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얼마 전에 너무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아니 황당하다는 것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어이없고 화나는 일이었다. 내가 겪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야말로 내 분을 삭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글을 쓴다.

친언니 처럼 지내는 친척언니의 생일날 나는 어떤 의미 있는 선물을 사 줄까 고민하다가 오랫만에 기특한 생각을 해 내게 됐다. 직장 일과 가사 일을 병행하고 있는 언니의 건강을 챙겨주기로 맘 먹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선물이라봤자 고작 머리핀이나 책, 인형 등등 값싸고 주기 쉬운 것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작정하고 고급 영양제를 선물하기로 한 것이다. 주부가 되면 자신보다 남편이나 시댁, 친정을 더 먼저 챙길 것이 뻔하기에 언니의 몸은 동생이 챙겨줘야 한다. 그래서 이왕 사는 거 비싸더라도 좋은 것으로 골라 두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약사에게 영양제 하나 좋은 것으로 달라고 했더니 '코엔자임큐텐을 함유한 비타민, 미네랄 종합 영양제 XXXX'를 권해줬다. 가격은 자그마치 8만원!!! 내가 먹을 것이라면 2~3만원대로 샀겠지만 그동안 언니에게 받았던 무한한 사랑에 보답하고자, 손을 떨며(?) 이 약을 샀다. 솔직히 나는 코엔자임큐텐이 뭔지도 모르고 종합영양제 안에 어떤 성분들이 포함돼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많이 들어봄직한 제약회사에서 만들어 진 약이고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기에 그저 좋은 것이려니 했다. 또 약 상자에 쓰여있는 문구도 딱 내 마음에 들었다.

결혼한지 6개월 정도 된 언니이기에, 이제는 슬슬 귀여운 아기를 잉태할 때도 된 것 같다는 내 생각을 이 약을 통해 은근히 언니에게 전할 요랑이었다. 그래서 약 상자에 써 있는 이 약의 효능/효과 문구가 참 맘에 들었던 것이다.
[효능/효과] 다음 경우의 비타민 A, D, E, B1, B2, B6, C의 보급, 육체피로, 임신, 수유기, 병중, 병후의 체력 저하시, 발육기, 노년기, 눈의 건조감의 완화, 야맹증----이하 생략
특히나 임신, 수유기인 여성이 먹으면 좋다는 이 문구가 언니에게 은근히 전해지길 바라며 나는 기쁜 맘으로 이 약을 언니에게 선물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얼마 후 언니네 집에서 밥을 먹다가 8만원짜리 생일 선물을 너무도 생색내고 싶었던 나머지, 나는 언니에게 그 약 잘 챙겨먹고 있냐고 기세등등하게 물어봤다. 그런데, 언니의 대답이 너무나도 예상밖이어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언니는 슬슬 2세를 계획하고 있어서 무슨 약이든 먹을 때 조심한다고 하는데(당연하다!), 내가 줬던 그 약이 언니의 2세 계획에 문제가 있어서 형부가 대신 먹는다는 것이 아닌가?

임신, 수유기 여성에게 좋다는 문구가 특히 마음에 들어서 샀던 약이 임신에 문제가 된다니 나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언니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언니가 약 상자 속에 들어있던 첨부문서를 보여줬다. 나 같으면 읽지 않았을 긴 설명서를 언니는 꼼꼼하게도 읽어봤나보다. 효능/효과에 '임신, 수유기'라고 동일하게 표시돼 있는 그 설명서 아래에는 '사용상의 주의사항'이 써 있었다.
1. 경고 임부에 비타민A(레티놀)를 1일 5000IU 이상 투여하는 경우에는 선천성 기형을 유발할 위험이 있으므로 임신 3개월 이내 또는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부인에는 비타민 A를 5000IU/일 이상 투여하지 않습니다.---이 영양제에는 비타민 A가 5000IU 들어있어서 문제가 된다.

또 다음 '환자에는 신중히 투여하십시오'라는 설명 아래에는 5)임부, 수유부라고 써 있었다. ----분명히 임신, 수유기의 사람에게게 효능과 효과가 있다고 해 놓고 그것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게다가 '7. 임부, 수유부, 미숙아, 유아에 대한 투여' 항목에는 1) 외국에서 임신전 3개월부터 임신초기 3개월까지 비타민A를 10,000IU/일 이상 섭취한 여성으로부터 태어난 아이에게 두부신경릉 등을 중심으로 하는 기형발현 증가가 추정된다는 역학조사결과가 있으므로 임신 3개월 이내 또는 임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부인에는 비타민A 결핍증 치료에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약을 투여하지 않습니다. 또한 비타민A 보급을 목적으로 이 약을 사용하는 경우는 식품 등으로부터의 섭취량에 주의하고 이 약에 의한 비타민 A투여는 5000IU/일 미만에 머물도록하는 등 적절한 주의를 합니다. 2) 비타민 D는모유로 분비되어 신생아에게 과칼슘혈증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3) 임신 수유중 과량복용시 태아 및 영아의 갑상선기능장애 및 갑상선종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라고 써 있었다.

분명히 나는 임신 계획이 있는 여성이 먹을 영양제라고 약사 아저씨에게 덧붙여 말했고, 약사 아저씨는 내가 산 영양제가 아주 좋은 것이니 누가 먹든 상관 없이 좋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이런 무시무시한 내용이 사용 설명서에 적혀 있을 줄이야~! 만약 언니가 설명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읽어보지 않았다면 정말 큰 일이 났을 수도 있는게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약사의 말과 약 상자와 약 병에 써 있는 계략적인 설명만을 믿고 약을 복용할 것이다. 사용 설명서를 꼼꼼하게 밑줄 그어가며 읽어보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상반된 내용을 포함 하고 있는 약을 별다른 설명 없이 판매한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약을 산 나도 문제지만,  8만원이나 되는 돈을 너무 쉽게 벌어간 약사와 더 알기 쉽게 약의 성분과 효능을 표기하지 않은 제약회사가 더욱 문제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약 상자 속 깊숙히 들어 있는 자세한 사용 설명서를 더 잘 눈에 띄게 보여줘야만 한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