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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력(?)을 다해 화장을 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원래부터 머리 손질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생머리일 때도 파마 머리일 때도 그저 드라이어로 젖은 머리만 바짝 말리는 것으로 외출 준비는 끝이다. 머리 모양을 예쁘게 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욱 어색해지고 엉망징창이 됐기 때문에 머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됐을 수도 있고, 어쩌면 화장에 들이는 공과 시간이 너무 많아서 머리는 대충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당연히 미용실에 가는 것은 연중 행사요, 단골을 지정해 두지도 않는다. 맘 내키는 대로 A매장에도 갔다가 B매장에도 가는데 솔직히 내 눈에는 A나 B나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1mm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미용사들이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겠지만 문외한인 내 눈에 그 정도의 경지가 보일 리 없다. 아무튼 여러 가지 사정상 1년 하고도 6개월 동안 미용실에 가지 못해서 부스스를 넘어서 초라해 보이기 시작하여 오랫만에 미용실을 찾게 됐다.

그동안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길어 버려 관리하기가 너무 힘들었기에 큰 맘 먹고 단발로 싹둑 자르기로 했다. 머릿속에는 가인을 떠올리고 있지만 그녀를 닮기엔 너무 넓데데한가? 미용사 언니가 나는 힘없는 머릿결에 볼품없는 머리숱의 소유자이기에 머리를 자르고 볼륨매직을 해 줘야만 예뻐보일 수 있다기에 전문가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고 장장 세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용실에 붙들려 있어야만 했다.


목선이 드러나는 단발 머리에 볼륨 좀 줄 뿐인데 세 시간이 넘도록 지지고 볶고를 해야 한다니 좀이 쑤셔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곳곳에서 풍기는 파마약 냄새 중화제 냄새에 눈이 빠지고 몸이 배배 꼬여 꽈배기가 될 무렵, 그런 내 모습이 안 쓰러웠는지 차 한 잔과 함께 두툼한 잡지책이 전달 돼 왔다. 그나마 읽을 거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대충 그림만 보며 휘리릭 넘기다가 '트로피 와이프'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우리 말로 해석하면 '상 부인'쯤 되는 말인가? 호기심이 생겨 내용을 읽다가 나는 머리를 만 채 미용실 천장을 뚫고 날아갈 뻔 했다. 잡지책은 아무렇지도 않은 심상한 말투로 설명을 해 주었는데, 트로피 와이프의 뜻은 다음과 같다. 여러 번의 이혼을 경험한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이 어느 정도 나이도 들고 인정도 받게 되자 그간의 수고를 보상 받듯 트,로,피 처럼 미혼의 여성을 아내로 맞이 하는 것이란다. 이 무슨 빵꾸똥꾸 같은 말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늙으막하게 처녀 장가를 가는 것을 미화시켜서 이런 표현을 쓰는가 본데, 나이 차이가 상상초월이었다. 열 두 살 연하는 기본이고 어떤 80대 재벌은 63세 연하(절대 오타 아님)를 '상 부인'으로 받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단다. 외국 배우들의 사례를 먼저 나열하다가 우리 나라 배우들도 몇몇 거론이 됐던데 그 분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서 여기다 옮기지는 않겠으나 좀 심한 듯 했다.


그냥 사랑해서 결혼하다 보니 나이 차이가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이혼을 한 명예와 재력을 갖춘 남성이 상으로 미모의 미혼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라니, 누가 지어낸 말인지 참 나빴다. 63세 연하와 결혼을 했다는 80대 할아버지를 비롯한 외국 배우들이야 우리 나라 잡지를 사서 읽을 리가 없으니 괜찮다쳐도 우리 나라 배우들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여 이런 빵꾸똥꾸같은 기사를 써 놓은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화가나겠나. 특히 아내들이 이 잡지를 본다면?

미용실에서 우연히 알게 된 '트로피 와이프'라는 단어를 내 인생 최악의 단어로 지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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