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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 동료들과 마땅히 할 이야기가 없는 내 또래 여자들은 으레 지난 밤에 봤던 텔레비전 방송을 화젯 거리로 삼는다. 친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친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사이에서 가장 좋은 얘깃 거리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없었다면 우리들이 어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쉴새 없이 오고가는 수다들.

깔깔거리면서 손뼉을 치고 때로는 옆사람을 때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점심 시간 내내 우리는 스스로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다. 남자들은 그렇게도 할 이야기가 없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짧은 점심 시간을 가장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즐거워야 할 그 시간에 인생을 논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기 위한 방법들을 쏟아내는 일 만큼 밥 맛 떨어지는 일이 또 있을까?

주윗 사람들의 얘길 들어 보면 이삼십대 여성들에게 단연 화제는 '파스타'이지만, 나는 '공부의 신'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호통을 쳐도 멋있다는 이선균과 연기를 못 해도 좋다는 알렉스, 그리고 시원 털털한 매력녀 공효진이 나오기 때문에 월화요일엔 냠냠냠 파스타를 선택한다던데, 나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도 아니고 그런 자녀를 두지도 않았으면서 매주 '공부의 신'을 본다. 그것도 울, 면, 서!!


미치지 않고서야 다 큰 어른이 학원물을 보면서 훌쩍거리겠느냐만, 나는 극중 한수정(배두나)에게 완전히 감정이입해 있다. 끝끝내 임용 고사에 합격하지 못해서 꿈을 접어야 했지만 어릴 때부터 내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기간제 교사로서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 때 나는 '공신'의 한수정과 비슷한 모습이었지 싶다. 실력은 별로 없지만 의욕은 넘치고 수업은 재미없게 하면서도 학생들과 사이는 좋은...... .

나도 그랬다. 성적으로 줄 세우기 처럼 잔인한 것은 없다고,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모든 학생들을 끌어안고 갈 수 있다는 신념이라고 생각했었다. 배두나가 자신의 실력 없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어찌나 공감이 되던지.

정교사로 있는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요즘의 학교 교무실 실정도 내가 근무하던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단다. 교과서가 바뀌어도 내용에 큰 변화가 없는 과목을 담당한 선생님들은(특히 수학) 특별한 수업 준비 없이 늘 하던대로 교실로 가고, 교과서가 바뀔 때 마다 바짝 긴장해야 하는 선생님들은(특히 국어)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교무실 내에서 ebs방송으로 예습을 한단다. 다른 선생님은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는 지를 배우기 위해서다.



솔직히 말해서 답지를 보고 외워서 풀이해주는 선생님도 있고 결국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선생님도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정말 있다. 내 글을 보시고 현장에서 피땀 흘리며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은 노여워 하실 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학원 강사와 비교할 수 없이 진짜 훌륭하신 현직 교사들도 참 많지만 타성에 젖어 있는 교사들이 문제다.

현직 교사들은 드라마 '공부의 신'을 보면서 자신들을 한 번 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극중 강석호 변호사(김수로)의 충고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은 누구보다 자신이 가장 잘 알테니까 비교적 현식감 있게 표현돼 있는 학생들의 속 마음도 헤아려 가면서 앞으로 어떤 교사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 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아니 꼭 그래봐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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