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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가 중천에 떠서 나를 빼꼼히 (햇님에게 진짜로 눈이 있다면 아마도 한심한 눈으로) 내려다 볼 때까지 쿨쿨쿨 자다가, 띠리링~ 울리는 문자 메시지 소리를 듣고서야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애써 시계를 외면하고서 약간의 코맹맹이 소리를 섞어 잘 자고 일어났더니 피부가 좋아졌다는둥 역시 잠이 보약이라는둥 애교아닌 애교를 부릴 수 있었던 까닭은, 내게는 믿는 구석이 있는 까닭이었다.어제 저녁에 양파와 마늘을 달달달 향기롭게 볶고 감자, 고구마에 닭고기까지 듬뿍 넣어 만들어 맛나게 먹었던 카레라이스가 아직도 한솥 가득 남아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대접에 밥을 넉넉하게 푸고 그 위로 카레를 보 기좋게 담으면 따로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로 훌륭한 아침 식사가 된다. 뜨끈하게 카레를 데우고 적당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접시만 곁들이면 되니 식사 준비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길게 기지개를 켜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잠기운을 눈가에 붙인 채 카레솥에 불을 올린 후 '식사하세요' 남편을 부른다. 고양이 세수만 하고 돌아와 김치 접시를 식탁에 내려 놓는데, 끙끙끙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냄비 뚜껑을 열자 이미 하얗게 곰팡이 비스무리한 것이 노란 카레와 뒤엉켜 있다.
어제 저녁 딱 한 끼 먹은 카레가, 이 추운 겨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끓여 두기까지 했는데 도대체 왜왜왜 벌써 상해 버렸는지 속상해 하고 있는데 남편이 식사를 하러 왔다. 어쩌지?

당황스러운 마음에 남편에게 카레가 쉰 것 같다고 어제 '팔팔'은 아니지만 '슬쩍'은 다시 끓여 두었는데도 쉬어 버렸다고, 그래서 아침은 '라면(그나마 소시지와 만두를 넣은)'을 먹어야 되겠다는 끔직한 소식을 전했다. 남편의 눈치를 살살 보며 다른 냄비에다 물을 받아 가스불에 올리는데, 의기양양한 남편의 목소리가 등뒤로 들렸다.

'나는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카레가 왜 쉬었는지 알아. 당신이 카레를 팔팔 끓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미생물은 100도 이상에서는 죽지만, 당신은 적당히 끓여서 오히려 미생물이 살기에 적당한 온도로 맞추어 주었기 때문에 카레를 상하게 만들었어'



사실 남편에게는 말 하지 않았지만 어제 먹다가 남긴 카레를 그대로 카레솥에다 부었기 때문에 침이 들어가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남편의 말이 백번 옳다. 그러나 꼭 그렇게 따져야 했는지...... 하긴 되짚어 보니 남편은 위로를 구하는 내 말에 늘 이런식이었다.

몇 년 전
결혼하고 처음 맞는 '초복'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삼계탕을 끓였다. 그것도 시부모님까지 초대한 자리였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결혼초라) 어려운 시부모님 앞에서 혹여 실수라도 할까봐 끙끙대면서 닭 네 마리를 기적적으로 끓여 내 식사 대접을 했다.

맛있게 드세요.

닭다리가 잘 뜯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이미 실패를 예감하면서, '복화술'로 슬쩍 남편에게 귓속말을 했다. 삼계탕이 좀 이상하지?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우렁찬 남편의 목소리,

응. 닭을 좀 더 끓여야 했어. 덜 익어서 닭다리에서 냄새나.

그 때 내가 웃었던가? 웃었대도 웃는게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 말고도 나를 화나게 만드는 남편의 대화법은 수두룩 빽빽이다. 

아무리 화성에서 온 남자들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화법을 고수하는 족속들이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닌 듯 싶다. '이해' 받길 원하고 '공감'해 주길 바라는 여자들의 마음을 어쩌면 이렇게도 몰라 주는지......

이 글을 쓰다가 나는 글을 한 번 날렸다. 다행히 자동저장 기능이 있어서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시 불러올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을 복구시킨 후 가슴을 쓸어내리며 왜 갑자기 내 글이 모두 없어져 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웅얼거리는 내 이야기에 남편은 대답한다. 대답을 원한 질문이 아니었는데도 굳이 대답을 한다.

당신이 뭔가를 잘못 건드렸겠지!

내 저 인간을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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