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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나는 올 해 서른이다.)만 해도 목이 마르면 당연하게 수도꼭지를 찬 물 방향으로 콸콸 튼 다음 유리컵에 따라서 그대로 마셨다. 그 때 마셨던 물도 시원하고 달았던 것 같은데, 정말 그랬던 때가 있기나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물이 점점 더 귀해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일이 점점 줄어들더니 끓는 물에 넣어 마시는 티백이 다양한 종류를 자랑하며 등장했고 보리, 결명자, 옥수수 등이 우리의 주된 마실거리가 되었다.

내가 대학생이 될 무렵이었던가? 결국 돈을 내고 사 먹는 생수가 등장했는데, 짠순이 기질이 다분한 나는 속으로 결코 물을 사 먹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곤 했었다. 정말 그 때만 해도 물을 돈을 주고 사 먹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모든 마실거리 중 가장 달고 맛있는 것이 '물'이지만 순수한 물에 아무런 첨가물이 없는 것에 떡 하니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이 영 거슬렸기 때문이다. 공짜(?)로 물을 마음껏 마셨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같은 값이면 오렌지주스나 탄산음료를 사 먹는 것이 더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생수 회사들은 곧 망할 것이라고 혼자서 장담했었다. 그러나 결국 내 예감은 완전히 어긋나고 말았다.


평소에 다른 음료는 잘 마시지 않는 나이기에 요즘의 내가 값을 치르고 사 먹는 마실거리 중 단연 1위는 물이다. 물 값도 점점 올라서 지하철 매점에서 사 먹는 물은 육백원 정도이고 마트에서 무심코 집어 든 물은 심층해양수로 만들어졌다며 삼천원 정도나 했다. 세상에 물 값이 커피값을 앞지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물이 돈이 되는 사업인 까닭인지 기능성 생수를 수입하는 업체가 등장했고 매출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듣기에도 생소한 '워터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등장했고 '물'만 전문적으로 파는 물 카페도 문을 열었단다. 예전에 즐겨 부르던 동요 '옹달샘'에선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카페에 가서 물만 먹고 간다니, 생각할 수록 놀랍고도 끔찍하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못 믿을 물들이 많다는 것을 역설하는 사례이므로.


각각의 물들이 가진 효능도 참 다양한데, 내가 들어 본 것으로는 피로를 풀어준다는 산소수, 다이어트를 돕는다는 탄소수, 무기질함량을 높인 미네랄워터, 청정을 강조한 해양심층수, 아기를 위한 베이비 워터 등이 있다. 가격을 들으면 놀랄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물들은 500ml 기준으로 적게는 천오백원에서 많게는 이만원까지 제 몸값을 자랑하고 있다. 촌스럽게 들릴진 몰라도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 효능에 따라 물을 골라먹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있다. 다만 야외활동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서 물을 준비할 때는 상대적으로 값이 싸게 치인 2리터짜리 물을 준비할 뿐이다. 물로 병까지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시대가 발전한 것은 환영이지만 물을 물처럼 왈칵왈칵 마실 수 있었던 그 때가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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