다면 같은 사이즈라도 40대 이상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한 옷들의 모양들이 다소 펑퍼짐하고 몸매를 은근슬쩍 덮어주는 덮어주는 디자인들이 단연 최고 인기 상품이다.

어떻게 하면 몸매를 예쁘게 드러낼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가씨들이라면 어찌하면 결점을 가릴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줌마인 셈이다.



결혼한지 2년이 넘었지만 나도 그 전까지는 아가씨 55니 아줌마 66이니 하는 말의 뜻을 전혀 몰랐는데, 아기를 낳고 나니 피부로 확 와 닿았다. 아기를 낳기 전과 비교해서 지금 몸무게는 겨우(?????) 3kg밖에 더 늘지 않았지만 체형이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온 몸이 지방형 인간으로 변해서 임신 전에 입었던 모든 옷들을 하나도 입을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하고야 말았다. 임신 전 체지방지수가 21이었는데 지금은 25니까 그럴 수 밖에 없다.

이까짓 3kg 맘만 먹으면 한 달 안에 쫙 빼 버리리라고 코웃음을 쳤지만 벌써 두 달째 그깟 3kg을 못 빼고 있다. 온종일을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내가 먹고 자고 씻고만 하다보니 제대로 운동할 시간도 없고 운동할 기력도 없다. 3개월 이내에 다 빼지 않으면 내 몸무게로 정착 돼 버린다는 것을 알기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싶지만 맘따로 몸따로인지 오래다.

그래도 절대로 아가씨 55에서 아줌마 55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 내 의지이기 때문에 내일(항상 내일)부터는 계단 오르기를 시작으로 몸무게 -3kg빼기 작전에 돌입할 것이다. 운동 전과 후를 비교하려고 미리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이 사진을 꼭 공개할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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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별 생각없이 차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줌마들은 참' 하는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남자친구를 봤더니 뾰루퉁해져서는 눈짓으로 대각선 뒷쪽을 가리킨다. 내 귀에는 차들이 오가는 소리와 사람들이 분주히 타고 내리는 소리 사이에서 그제서야 한 아줌마가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왜? 저 아줌마 목소리가 시끄러워서?'
'응. 근데 너무 이상한게 아줌마들은 꼭 저런 목소리더라.'
'저런 목소리라니?'
'굵고 큰 소리말야, 시끄러워서 돌아보면 백발백중이야. 아줌마인게 확 티나지. 아줌마들은 왜 꼭 저러는지 모르겠어.'



아뿔싸. 내 남자 친구에겐 누나가 없었지. 남자 친구의 볼멘 소리에 대충 맞장구치면서 호응해 주고는 말끝을 흐렸지만, 순진한 이 남자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여자들의 목소리에 관해 잘 모르는 듯 했다. 남자들이 잘 모르는 여자들 내숭록 1장 1절에는 상황과 기분에 따라서 베이스와 소프라노를 넘나드는 목소리편이 존재한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살아 온 남동생마저 놀라게 하는 목소리 기술의 보유자이기에 조금 전 남자 친구의 목소리 운운에 찔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전화를 받을 때와 집 밖에서 가족 이외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가늘고 높은 소프라노 목소리를 유지하지만 나라고 늘 상냥할 수 있겠는가. 평상시 가족들을 대할 땐 알토 정도의 심상한 목소리를, 동생이 깐죽댈 땐 힘차면서도 굵직한 테너의 목소리를, 동생과 심하게 싸우거나 모든게 귀찮을 땐 저음의 베이스 소리를 큰 어려움 없이 자유롭게 발성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천재적인 목소리 변주가 어렸을 적부터 타고난 것은 아니었고, 성장해 가고 사회 경험이 다양해질 수록 계속 계발되면서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의식적으로 바꾸어야만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 인공지능으로 알아서 척척 바뀌어지는 것이다.


내가 집에서 동생과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특히 남자들의)를 받을 때, 내 동생은 갑자기 급상승하는 내 목소리 톤에 놀라고 가증스러워서 도끼눈이 된다. 삼십 년을 봐 왔어도 여전히 못마땅하기 때문이겠지만 내 동생은 나로 인해 여성들의 놀라운 목소리 변주에 관해서는 제대로 알았을 것이다. 내가 잘못 걸린 전화에도 이미지 관리를 한답시고 상냥함을 유지할 때 동생은 어이가 없어서 소파 위로 쓰러지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인공지능 목소리 바뀜이기에 알아서 척척이니까 잘못 걸린 전화라고 해도 낯선 사람에겐 소프라노이다.

다시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버스 안에서 아줌마가 유독 굵고 거친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한 까닭은 상대가 아주 친한 사이이거나 가족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비록 아줌마는 집 밖에서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테너에 가까운 소리를 냈지만 그것은 아줌마가 처한 상황에따라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재설정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유자재로 쉽고 편리하게 바꿀 수 있는 목소리이긴하지만 매순간 적절한 소리를 내는 것이 사실은 은근히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50대로 보이는 아줌마 또래에겐 이제는 별로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더 쉽고 간결한 방향으로 목소리 변화의 폭을 줄였을 수도 있다.


누나와 여동생이 없어서 여성들의 내숭에 관해서 잘 모르는 남성들은, 방심한 여자 친구의 낯선 목소리를 듣더라도 크게 놀라지 마시길 바란다. 잠시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문제가 발생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여자친구에게서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가끔은 모른척 눈감아 주시길 바란다. 늘 상냥하고 고운 목소리를 내는 일도 은근히 피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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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만날까? 묻는 나의 말에 친구 같은 사촌 언니는 이번에도 역시나 집으로 오란다. 퇴근후에 언니네 집으로 가니, 내 예상대로 언니는 맛있는 음식들을 소담스럽게도 차려 놓았다. 각종 요리책을 섭렵한 언니는 최근에 레스토랑 음식을 따라잡아 준다는 요리책을 보고 또 보며 집에 손님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취미가 돼 버렸단다. 요리에 취미를 붙이고 나서는 밖에서 밥 먹기가  너무 아깝다는 언니를 이해는 하지만, 이러다 영영 집 밖을 못 벗어나는 것은 아닌지 너무 걱정스럽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언니라 우리는 자주 만나서 가끔은 근사한 음식점에도 가고 어떨 땐 분식점 떡볶이와 순대도 사 먹었다. 꼭 살 것이 없더라도 동대문이며 명동 쇼핑몰을 구경하는 일도 많았고, 달랑 커피 두 잔 시키고선 네다섯 시간 동안 커피숍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랬던 언니가 결혼 후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집 밖을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이 언니뿐만이 아니다. 결혼한 친구들은 자주 만나기도 어렵지만 대부분 약속 장소를 자기의 집으로 정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현상은 솜씨가 좋은 친구들을 수록 더한데, 스파게티 만드는 법이 생각보다 그리 까다롭지 않음을 알게 된 친구들은 만원이 넘는 스파게티를 식당에서 사 먹지 못하며, 별 것 아닌 김치찌개나 볶음밥 등을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사 먹는 경우에는 원가 생각에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단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커피숍에 갈 수가 있단 말인가. 사실 우리가 만나서 하는 일이 뻔하니, 친구 집에 앉아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과일을 먹으면 정말 편하게 맘껏 수다를 떨 수 있다. 조금만 수고하면 적은 돈으로 맛있는 것을 양껏 먹을 수 있고 공짜로 텔레비전도 볼 수 있으니 정말 경제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집안의 안주인이 되면서 알뜰살뜰 가계부를 작성하다보니 집 밖을 나가는 순간 모든 것이 돈으로 보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또한 스스로 장을 봐서 살림을 하고 밥상을 차리다 보니 원가가 뻔한데, 터무니 없는 값을 치르고 밥을 먹는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단다. 이런저런 까닭으로 자신을 스스로 집 안에 구속하게 되니, 전업 주부인 경우에는 장을 보거나 가끔씩 집 앞에 나가는 것 외에는 외출할 일이 너무 없다. 외출할 일이 없으니 새 옷을 장만할 필요도 없고 화장을 안 해도 상관이 없으며 부스스하고 추레한 몰골이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 러, 나, 나는 아줌마들이 가끔씩은 집 밖으로 나와서 '원가'걱정 말고 신나게 놀기를 바란다. 비록 집에서 만든 음식이 더 영양가 있고 더 맛있더라도 분위기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만든 음식을 편안하게 즐길 여유가 있길 바란다. 이따금 결혼 전과 동일한 진하기의 화장으로 자신을 꾸미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음악과 조명이 좋은 커피숍에서 고상한 듯 웃으며 수다를 떨기를 바란다. 자신을 위한 돈도 쓸 줄 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려워진 나랏살림 탓에 더욱더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가족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우리나라 아줌마들, 그녀들이 가끔 외출한다고 해도 우리는 아줌마들을 이해할 것이다. 진, 심, 으,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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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아이에게, 내 친구 S는 기어이 다시 말 해보라며 추궁하기 시작한다. 아니, 내가 왜 아줌마야? 누나지. 자, 따라해봐 누나...... . 마트에서 믹스커피를 고르다가 내가 사은품에 눈이 멀어 이것 저것 들었다 놨다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왜 저런 상황이 연출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은품으로 밀폐 용기를 주는 커피를 살 것인지, 머그컵을 주는 커피를 살 것인지 도무지 결정이 되지 않아서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보려고 고개를 돌렸더니 생뚱맞은 누나 타령이다. 제 눈에도 삼십 대 누나는 너무했는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서 있는 아이는 이리 저리 눈을 굴리며 엄마를 찾는 폼이 여차하면 울 태세다. S도 한껏 뿔이 나 있는 상태라 내가 말리지 않으면 더 민망한 상황으로 번질 것 같아서 나는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친구는 동갑인 나에게 자신이 몇 살로 보이냐며 씩씩거린다. 5년 이상을 봐 온 사이이기에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는 여전히 스물 여섯으로 보인다. 그러나 타인의 눈, 특히나 거짓말을 못하는 아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겠는가. 사실 나는 아줌마라는 호칭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대학교 3학년이던 스물 두 살 때 이미 꼬마아이들에게서 아줌마 소리를 숱하게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 당시 비디오 대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 가게는 만화책이며 복권에 자판기까지 잡다한 것들도 갖추고 있었다. 5시간씩 삼교대로 돌아갔는데 나는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 했다.


시간대 별로 손님 층이 달랐는데, 내 고객(?)은 주로 초등학생들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놀러 나온 아이들은 만화책이나 만화 영화를 빌리고자 가게로 몰려왔고 그들에게 나는 당연히 아줌마로 불렸다. 열 살 짜리 아이에게 누나는 열 둘이나 열 넷 정도이지 스물 두 살 늙은이(?)가 아닌 것이었다. 개중에는 '누나, 언니'하며 나를 따르는 영특(?)한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냥 아줌마였고 나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에게 아줌마는 별로 기분 나쁜 호칭이 아니지만 친구는 몹시 화가 났나 보다.

하긴 호칭이라는 것이 사람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도 70대 쯤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그 분들의 나이정도 되면 나 정도는 어려보이므로) 길을 물어보실 요랑으로 나를 불러세울 때, 다른 호칭이 아닌 학생으로 불러주셨을 때 반색하며 급친절 상태로 돌입했던 경험이 있다. 행여나 시력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학생이라고 불러주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호칭 중 가장 듣기 좋은 것이 학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영낙없이 아줌마로 불릴 수밖에 없는 나잇대로 접어들었고 아줌마는 괜찮다.
그런데 나는 할머니라는 호칭은 손자, 손녀에게서가 아니면 정말 듣고 싶지가 않다. 더이상 나아갈 단계가 없어서 그런가, 호칭을 듣는 순간 더 늙어질 것 같아서 그런가, 아직 할머니라는 말은 들어보지 않아서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호칭에 심술이 난다. 요즘에는 60대 어르신들도 아주 젊어 보이셔서 그냥 아줌마, 아저씨로 부르면 될 것 같은데 굳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을 들으면 괜한 심통이 난다. 친구가 아줌마라는 단어에 나타내는 반응을 나는 할머니에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자취방 주인집 아줌마와 마주쳤을 때, 아줌마라고 불렀더니 기뻐하시는 얼굴을 많이 보았다. 나를 만나면 굉장히 반가워 해 주시는 까닭도 나에게 특별히 김장김치까지 주신 까닭도 이유는 호칭에 있지 않을까?

학생-아가씨-아줌마-할머니 중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학생이요, 가장 듣기 싫은 말은 할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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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다. 어떤 통과의례가 있었던 것처럼 아가씨(?)들은 결혼을 하게 돼 아줌마가 되면 점점 불륜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를 좋아하게 된다. 뭔가 마법처럼말이다.
 
며칠전 우연히 아침드라마를 보게 됐다. 일찍부터 일어나 부산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한 주부들. 다른 가족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뿔뿔히 흩어지고 나면 그녀들은 비로소 자신만의 고즈녁한 아침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침드라마는 전업 주부들에겐 쉼터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녀들의 쉼터엔 왜그리 엇갈린 사랑이 많은가? 며칠전 우연히 아침드라마를 보게 됐다. 분명히 처음 본 드라마였음에도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대화 내용들이 익숙했다. 묘한 흥미가 생겨서 커피를 마시며 20여분 보고 있노라니 전후 줄거리가 훤히 파악이 되는 그야말로 뻔한 내용의 드라마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동안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소위 말하는 방송가의 경향(트렌드)이 바뀌었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변화했으며, 문화 풍속도도 달라졌다. 그렇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과거의 여성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여자들이 아줌마(물론, 아줌마도 명백한 여자이다.)가 되면 이 모든 변화를 스스로 거스르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왜일까? (아, 이 글에서 나는 아줌마들이 드라마를 고르는 성향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나는 통속의 극치라며 열변을 토하던 뭇 여성들이 아줌마가 됨과 동시에 등장인물에 완전히 감정이입하는 것을 많이 봐 왔다.

아줌마를 주시청자로 겨냥하고 만드는 드라마의 소재는 다양하지만 그녀들이 특히 좋아하는 소재는 '불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가장 두려워할 사람은 불륜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자신만의 상대가 있는 아줌마들인데도 말이다.(그러고보니 같은 입장에 놓인 아저씨들은 대체적으로 불륜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줌마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는 '부부클리닉'만 봐도 그렇다. 마치 그녀들은, 혹시나 생길 줄 모르는 사태(?)를 미리 공부하고 어떠한 낌새를 감지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며 상황 대처 능력을 키우기 위해 드라마를 교재로 삼은 듯이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줌마들은 진심으로 그런 부류의 드라마를 즐긴다는 것이다. 발라드나 락을 좋아하던 남자가 군인이 되면 그저 목놓아 부를 수 있는 트로트를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아줌마들에게는 짐(?)이 많다. 매일 반복되는 식단짜기의 고단함과 해도해도 끝이 없는 집안 단장. 자녀들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계속 생겨나는 그들에 대한 걱정거리와 기타등등의 어려움...... . 아줌마들은 드라마를 보면서조차 고뇌할 정신적인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들에겐 거창한 기획의도가 담겨진 머리아픈 드라마보다는, 한시간 신나게 웃고, 실컷 울며, 이해하기 쉬운(심지어 중간부터 봤더라도) 내용의 통속 드라마가 훨씬 더 필요하다. 불륜드라마를 보다가 괜히 남편에게 눈을 흘기고 친구와 함께 그 내용에 대한 수다를 떨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이 그녀들, 아줌마들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아줌마와 불륜드라마의 상관관계'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보니, 저기 옆에서 예전에 방송되었던 부부클리닉을 또다시 흥분하며 보고 계신 '엄마' 눈물겹게 귀여워보인다. 그야말로 눈,물,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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