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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에 해외 여행을 준비 중인 나는, 정보를 얻으려고 여기 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1년 6개월 전에 이용했던  한 여행사 홈페이지에다가 문의 글을 남겼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 처럼  내가 가고 싶은 나라와 떠날 날짜를 적고 가격을 물어보는 상투적이면서도 짧은 글이었다. 꼭 그 여행사를 통해서만 가려던 것은 아니라서 다른 여행사에도 비슷한 글을 몇 개 더 남겨 두었다. 가격과 사은품 등을 저울질 해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리라는 심산이었다.

이튿날 오전에 메일을 확인하니, 1년 6개월 전에 이용했던 그 여행사에서 벌써 답글이 와 있었다.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열었는데 그 내용이 예상밖이었다. 나는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여행사 측의 답장도 건조하면서도 상투적인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랫만이에요'로 시작하는 글은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 연락을 못했다가 만난 친구의 인사처럼 반갑고 다정했다. 글도 어찌나 율동감있게 썼는지 글만 읽었는데도 상대의 인상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딱 한 번 이용한 손님을 기억하고 그토록 다감한 어투로 메일을 보낼 수 있다니, 업체가 이메일을 통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당연히 이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가려고 마음 먹고 답장을 쓰면서 이번에는 바뀐 전화번호까지 적어 두었다. 다음번에는 전화로 연락을 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속전속결로 오후에 통통 튀는 목소리의 여자분이 전화를 주셨다. 이게 텔레마케터들의 교육에서 그렇게 강조한다던 '솔'음 높이의 목소리인가? 수화기 너머 상대방의 얼굴 표정이 너무 궁금해질 정도로 발랄한 목소리였다.

나는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표정의 목소리로 전화를 걸까? 문득 심드렁하기 짝이 없을 것이 분명한 내 낮은 목소리가 미안해졌다. '솔'음으로 교육을 받았을 텔레마케터 언니(?)들의 전화를 그리도 많이 받아봤지만 막무가내라는 생각과 짜증만 들었었는데, 그 여행사 직원분과는 한 시간이라도 통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다며 3% 할인까지 해 준단다. 흐뭇한 기분으로 예약을 마치니 다음달에 여행 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며칠 후 여행 계약서를 메일로 보냈다며 그 여행사 직원분이 다시 전화를 하셨다. 여전히 발랄하면서도 친근한 목소리로 말이다. 들을 수록 기분 좋아지는 그 목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여행비를 오늘 당장 입금시켜 줄게요'라는 말이 나와 버렸다. 쾌활하게 웃는 수화기 너머의 그 여성분은 나에게 발코니를 좋아하느냐고 운을 떼더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요즘 처럼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는 조금이라도 싸게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자신이 더 알아보니 발코니가 없는 방(내가 가려는 곳은 리조트이다.)은 1인당 가격이 7만원 더 싸다며, 괜찮다면 그 방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리조트에서 여기 저기 휘젓고 다니기를 좋아해서 나에게는 사실 방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해 주신 3%할인에 7만원까지 더 절약하니 여행이 훨씬 더 가뿐해졌다. 어쩌면 여행사 측에서도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런 수고 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들이 고객을 감동시키고 고객감동은 곧 불황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업체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나는 벌써 이 내용으로 글까지 쓰고 있으니 말이다.) 서비스 사업은 친절이 최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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