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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하게도 블로그를 보시고 방송 출연을 제의해 오는 작가 분들이 몇몇 있었으나 나는 그 때마다 생각만으로도 다리가 후덜덜 몸이 부르르 떨려서 정중히 거절을 하곤 했다. 의외로(?) 소심한 성격에 기억력도 좋은 편이라 자칫 방송을 망치게 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고 꽤 긴 시간 밤잠도 설치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뭣도 모르고 방송블로거를 따라서 영화배우 유해진과 진구를 인터뷰하러 간 적이 있는데 나는 그저 가볍게 연예인을 구경을 하러 가는 상황이었기에 아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룰루랄라 그저 놀러를 갔었다. 그런데 문제는 단독 인터뷰에서 메인이었던 (나를 데려갔던) 그 방송연예블로거조차 아무런 사전 조사없이 왔던 것! 코 앞에서 유해진과 진구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딱히 할 말은 없고, 그 자리에서 '저는 그냥 구경꾼이에요'라고 외칠 수도 없고, 나는 진땀을 흘리면서 횡설수설, 우왕좌왕 못 보일 꼴을 보이고 말았다.

그 날 이후 텔레비전에서 유해진과 진구를 볼 때마다 괜히 얼굴을 붉히게 됐고 당연히 꽤 오랫동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을 치는 일이 많았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뭐' 쏘 쿨한 방송연예블로거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던 그 일을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방송 출연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수밖에.

그런데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지원을 해서 서류를 통과하고 방송국으로 카메라 테스트까지 받으러 갔던 일이 있었다. 내가 욕심을 냈던 방송은 KBS 생로병사 팀에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3D 입체 방송인데, 임신과 출산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이다. 임신부 세 명 정도를 섭외해서 배가 점점 불러 가는 과정과 출산에 이르는 것까지를 생생하게 담아내어, 방송 생로병사에서 크게 다룰 수 없었던 '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제작에 참여를 하게 되면 10개월의 임신 기간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되니 나와 아기에게 더 없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서 진심으로 출연이 하고 싶었다. 게다가 3D 입체 영상으로 제작이 되어서 완성 후에는 극장에까지 상영이 된다니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는가! 이미 임신 중기의 산모들은 촬영에 들어갔고 임신 10주 이내의 초기 임신부를 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대학 입학 서류를 작성하는 마음가짐으로 1차 서류에 쓰일 사진을 정성껏 골라 가장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나온 것으로 제출했더니 사진발 덕에 무난하게 1차는 통과.




문제는 카메라 테스트였다. 아직은 바람이 세차게 불던 3월의 어느 날, 나는 남편에 아이까지 대동하고 여의도 KBS 방송국에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 각자 정해진 시간에 한 명씩 따로따로 카메라 테스트와 간단한 인터뷰를 갖게 되는 자리였는데, PD 님은 카메라를 통해 내 모습을 찬찬히 보시더니 참 복스럽게 생겼단다.

어렸을 때부터 크고 넓적한 얼굴 덕(?)에 부잣집 맏며느리 같다느니, 달덩이처럼 얼굴이 훤하다느니 하는 절대로 칭찬일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자랐기에, 나는 직감적으로 망했구나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 PD 님에게만은 '복스럽다'라는 의미가 '긍정'이기를 바라고, 원하고, 소원했지만 결과는 역시나 탈락이었다. 통이든 불통이든 기별이라도 좀 해 주면 참 좋았겠는데, 사진보다 더 예쁘고 생각보다 더 날씬하다며 나를 한껏 띄워주었던 작가에게마저 한 통의 문자도 없었다.

에잇! 복스럽게 생긴 얼굴보다 복 없이 생긴 얼굴이 더 추앙받는 더러운 세상! 두고 봐라, 이제 13주 된 우리 달이만 태어나고 나면, 달덩이같은 내 얼굴을 초승달로 만들고 말테닷! ...... 정,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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