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나 왔어,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 여닫는 소리, 부스럭부스럭 옷 갈아 입는 소리, 쏴-하는 물소리(오늘도 대충 씽크대에서 손을 씻었음에 분명한), 콜콜콜콜 정수기에서 물 받아 마시는 소리가 차례로 난다. 나는 남편의 나 왔어, 하는 소리에 큰 소리로 얼른, 응 어서와 하고 응수를 했지만 정작 반갑게 나가서 맞이하지는 못한다. 하필이면 남편의 퇴근 무렵에 다솔이가 응가를 했기 때문이다. 물휴지로 엉덩이를 대충 닦아 내고 다솔이를 어깨에 척 걸치게 안은 후 욕실로 데려가 엉덩이를 싹싹 씻어주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 남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느새 후다닥 달려와서는 자신이 드디어 퇴근을 했음을, 퇴근한 자신을 반겨주고 하루 동안의 참 많은 일들이 있었음 알리고자 했었다. 그러나 응가를 치울 때조차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들썩거리며 장난치는 다솔이를 한 손으로 제압하며 뒷마무리를 하고,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한 팔로 안은 채 다솔이를 씻기고 있었던 중이었기 때문에 남편에게까지 신경을 써 줄 겨를이 내게는 없었다. 

등 뒤에서 뭐 하고 있어? 묻는 남편에게 반갑게, 밝게, 상냥하게, 사랑을 담아 대답해 줄 겨를이 내게는 없었다.
그저 귀만 쫑긋 세워 남편의 동선을 가늠함과 동시에 손으로는 계속 뽀드득 소리를 내고 있어야만 했다.

응, 왔어? 옷 갈아입고 거실에서 조금만 기다려줘. 저녁 차려 줄게. 건성으로, (보면 모르냐는 듯) 약간의 짜증을 담아서 대답을 한 후에 나는 다시금 다솔이 씻기기에 열중했다. 부스럭부스럭 옷 갈아 입는 소리, 쏴-하는 물소리와 손 씻는 소리, 콜콜콜콜 정수기에서 물 받아 마시는 소리가 차례로 났다.



다솔이를 다 씻긴 후 피부가 건조하지 말라고 아기 로션을 발라주고,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는 보송보송하게 파우더도 발라주고, 깨끗하게 빨아 놓은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나니 다솔이가 새로 태어난 듯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이 정말 귀여워 보였다. 나는 기분이 한껏 좋아져서 동요 몇 곡을 순서대로 불러주다가 화들짝 놀랐다. 아참! 남편이 들어왔었지? 아기에게 신경을 쓰느라 남편의 귀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실로 나가보니, 남편이 텔레비전을 켜 둔 채, 소파에서 고꾸라져서 자고 있었다. 어찌나 깊이 잠에 빠졌는지 내가 곁에 간 줄도 모르고 쿨쿨쿨 자고 있었다. 한 손에는 리모컨을 꼭 쥐고서. 

남편의 자는 얼굴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는 이 순간이 다시 없다는 듯 천천히 남편의 꼭 감은 눈이며, 굳게 담은 입 등을 자세히 살펴 봤다. 그런데 원래부터 남편의 얼굴이 이렇게 쓸쓸했던가? 밖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까닭인지 남편의 자는 얼굴은 세상의 시름을 다 안고 있는 듯 슬퍼 보였다. 스마일맨의 얼굴을 완벽하게 거꾸로 그려 놓은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기가 태어난 이후 내 모든 신경은 아기에게로 쏠려 버려서 남편이 찬 밥 신세를 면하지 못한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제대로 아침 밥을 차려 주지도 못했고 맘 편히 둘만의 시간을 가지지도 못했다. 모든 사랑과 관심을 빼앗긴 채 늘 2순위로 밀려 났기에 어쩌면 남편은 허전함과 외로운 마음이 가득했을 지도 모른다. 언제였던가 앵앵 우는 다솔이의 엉덩이를 발로 툭 차면서(?) 미워!라고 했던 이유도 같지 않을까?

나는 남편이 자는 동안 얼른 따뜻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리고 토닥토닥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미안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은 얼굴을 하고 말이다. 피곤한 듯 부스스 일어나는 남편의 얼굴이 참 눈물겹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