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버스 시간은 7시 30분, 집을 나서야 되는 시간은 7시 10분.
그러나 6시 50분이 넘도록 나는 이불 속에서 끙끙대며 쉽게 자리를 떨쳐 낼 수 없었다. 친정에서 지내는 동안 서울에서 급한 볼 일이 몇 개 생겨서 2박 3일 동안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겨 두고 떠나야 했는데 18개월이 넘도록 아이와 길게 떨어진 것은 '처음'이라, 뭐 하나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엄마를 찾으면 어쩌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면 어쩌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힘들게 만들면 어쩌지? 걱정걱정걱정투성이었다.

친정 엄마도 비슷한 마음이셨는지 굳이 안 가도 되는 일이면 집에 있으라 하시고, 곰곰히 따져 생각해 보면 굳이 안 가도 되는 일이기도 했기에 생각만 복잡, 행동은 굼떴다. 그러다 에잇! 언젠가 한 번은 겪을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아이를 떠나 훌쩍 집으로 올라 와 버렸다.

고속버스 안에서 잠시 아이 생각을 했던가? 까무룩 잠이 든 이후로 내 생각 속에 이미 아이는 없고, 남편과 둘이서 어떻게 하면 2박 3일을 알차게 보낼까 하는 궁리로 마음이 번잡했다.(아, 내 모든 일정은 남편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 날 오후부터 일이 있었기에 우선은 집으로 와서 말끔히 씻고 아이와 함께 외출했을 땐 절대로 입지 못했던 옷, 하지 못했던 머리 모양, 더 과감한 화장을 하며 남들이 깜박 미혼으로(?) 속게끔 (물론 아무리 꾸며 봐야 남들 눈에는 삼십 대 아줌마다, 그러나 자기 만족, 자기 착각, 자아 도취로) 나를 꾸몄다.

Smiling from the inside out - DIY
Smiling from the inside out - DIY by Geek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햇살은 좋고, 기분은 더 좋고, 가만히 있는데도 실실 웃음이 났다.
아, 이런 것이 '자유'구나! 근 19개월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홀가분함! 아아, 이런 기분 왜 나만 모르고 살았었나? 그냥 걸어 가는데도 즐거워 콧노래가 나오고 모든 사람들에게 세 배쯤 더 친절해지는 참 우스운 기분이었다. 그 날의 일정을 마치고 당연히 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강남역 근처를 누비며 옷 구경, 액세서리 구경, 사람 구경, 거리 구경...... 아이를 들쳐 안고서는 할 수 없었던 구경들을 실컷하고 저녁도 밖에서 먹었다.

그동안 아이를 먹이느라 정작 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었는데, 천천히 꼭꼭 씹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감격하고! 생전 처음으로 실내포장마차에도 가서 닭발과 돼지껍데기도 먹어 보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따뜻한 저녁밥을 먹으니 눈이 슬슬 감기려고 했지만 우리는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 아침 7시쯤 움직였으니 이미 외출한지 12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까지 보고 돌아갈 계획이었다.

임신과 출산 후 3년 만에 극장에서 보게 된 '위험한 상견례'. 피로가 쌓였던 탓에 마지막엔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정말 깔깔대며 재미있게 영화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 온 시각은 밤 12시 30분, 다음날은 아침 일찍 광화문에 나가야 되었었기에 쓰러질 듯 잠을 잤다. 그래도 실실 웃으면서......

양심은 있어서 하루에 몇 번씩 친정으로 전화를 해서 아이는 잘 있는지 친정 엄마는 힘들지 않는지 안부를 물었지만, 솔직히 전혀 걱정은 되지 않았다. 엄마를 통해 다행히 아이도 밥 잘 먹고 잘 노는 중이라는 기쁜 소식도 들었겠다, 남편과 함께 패키지 해외 여행이라도 온 듯 2박 3일을 쪼개고 또 쪼개서 엄청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내 체력이 이렇게 좋았던가 싶을 정도로 서울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참 짧았던 2박 3일의 마지막 날 나는 다시금 고속버스를 타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자유부인'에서 다시 '엄마'로 돌아갈 시간. 아이가 오랫만에 본 엄마에게 안겨 서럽게 울지나 않을지 걱정도 됐는데, 어라?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더니 아이의 반응이 별로 신통치가 않다. 아이에게 아직 시간 개념이 없어서인지 엄마가 잠시 나갔다가 들어오는 정도로만 아는 것 같았다. 휴-- 이 편이 더 낫지.

이럴 줄 알았으면 며칠 더 놀다가 오는 건데, 친정 엄마께 진심이 묻어 나는 농담을 던지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 꿈 같았던 내 2박 3일이여...... .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