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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매일 전화로 수다떨고, 메신저로 대화하며, 틈틈히 만나 같이 노는 여고동창생이 '있었다'.

우린 자신의 속마음을 서로에게 낱낱이 다 드러내었으며 나는 재밌는 영화가 개봉하거나 맛있는 음식점을 새로 발견했을 땐 꼭 그 친구와 함께 갔다. 물론 그 친구도 싸고 예쁜 옷이 많은 가게와 커피향이 좋은 카페를 꼭 내게 소개해 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둘 다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우리는 당연한 듯 함께 살게 되었다.

처음 몇 달은 좋았다. 팔짱을 끼고 장에 가서 사 온 반찬거리로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도 좋았고 휴일이면 만화책을 빌려 와 밤새 뒹굴거리며 킬킬대는 것도 재밌었다. 처음 몇 달,
우리의 본성이 눈뜨기 전까지는...... .

시간이 흘러 같이 산 지 5, 6개월쯤 되었을까? 나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친구의 양말이며 옷가지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고 밥이며 설거지가 내 차지가 될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기 일쑤였다.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쉽게 났고 그런 내 마음을 들킬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렇게도 자주 드나들던 극장이며 쇼핑몰에 자연스레 발길이 끊어지고, 해도해도 끝이 나지 않던 수다가 점점 지루하고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방문을 걸어닫은 채 다른 이들과 통화하고 약속을 잡았으며 서로에게는 침묵하고 서서히 무관심해졌다.

폭풍전야 같던 시간들이 흐르고 마침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 일 때문에 친구와 나는 서로를 집어삼킬 듯 싸웠고 또 울었다. 그것은 차라리 속 시원한 순간이었다.

각자 다른 집을 얻어서 이사를 가고 연락을 하지 않은 채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친구에 대한 미안함과 궁금함은 모가 난 돌처럼 내 심장 한 구석을 찌른다. 내 모든 것을 다 나누어도 아깝지 않았던 그녀였는데, 어쩌다 우리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왜그렇게 난 이기적이었던 것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지켜야 할 '선'을 정하지 못한 채 서로의 영역을 너무 많이 침범했던 것 같다. 미묘하고 섬세한 우리 여자들에게는 타인에게 들키지 않고 보호받고 싶은 자신만의 영역이 있게 마련인데...... .

어느날 불쑥 그녀 앞에 나타나 서로 마주보며 맘껏 웃어보고 싶다. 그녀가 나를 보고 다시 웃어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욕심은 아니리라. 얼른 그녀를 만나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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