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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식구들 몰래 라면 끓여 먹은 며느리...... 바로 나다.

아니 배가 얼마나 고팠으면 밤에, 그것도 몰래, 홀로 부엌에 들어가 라면을 끓이고 있느냐 싶겠지만, 대체 밤 12시에 염분 많고 칼로리 높은 라면을 어떻게 먹느냐며 냉장고에 다른 음식들은 없었느냐고 묻고 싶은 분도 있으시겠지만, 나는 정확히 라면이 먹고 싶었다.

오밤중에 먹는 라면이지만 나는 대파도 송송 썰어넣고, 튀겨도 좋고 쪄도 좋다는 두루두루 냉동 만두도 두어개 넣고, 향이 끝내 주는 표고 버섯도 하나 큼직큼직 썰어 넣어, 맛있게 매운 명품 라면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식구들이 모두 자는 틈을 타 슬쩍 방에 들어와 컴퓨터로 드라마를 다시 보며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을 아주 아주 천천히 아주 아주 맛있게 먹었다. 국물까지...... .





다 먹고 나서는 국물까지 다 먹어 버린 건 좀 너무 했다 싶었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내맘대로 라면을 먹어 보냐는 생각에 곧 뿌듯한 포만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닐 수 있는 것이 라면이지만, 나에게는 좀 다르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며느리가 끼니를 라면으로 떼우(?)겠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껄끄러운 일이며, 특히나 요즘처럼 아기를 보느라 느긋하게 밥을 먹을 시간이 없는 나에게 있어 '면'요리는 상당히 사치스런 음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아직도 모유 수유 중이기 때문에 내가 먹는 것이 바로 아기가 먹는 것이 되니 어르신들이 더욱 내 식단에 관심을 가지신다.

그래서 반찬이 부실하거나 유난히 라면이 먹고 싶을 때면 남편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서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게으른 며느리 때문이 아닌, 갑작스레 매콤하면서도 기름진 라면이 생각난 아들의 입맛 때문이라면 시어머님도 부드럽게 넘어가실 것이니 말이다.(앗! 이 글을 읽고 우리 시어머님을 드라마 속에 나오는 고리타분하고 사악한 시어머님으로 상상하신다면, 그것은 오해다. 천사표 시어머니 앞에서도 며느리는 본능적으로 긴장하게 되니까. 이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늘 있다.)

그렇다면 남편과 어머님이 모두 출근을 하셔서, 아기와 단둘이 남게 되는 낮시간은 어떤가? 더더욱 불가능한 것이 아기와 둘이서 식사를 할 때 면 요리를 먹는 것이다. 콕콕 찌를 남편도 없이 온전히 아기를 도맡아 돌보면서 라면을 먹다 보면 어느 새 라면이 퉁퉁퉁퉁퉁퉁퉁퉁 불어 쫄깃한 맛이 관건이 라면이 맥없이 뚝뚝 끊어진다. 후루룩 들이킬 국물 한 방울 없이 면이 국물과 혼연일체가 돼 숟가락으로 라면죽을 떠 먹는 아- 가련한 내 신세여.

나에겐 천천히 음식을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고, 끼니를 쨈 바른 토스트로 먹든 우유에 만 시리얼을 먹든 당당할 수 있는 내공이 부족하다.

내가 아기가 낮잠 자는 사이, 달달한 크림이 듬뿍 들어간 빵을 야금야금 먹거나, 늦은 밤 아기를 재운 후 남편이 먹다 남긴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는 것도 다 그러한 이유다. 금지된 음식이 유난히 당기는 날,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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