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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일이 있어서 다솔 아빠에게 다솔이를 맡겨 두고 오랫만에 혼자서 외출을 했다. 6개월 정도 만에 다시 타게 된 지하철이(임신 후기와 출산 후 4개월 동안 승용차만 타고 다녔었다. ) 무척이나 색다르게 느껴졌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설렘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몽실몽실 올라왔다. 마치 출산 후 내내 집에만 있다가 처음으로 바깥공기를 마셨을 때의 그 기분 같았다.

그동안 기억 상실증에라도 걸렸는지 멀지도 낯설지도 않은 곳에 가는 데도 몇 번을 도중에 멈춰서서 노선도를 보고 또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씨는 또 왜 그리 추웠는지 모자와 마스크가 없었더라면? 으, 상상하기도 싫다.

오늘 날씨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나는 외출 준비를 정말이지 철저하게 했다. 내복은 필수로 입어 주고 두툼한 바지에 두툼한 니트를 입고 그 위에는 넉넉한 사이즈의 가디건까지 걸쳤다. 그리고 패딩 점퍼로 마무리. 머리와 귀를 통해 체온의 80퍼센트가 빠져 나간다고 하니까 귀까지 덮는 군밤장수 모자를 쓰고 볼살은 마스크를 써서 보호했다. 한마디로 '멋'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무조건 따뜻하게 껴입는 패션을 선 보인 것이다.

집에서 나올 때는 멋내다가 얼어 죽는다, 따뜻한게 최고지 하면서 별 생각없이 나갔다. 그런데 오늘 내가 간 목적지는 인테리어 업체에서 주최한 교양강좌, 그야말로 교양이 넘치는 사람들을만 가득 모인 자리였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은 강좌였는데 교양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옷차림에서도 교양이 넘치는지, 별로 꾸미지도 않았지만 다들 참 세련되게 차려입고 오셨다. 그 중 딱 한 사람, 나만 빼고 말이다.

둘둘 만 두루마리 휴지처럼 마구잡이로 껴 입은 사람은 진짜 나 하나 밖에 없었다. 모자 쓰고 갈 생각에 머리도 안 감고(!!!) 나간 터라 군밤장수 모자를 벗을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던 강좌(러그와 카페트에 관한 인테리어 강좌였는데 다음에 포스팅 할 생각임)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새삼스레 옛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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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 아빠와 데이트를 하던 몇 해 전 겨울, 그 해 겨울도 따뜻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면레깅스도 아닌 스타킹 하나를 신고서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었다. 생각만 해도 추워서 오싹해지는데 그 땐 어찌 그리도 헐벗고 다닐 수 있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더 과거로 가 보니 역시나 계절과 상관없이 헐벗고 다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한겨울에도 멋내느라 반바지를 입고 다녔으니 정말 다시 생각해도 대단했었다.

내복을 입고서 스타킹을 신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 겨울에 반바지를 입을 생각이 사라진지는 오래 됐는데, 그래도 너무 둘둘 말아서 눈사람 처럼 입고 다니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솔 아빠에게 오늘 내가 느꼈던 것을 이야기 하면서 내가 어쩌면 텔레비전에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다솔 아빠가 의아해 한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아줌마를 변신시켜 주는 방송을 하던데 오늘 내 모습이 완벽한 '변신 전'의 모습이었다고 말하면서 웃으니 다솔 아빠도 웃는다. 내일도 일이 있는데 내일은 눈사람이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다녀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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